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란의 세상읽기] 설탕세 논란, 그 씁쓸한 뒷맛

  • 오피니언
  • 세상읽기

[황미란의 세상읽기] 설탕세 논란, 그 씁쓸한 뒷맛

  • 승인 2021-03-31 09:56
  • 수정 2021-09-13 17:10
  • 신문게재 2021-04-01 18면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설탕
▶어릴적 시골마을 부녀회에선 집집마다 한달씩 돌아가며 성냥, 라면, 밀가루 등 생필품을 팔았다. 급하게 물건 살 곳도 교통편도 변변치 않던 시절, 주민들의 불편도 덜고 작은 이윤이라도 남겨 마을 살림에 보태려는 이유였다. 사랑방 귀퉁이 보물창고,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흙설탕이였다. 배앓이때 맛 봤던 달콤함을 잊지 못했던 예닐곱살 아이는 결국 일을 내고 말았다. 신랑신부의 첫날밤이 궁금한 동네 아낙처럼 손가락에 침을 발라 종이로 된 설탕봉지에 구멍을 냈다. 작은 손끝에 묻어나온 검고 촉촉한 알갱이들. 팔딱 팔딱 요동치는 심장소리도 혀끝 달콤함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십수년이 지난 후에 들은 얘기다. 소녀가 완전범죄를 굳게 믿고 잠든 그날 밤, 흙설탕에 손을 댄 도둑 고양이가 딸아이인줄 꿈에도 몰랐을 어머니. 두 살 터울 남동생에게 구멍 뚫린 설탕 봉지를 통째로 내주셨다고 한다. 말 잘 듣던 소녀의 일탈(?)과 영문도 모른 채 최대 수혜자가 됐던 남동생의 추억은 지금도 가족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단골 얘기 거리다.

▶손님 접대용으로, 집들이 선물로, 배앓이 하는 아이들의 비상약으로 귀한 대접받던 설탕. 그런데 요즘 그 신세가 말이 아니다. 비만과 고지혈증 등 각종 성인병의 주범으로 낙인 찍히며 공공의 적이 됐다. 그 중독성 또한 뭇매를 맞고 있다. "설탕중독의 위력은 마약보다 강하다." 영국인 의사 샐리 노턴 박사는 코카인에 중독된 쥐가 코카인이 아닌 설탕을 선택했다"며 그 심각성을 주장했다. '사탕발림', '감언이설(甘言利說)'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쉽게 끊어낼 수 없는 설탕의 유혹, 경계 대상임에는 분명하다.

그럼, 이 요물같은 설탕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어딜까? 정답은 국민 1인당 연간 약 75kg을 소비하는 싱가포르. 어림잡아 한 사람이 쌀 한가마니를 먹어치우는 셈이다. 한국은 연평균 22kg으로 싱가포르에 비해 애교 수준이지만, WHO의 당 권장량이 9kg이라고 하니 안심할 일은 못된다.

세계인의 식습관에 문제를 느낀 WHO는 급기야 2016년 "설탕을 넣은 상품에 20%만큼 세금을 매기라"며 설탕세 도입을 권고했고, 미국, 프랑스, 영국, 태국, 멕시코 등 40여 나라에서 탄산음료 등에 설탕세를 물리고 있다.



최근 우리 국회에서도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가당음료부담금'. 당류첨가 음료에도 세금을 부과해 소비를 줄이고 대체음료 개발을 유도, 국민건강을 증진시킨다는 취지다. 개정안에 따르면 음료 100ℓ당 당이 20㎏을 초과하면 2만8000원, 16~20㎏이면 2만원 등 설탕 함량이 많을수록 더 많은 부담금을 부과한다. 250㎖콜라 1캔에 당 27g이 들어있다고 하니 환산하면 27.5원씩 세금이 더 붙는다. 법이 현실화되면 음료값 인상은 불보듯 상황.

"차라리 소금세도 물려라", "산소세는 왜 안 뜯어가냐", "담배세 효과는 정말 있었나…" 서민들의 질타가 심상찮다.

▶천정부지 치솟는 물가에 일명 '보유세 폭탄'까지, 타들어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최근 정치권에서 각종 증세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법인의 연간 소득에 1%를 청년일자리 조성을 위해 거둬들이자는 '청년세'부터, 환경보전을 위해 화석연료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1당 8만원을 걷자는 '탄소세'까지…. 이들 세금법안에는 나름의 합당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선뜻 받아들이기에는 뭔가 억울하다.

나랏빛 1000조 시대, 국고가 바닥 났다는데…. 코로나 상황을 반영한다해도 씀씀이가 걱정스럽던 차에 들려오는 잇단 증세 소식, 일부에서는 "빚잔치가 시작됐다", "재난지원금 청구서가 돌아왔다"며 우려를 보낸다.

