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인향(人香)짙은 붉은 땅 단양(丹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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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 인향(人香)짙은 붉은 땅 단양(丹陽)

장상현

  • 승인 2019-11-05 09:34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여행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즐겁다. 준비하는 동안 설렘을 누리고, 다녀와서는 기록을 통해 오래도록 여행의 추억을 남기는 기록의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같은 글쟁이들의 여행은 관광이 아닌 인간관계를 확대하는 기회인 동시에 글감을 얻게 되는 즐거움도 있는 것이다. 무엇을 볼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어떤 활동, 어떤 체험을 할 것인가' 도 중요하다.

2019, 11,2일, 오전 07:30분!

40여 명을 태운 대형버스는 대전시청 북문을 출발하여 오전 10:03분에 단양팔경(丹陽八景)의 제 1경인 도담삼봉(島潭三峰)의 주차장에 도착했다. 문학사랑회원들과 함께하는 금년도 후반기 문학기행인 것이다.



경부고속도로를 시작으로 중부고속도로를 경유하여 평택제천고속도로를 질주한 버스는 아침공기를 가르며 가쁜 숨을 토하면서 빠른 속력으로 달린다. 오랜만에 만난 분들과 인사를 하고 아침으로 제공되는 떡과 과일, 심심풀이 과자 등으로 입을 즐겁게 하며 기행(紀行)하는 문인들을 일일이 소개하는 리헌석(문학사랑 이사장)인솔자의 구수한 입담을 들으면서 설쳤던 잠을 이기지 못해 어설픈 잠을 잔듯한데 이내 덜컹하는 버스정차 소리에 잠을 깨어보니 계획했던 최초 도착지 도담삼봉이다.

적당한 강폭과 가을을 맞는 맑은 물이 더없이 새롭다. 문득 강(江) 한 복판에 장엄하게 솟은 세 개의 기암봉우리가 눈앞에 전개된다. 신선의 놀이터가 아닌 다음에야 어찌 이런 경관(景觀)이 있겠는가? 참으로 비경(悲境)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현장이다.

나의 고향은 단양이다. 지금의 초등(옛 국민)학교시절 봄, 가을을 합쳐 12번 중 7번을 이곳으로 소풍을 온 듯하다. 그때는 무척이나 힘들고 지겨웠던 기억인데 지금은 다른 느낌이다. 이곳은 이제 관광객을 위해 편리하고, 단장된 주위환경이 되었다. 나는 다른 문학인들과 함께한 한 명의 문학인으로서 도담삼봉을 보니 그 위용이 가벼운 흥분마저 느끼게 한다.

그리고 흥분된 마음을 오랫동안 유지할 수 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석회암지대가 빚은 한국 제일의 지하궁전인 '고수동굴'을 관람했다. 이곳은 몇 번 관람했지만 올 때마다 조명 아래의 기괴한 종류석에 탄성이 절로 터진다. 역시 신(神)의 예술품은 아무리 보아도 질리지 않는 매력이 있음을 절감케 한다.

이어 일행은 단양시장에 들러 '이제 우린'의 조웅래 회장께서 보내주신 '이제 우린'을 곁들여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했다. 단양의 전통시장의 명칭이 '구경시장'이라 했기에 그 이름이 궁금했다. 우리나라의 전통재래시장은 대개 그 지역의 명칭을 따서 지어진 이름이 많은데 단양은 '구경시장'이라는 것이다.

궁금했다. 어떤 문인은 "경치가 수려해서 모두 구경하고 와서 시장을 이용하라는 뜻에서 구경시장"이라 했다는 것이다. 모두들 그럴 것이라고 여기는데 그 지역의 상인에게 물어보니 "단양에는 팔경의 빼어난 경관이 있는데 이 시장이 명물이라 팔경에 하나를 더 추가할 만하여 '구경 시장'이라고 지었다는 것이다.

참 재미있는 착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일행은 이어 1.12Km거리의 강(江)절벽에 설치한 단양잔도(丹陽棧道)를 걸었다. 옛날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눈물을 머금으며 통과했다는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주인공 '유비(劉備)'의 심정을 고스란히 경험하면서 대업을 이루려는 유비의 숨은 뜻을 헤아리면서 걸었다.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끝 지점에 도착하였고 일행은 다시 버스에 탑승하여 산꼭대기에 설치되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오르는 '스카이워크'에 올랐다.

단양 읍(邑)전체가 조그마한 화폭에 담아놓은 그림같이 보이고, 주위의 수려한 경관이 눈앞에 시원하게 펼쳐진다. 몇 몇 분이 사진촬영에 열을 올리고, 나는 익숙한 산하(山河)를 정신없이 옛 생각에 잠기어 조용한 시간을 가졌다.

시간은 벌써 오후 4시에 육박한다. 부지런히 가서 배를 타고 충주(忠州)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강상(江上)의 경관을 즐길 참이다. 버스는 꼬불꼬불한 길을 곡예 하듯 잘 달렸다. 주위의 산들이 이미 단풍으로 갈아입고 있다. 마지막 구비를 돌자 강물과 어우러진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본래 이름이 백암산이었던 현 금수산(해발 1.016m)은 퇴계 이황(退溪 李滉)이 단양군수로 부임 시 산의 자태가 너무도 곱고 아름다워 마치 비단에 수를 놓은 것 같다고 하여 '금수산(錦繡山)'이라고 고쳐 부른 것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한다.

