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홍상수의 장소들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홍상수의 장소들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 승인 2019-08-06 11:14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송지연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홍상수의 "차이와 반복"에 대해서는 많이들 거론한다. 영원회귀적 반복이 홍상수 영화 전반을 꿰뚫는 특징이기는 하다. 동어반복에 가까운 그 변주의 자리에는 늘 홍상수 자기 자신 또는 자기 자신이 속한 세계의 사람들 - 그러니까 영화인, 배우, 감독, 영화과 시간강사, 교수, 평론가, 예술가, 시인 등 온갖 문화예술 지식인 부류 - 에 대한 자조와 성찰이 깃든다. 그의 영화는 그의 삶과 지속적으로 관계하고 병행하며 달라지되 반복된다. 최근엔 김민희가 유부남 감독과 사랑에 빠진 여배우로 출연했다. 홍상수와 연인 관계에 있는 김민희가 김민희를 연기한 셈인데, 이런 점에서 나는 홍상수의 영화를 광의의 예술가영화이자 메타픽션으로 분류한다.

인간의 현 존재와 삶의 상태 자체를 있는 그대로 영화화하려는, 메시지 부재의 의지는 홍상수의 고질적 화두다. 그에게 영화의 메시지 같은 건 없는 게 낫다. 깔대기처럼 모아놓은 주제의식이 싫단다. 인물의 선악 구도나 행위 및 사건 간 인과율 등을 최대한 배제하기 위해 그가 주로 취하는 방법은 과거, 현재, 미래가 인과적으로 연결된 전형적 플롯을 제거하는 일이다. 재미있는 이야기의 조건들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보다 나은 이상적 전망을 영화의 교훈적 결론으로 뽑아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관습적 시간인식도 거부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저 유명한 <시학>에서 말하는 도덕적 딜레마의 해결과도 거리가 있다.

길을 가다 빈 우유팩을 발견한다(<옥희의 영화>). 그 우유팩이 공교롭게도 마침 거기 놓인 우연에는, 누군가의 아무런 의도가 없다. 대신에 우주의 신비가 숨어있다. 우유팩과 마주쳐 우유팩 그림을 그렸을 뿐인 홍상수는, 랜덤의 타자와 마주치는 순간의 느낌대로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이를테면 무의도의 의도를 실행한다. 오래 살아온 집, 얽히고설킨 가족관계에서 아예 동떨어진 장소에다가 배우/인물들을 떨구어놓고 영화라는 형식 게임을 가동시키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시간을 새로 구성하기 위한 공간의 활용이다.

<다른 나라에서>의 경우에는 제목부터 타국의 장소성을 드러낸다. 한편 인물에게 비교적 가깝고 친숙한 곳조차, 과거 인연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긴 해도, 어쨌든 대체로 산책이나 만남의 장소로 기능한다. 그러다 보니 인물의 과거사에 대한 전제적 설명을 구구절절 해댈 필요가 없다. 영화는 분명 리얼한 일상을 다루는 듯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여행과 같이, 집과 가족관계를 벗어난 실험적 일상인 것이다.



과거로부터 만들어진 '이유있는' 사연을 구비구비 품은 캐릭터를 상정하지 않고자 제천, 제주, 통영, 북촌, 창경궁 등을 지나 <밤의 해변에서 혼자>에 이르러서는 "미디어에서 가장 살기좋은 곳으로 선정된 서구 어딘가와 강원도 어딘가" 정도의 대사로 거론되는 '무명의 장소'까지 간다. 그리고는 또 한 번 GTA 식의 여행지 내지 산책로 체험에 인물들을 참여시킨다. 물론 이번에도 목적지/메시지는 없는 여행이다.

