신천식 행정학.도시공학 박사(신천식의 이슈토론 진행자) |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백설이 되고 싶다 -문 정희 (전문)-
눈을 바라보노라면 문득 그리운 것들이 아련하게 사무쳐온다. 그것은 어느 장소이기도 하고, 어느 한 시절인 것도 같고, 어느 사람과의 안타까운 이야기로도 다가온다. 나는 삶의 대부분을 대전광역시 일원에서 보내고 지금도 대전에서 살고 있다. 그중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동구 소제동에 관한 추억은 세월이 지나도 더욱 또렷해지고 애틋해진다. 동구 소제동은 공동화된 낙후지역의 대명사로 알려지고 있지만 내게는 정든 이웃과 친구들이 아직도 기억 속에서 모두 살아있는 불멸의 장소이다. 내 기억 속의 소제동은 친밀감과 유대감이 날줄과 씨줄로 촘촘하게 얽혀있는 전통적인 지역 공동체 사회였다. 불안과 좌절, 정신적인 갈증과 허기로 방황하던 젊은 날의 나를 보듬고 품어준 사람과 풍경이 있던 장소이기도 했다.
지역공동체의 붕괴와 소멸을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웃사촌이라 부르며 삶의 애환을 같이 나누던 근린 공동체 구성원들은 어느 순간에 모두 사라졌다. 승자독식의 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어떤 면에선 참으로 불쌍하다. 현대인들은 빈약한 경제적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녀교육을 포함한 모든 일을 자기 책임 하에 스스로 완결해야 하고 노후도 홀로 준비해야한다. 안정적이며 지속적인 정서교류의 대상은 찾기 어렵다. 친구, 지인, 심지어는 연인간의 지속적이며 장기적인 신뢰관계도 무너졌다. 고립된 개인으로 전락한 개인은 불안하고 초조하다. 높은 이혼율이 보여주는 가족해체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음도 불안을 부추기는 또 하나의 요인이 된다. 가족은 사회조직의 최소단위이며, 심리적 안정을 위한 절대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가족제도의 붕괴는 다양한 사회, 경제, 문화적 문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기 전 가족의 삶은 제한적이지만 독립적이며 여유로웠고, 불분명하긴 해도 노동과 여가의 구분이 있었다. 노인부터 아이까지 가족의 모든 구성원들은 자신의 능력과 역량에 맞는 일들을 나누어서 하고, 넉넉하지는 않아도 최소한의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연장자의 지혜와 경륜에는 마땅한 존중과 대접이 따르고, 가족구성원 모두 간에는 깊은 연대의식과 믿음이 존재했다. 이러한 연대의식과 믿음은 근린을 기초로 하는 이웃과 지역 공동체로 확장되었고 ,근린 거주자들은 지역을 이루는 대가족의 구성원들이자 일상의 동반자들이 되었다. 가정과 지역과 촌락은 분리되면서도 연결되어 하나의 작은 세계로 존재했다. 이웃의 나이든 여자는 어머니나 할머니로 불리었고, 형제가 될 수 있는 비슷한 나이 또래의 사람들끼리는 형과 아우로 서로를 불렀다. 아버지 또래의 이웃 어른이나 형님 또래의 나이든 이는 내 아버지와 친형님의 예우를 당연히 해드렸다. 이러한 인식과 관행을 바탕으로 노후 보장, 아이의 교육, 어려운 사람의 구호, 재난의 대비와 극복 등은 지역공동체에서 너 나의 구별 없이 자연스럽게 공동으로 이루어졌다.
이제 세상이 바뀌었다. 과거의 대가족 제도와 지역공동체가 수행하던 역할과 기능은 허약해진 개인과 훨씬 강력해진 국가가 대신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지고 있으나, 개인이 느끼는 심리적 부담감이나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내가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대전 동구 소제동은 가난했지만 아름답고 인간미가 있었다. 그때도 모순과 부조리는 존재했고 불만과 불평도 당연했겠지만 가족간의 사랑과 이웃과의 깊은 유대 속에서 살았기에 행복했었다. 그래서도 소제동 동네에 들어서기만 하면 느껴지던 안정감과 편안함, 익숙하고 반갑던 이웃과 풍경들의 존재가 어느 틈에 사라져버린 점은 너무도 안타깝기만 하다. 삶에 지치고 일상에 진저리치는 이들이 불현듯 찾아갈 수 있는 모두의 소제동을 찾아내고 싶다. 나는 소제동에 가고 싶다.
신천식 도시공학·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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