일행은 승선이 좀 까다로운 수속을 마치고 배에 올라 출발을 기다린다. 그 중 주태백(酒太白) 몇 몇 분이 벌써 '이제 우린' 몇 병에 쥐포 안주를 장만하고, 술판이 벌어진다. 배는 출발하고 산과 강이 어우러진 경관은 술을 당기게 하고 술과 함께 즐기는 낮의 뱃놀이 관광이 더욱 인상적이다.

문득 강 위에 펼쳐진 숨겨놓은 단양의 팔경 중 그 형상이 마치 거북이 같다 하여 구담봉(龜潭峰)라고 하는 명소를 지나니 곧 이어 옥순봉(玉筍峰)이 눈앞에 펼쳐진다. 장엄하면서 치밀한 느낌을 주는 옥순봉은 우후죽순같이 솟아오른 천연적인 형색이 옥같이 흰 죽순을 닮았다 하여 붙어진 이름이라 한다. 이 또한 절경중 절경이다.

기암이 빚은 천연의 화폭을 지나 몇 분쯤 가니 문득 산기슭 멀리 단양의 대표적 인향(人香)인 두향(杜香)이라는 조선중기 절개 깊은 기생의 무덤이 눈에 들어온다. 모든 잡념이 일시에 사라진다. 인간다운 향내를 진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향(香)'이라는 글자는 자전(字典)에는 소리, 빛, 모양, 맛 같은 것의 아름다움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어원은 黍(기장 서)+甘(달 감)이 결합된 모습이다. 이 말은 맛좋은 기장이라는 뜻으로 기장을 삶을 때 나는 좋은 향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세인(世人)들이 향기라는 좋은 이미지로 풍자한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곧 예향(藝香), 문향(文香), 인향(人香)등 한 분야를 아름답게 표현할 때 사용하곤 한다.

여기에 만리(萬里)라는 말을 붙여 오랫동안 아름답게 이어지고자 하는 염원을 지닌 '인향만리', 예향만리', 문향만리' 라는 맛깔스런 용어로 쓰고 있는 것이다.

단양 땅은 연단조양(鍊丹調陽)을 줄여서 단양(丹陽)이라고 명명하였다.(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세 가지 향기를 모두 지닌 단양은 특히 퇴계 이황선생이 군수로 있으면서 평생을 그리워했던 기생 두향(杜香)과의 애절한 사랑이 빼어난 경관과 더불어 사랑과 절개의 진한 감동을 요동치게 한다.

獨倚山窓夜色寒(독기산창야색한) : 홀로 산창에 기대서니 밤이 차가운데

梅梢月上正團團(매초월상정단단) : 매화나무 가지 끝엔 둥근달이 오르네

不須更喚微風至(불수갱환미풍지) :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산들바람부니

自有淸香滿院間(자유청향만원간) : 맑은 향기 저절로 뜨락에 가득 하네

퇴계 이황이 지은 陶山月夜詠梅(도산월야영매)이다.

선생이 단양군수로 부임하였을 때(48세) 두향은 18세였다고 한다. 매화를 매우 좋아했던 두향은 고고청직(孤高淸直)한 선생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되고 당시 부인과 아들을 잃은 퇴계 선생은 역시 설중매 같은 두향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깊은 사랑은 9개월 만에 풍기군수로 자리를 옮기게 되면서 마음속에만 간직하는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이별을 앞둔 마지막 날 깊은 밤 퇴계의 무거운 한 마디 "내일이면 떠난다. 기약이 없으니 두려울 뿐이다." 라고 하니 두향이는 마음을 진정시키면서 말없이 먹을 갈고 붓을 들어 시(詩)한 수를 썼다.

이별이 하도 설워 잔 들고 슬피 우네

어느 듯 술 다하고 님마저 가는 구나

꽃 지고 새우는 봄날을 어이할까 하노라

퇴계 선생이 단양을 떠날 때 그 짐 속에는 두향이가 준 수석(水石) 두 개와 매화 화분하나가 있었다 한다. 이 때부터 퇴계 선생은 평생을 이 매화를 가까이 두고 사랑을 쏟았다 한다.

선생이 세상을 떠날 때 마지막 한 마디 "매화에 물을 주어라."

이는 선생의 마음 깊은 곳에 두향이를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前身應是明月幾生修到梅花(전신응시명월기생수도매화) 내 전생은 밝은 달이었지 몇 생애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퇴계 선생의 의미 깊은 시 한편이다. 그 후 선생의 부음을 듣고 두향은 4일간을 걸어서 안동을 찾았다. 그리고 다시 단양으로 돌아온 그는 결국 남한강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아마 사후에까지 곱게곱게 사랑을 이어가기 위해서리라.

인향만리(人香萬里)!

청직한 선비와 최고의 절개가 이룩한 만세(萬歲)의 향기이다. 나는 문득 두향의 향기가, 온 남한강에 가득 찬 느낌을 받았다. 빼어난 절경보다 사람의 정신을 어지럽히는 맛좋은 술보다. 인간의 향기에 흠뻑 빠져 마치 무엇에 홀려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중압감에 한동안 멍하니 두향의 묘소를 응시하고 있었다. 이번의 문학기행은 참으로 얻기 어려운 인향(人香)을 느꼈음이 두고두고 잊지 못할 소중한 심주(心柱)가 됨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장상현

장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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