홍상수의 장소들은 그게 어디든 상관없는 장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장소들을 여행자 내지 산책자의 신선한 시선으로 더 매력적이게 담아낼 수 있다는 반가운 역설도 종종 발생한다. 무의미의 세계에 이름을 붙이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인간 언어의 고유한 기능이라면, 특정한 텍스트가 지니는 무목적의 목적, 무의미의 의미를 알아채는 것도 평론가의 일일 것이다. "모르고 봐야 더 좋다"(<하하하>의 김상경 대사)는 홍상수 본인은 "알고보면 더 재밌다"는 이런 글을 좋아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송지연 우송대 초빙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터뷰] 진성철 특허법원장 "지식재산 국경 없는 경쟁시대, 국민과 기업권리 보호"
  2. 초등 기초학력 지원 4~6학년은 '사각지대'
  3. "충남 스마트 축산단지, 갈 길 먼데…" 용역비 전액 삭감 논란
  4. 인기 게임 크리에이터 '감스트', 27일 대전 온다
  5. 순직 소방공무원 합동안장식
  1. '초소형군집위성 1호' 24일 오전 7시 32분 발사, 임무궤도 안착하고 교신 성공
  2. 심사평가원 대전충청본부, 대전충청지역 종합병원 간담회
  3. 경비노동자 "대전시 고용안정 개정안 환영"…실질적인 방안 촉구
  4. CTX 출발역인 정부대전청사역 현장점검 나선 백원국 차관
  5. 표결만 4번 '충남학생인권조례' 또 다시 폐지로

헤드라인 뉴스


항우연 연구자들 징계 위기… 노조·조승래 의원 “표적감사 규탄”

항우연 연구자들 징계 위기… 노조·조승래 의원 “표적감사 규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노동조합과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국회의원(대전 유성구갑)이 항우연 연구들에 대한 정부의 감사 처분 철회와 탄압 중단을 요구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승래 의원과 서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항공우주연구원지부(항우연 노조)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항공우주연구원 표적·보복감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3년 9월 4일부터 올해 3월 27일까지 206일간 항우연을 대상으로 특정감사를 벌여 최근 결과를 통보했다. 과기정통부는 감사 결과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나, 전..

류현진 100승 재도전 실패의 의미...한화이글스, 반등 가능할까
류현진 100승 재도전 실패의 의미...한화이글스, 반등 가능할까

한화이글스가 최근 거듭된 악재 속 연패까지 기록하면서, 리그에서의 순위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침체한 팀 분위기 속 최원호 감독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4월의 마지막 일정을 통해 한화가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현시점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류현진의 프로야구 KBO리그 개인 통산 100승 재도전의 실패다. 류현진의 100승 기록 달성은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쉽게만 보였던 도전 과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4월 24일 경기도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

`FC 프로 마스터즈` 26일 대전서 개막… 아시아 4개국 최강자 가린다
'FC 프로 마스터즈' 26일 대전서 개막… 아시아 4개국 최강자 가린다

한국, 중국, 태국, 베트남 총 4개국이 참가하는 국제대회 'FC 프로 마스터즈'가 26일 대전 이스포츠 경기장에서 개막한다. 대전시와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지원하는 'FC 프로 마스터즈'는 FC(전 FIFA 온라인 4) 리브랜딩 이후 개최되는 첫 국제대회로 28일까지 진행된다 'FC 프로 마스터즈'는 'FC 온라인' 경기와 'FC 모바일' 경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FC 온라인' 대회는 KT롤스터와 광동프릭스가 한국 대표로 출전하고, 'FC 모바일' 대회는 'SODA'와 'JOSCAR'가 경기를 치른다. KT롤스터와 광동프릭스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청권 광역 응급의료상황실 방문한 한덕수 총리 충청권 광역 응급의료상황실 방문한 한덕수 총리

  • 지하식 소방용수 인근에 쌓인 건설폐기물 지하식 소방용수 인근에 쌓인 건설폐기물

  • 한자리에 모인 대전 신기술 개발제품 한자리에 모인 대전 신기술 개발제품

  • CTX 출발역인 정부대전청사역 현장점검 나선 백원국 차관 CTX 출발역인 정부대전청사역 현장점검 나선 백원국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