국가가 하는 일 철석같이 믿고 따르는 대부분의 국민들. 제일 큰 문제는 이런 국민들에게 '내가 낸 세금이 내 이웃의 생계를 위해, 내 나라의 발전을 위해 쓰여질 것'이라는 믿음을 주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야말로 설탕 권하는 사회, 그들만의 땅투기, 내로남불 정치싸움 등 잇달아 터져 나오는 씁쓸한 뉴스에 없던 믿음마저 무너지는게 사실이다. 소리쳐 본다. "세금 더 낼테니 믿음을 달라."

각설탕 3개가 들어 있다는데, 당장 커피믹스라도 끊어야 하나…. 고민도 잠깐, 속 답답한 뉴스로 도배된 현실속에서 달달한 커피 한잔과 초콜릿 한쪽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신비의 명약, 포기할 수 없는 위로다. 편집2국 편집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인터뷰] 진성철 특허법원장 "지식재산 국경 없는 경쟁시대, 국민과 기업권리 보호"
  2. 초등 기초학력 지원 4~6학년은 '사각지대'
  3. "충남 스마트 축산단지, 갈 길 먼데…" 용역비 전액 삭감 논란
  4. 순직 소방공무원 합동안장식
  5. '초소형군집위성 1호' 24일 오전 7시 32분 발사, 임무궤도 안착하고 교신 성공
  1. 심사평가원 대전충청본부, 대전충청지역 종합병원 간담회
  2. 경비노동자 "대전시 고용안정 개정안 환영"…실질적인 방안 촉구
  3. CTX 출발역인 정부대전청사역 현장점검 나선 백원국 차관
  4. 표결만 4번 '충남학생인권조례' 또 다시 폐지로
  5. 대전사회복지사협회 ‘대만 사회복지현장 탐방’ 국외 연수

헤드라인 뉴스


항우연 연구자들 징계 위기… 노조·조승래 의원 “표적감사 규탄”

항우연 연구자들 징계 위기… 노조·조승래 의원 “표적감사 규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노동조합과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국회의원(대전 유성구갑)이 항우연 연구들에 대한 정부의 감사 처분 철회와 탄압 중단을 요구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조승래 의원과 서 전국과학기술노동조합 한국항공우주연구원지부(항우연 노조)는 25일 국회 소통관에서 '항공우주연구원 표적·보복감사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3년 9월 4일부터 올해 3월 27일까지 206일간 항우연을 대상으로 특정감사를 벌여 최근 결과를 통보했다. 과기정통부는 감사 결과 공개를 거부하고 있으나, 전..

류현진 100승 재도전 실패의 의미...한화이글스, 반등 가능할까
류현진 100승 재도전 실패의 의미...한화이글스, 반등 가능할까

한화이글스가 최근 거듭된 악재 속 연패까지 기록하면서, 리그에서의 순위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침체한 팀 분위기 속 최원호 감독의 리더십도 시험대에 오른 가운데 4월의 마지막 일정을 통해 한화가 반등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현시점에서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류현진의 프로야구 KBO리그 개인 통산 100승 재도전의 실패다. 류현진의 100승 기록 달성은 지난달까지만 하더라도 쉽게만 보였던 도전 과제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류현진은 4월 24일 경기도 수원케이티위즈파크에서 열린 KT wiz와의 원정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

`FC 프로 마스터즈` 26일 대전서 개막… 아시아 4개국 최강자 가린다
'FC 프로 마스터즈' 26일 대전서 개막… 아시아 4개국 최강자 가린다

한국, 중국, 태국, 베트남 총 4개국이 참가하는 국제대회 'FC 프로 마스터즈'가 26일 대전 이스포츠 경기장에서 개막한다. 대전시와 대전정보문화산업진흥원이 지원하는 'FC 프로 마스터즈'는 FC(전 FIFA 온라인 4) 리브랜딩 이후 개최되는 첫 국제대회로 28일까지 진행된다 'FC 프로 마스터즈'는 'FC 온라인' 경기와 'FC 모바일' 경기로 나뉘어 진행된다. 'FC 온라인' 대회는 KT롤스터와 광동프릭스가 한국 대표로 출전하고, 'FC 모바일' 대회는 'SODA'와 'JOSCAR'가 경기를 치른다. KT롤스터와 광동프릭스는..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청권 광역 응급의료상황실 방문한 한덕수 총리 충청권 광역 응급의료상황실 방문한 한덕수 총리

  • 지하식 소방용수 인근에 쌓인 건설폐기물 지하식 소방용수 인근에 쌓인 건설폐기물

  • 한자리에 모인 대전 신기술 개발제품 한자리에 모인 대전 신기술 개발제품

  • CTX 출발역인 정부대전청사역 현장점검 나선 백원국 차관 CTX 출발역인 정부대전청사역 현장점검 나선 백원국 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