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타인(당신)의 손금이 나의 손금에도 그려져 있기에

  • 오피니언
  • 세상속으로

[세상속으로]타인(당신)의 손금이 나의 손금에도 그려져 있기에

김재석 소설가

  • 승인 2021-04-19 09:24
  • 신성룡 기자신성룡 기자
2021030801000706400028551
김재석 소설가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날엔 한 1급 지체 장애를 앓았던 시인을 떠올린다. 일명 ‘돌시인’이라 불리며 모 방송국에서 그의 다큐멘터리가 방영((MBC 휴먼다큐 사랑, 돌시인과 어머니, 2007년) 된 적이 있다. 나는 그의 생전에 모 교회 예배당에서 만났다. 그는 뻣뻣하게 몸이 굳어 앉아서 예배를 드릴 수 없었다. 예배당 한 켠에 돌비석처럼 세워져 있었다. 처음 인사를 나눌 땐, 눈 초점조차 서로 맞추기 힘들어 여간 낯설지 않았다. '돌시인'으로 불린다는 말에 그의 작품이 궁금했지만, 왠지 그의 장애가 편견의 벽이 되어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지금은 그의 시 몇 편을 내 핸드폰 사진 파일에 넣어두고 꺼내본다.

"새벽, 겨우겨우 라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아침 햇살을 볼 수 있기를/ 아무리 천대받는 일이라 할지라도/ 일을 할 수 있기를/ 점심에는 땀 훔치며/ 퍼져 버린 한 끼 라면이라도 먹을 수 있기를/ 저녁에는 쓴 소주 한잔 마시며/ 집으로 돌아오는 기쁨을 느낄 수 있기를/ 타인에게는 하잘것없는 이 작은 소망이/ 내게 욕심이라면, 정말 욕심이라면/ 하나님 저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소망' 시집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에서.

그는 13살에 온몸이 돌처럼 굳어가는 희소병으로 방구석에 갇혔다. 20살을 못 넘길 거라고 의사들이 말했을 때, '이대로 보낼 수 없다'라는 부모의 극진한 보살핌으로 그는 49살까지 살았다. 내가 아는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보살피랴, 화장품 외판원 하랴, 그의 아버지는 연탄배달 막노동에 환경미화원까지, 그들 삶도 버거웠을 건데….

"요것 먹어라."/ 오늘도 막노동으로 하루를 끝마치고/ 어둑어둑해져서야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불쑥 내미신 새참 우유/(중략)/어느덧 칠순을 바라보시는 아버지,/ 당신의 등골을 휘게 한 막노동은/ 한잔 술로 잊으면서도/ 당신의 새끼는 결코 잊지 못해/ 자식이란 놈의 눈시울을/ 콕콕 찌른 그 우유는 바로/ '부모'였습니다./ 아버지도 목이 마를 텐데/ 새참 우유/ 이젠 집에 가져오지 마세요." -'부모' 산문시집<아버지, 울었습니다>에서



사실, 나는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뒤에야 편견을 깨고 그의 작품을 찾아보았다. 그의 시집을 읽는 동안, 나는 시인인 이해인 수녀가 생각났다. 그녀의 시는 난해한 기교나 묘사보다는 삶의 순수한 본질을 생각에 담아 펼쳐내어 누구나 편히 읽을 수 있다. 박진식 시인의 시에도 세상에 태어나 하루하루 희소병과 싸워야 하는 실존적 삶 그 자체가, 그의 속내 그대로 담겨있었다.

"당신은 내게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나는 빈손이어서/ 드릴 게 없습니다/ 당신은 내게 많은/ 사랑을 던져 주셨지만/ 나는 빈손이어서/ 드릴 사랑조차 없습니다/ 드릴 그 무엇도 없어/ 가만히 빈손인/ 나의 손바닥을 쳐다봅니다/ 내 생의 손금에는/ 당신의 손금이 그려져 있고/ 내 생의 손금에는/ 너무 많은 상처가 있어/ 당신 또한 눈물이 많습니다." -'빈손' 시집 <흐르는 눈물을 스스로 닦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에서.

'빈손'은 늘 곁에 두고 음미하는 시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실존 그 자체이고, 오직 '상황-속-존재'일 뿐이라고. 신이 죽어버린 시대에 삶을 정당하게 해주는 가치와 질서도 찾을 수 없으며, 어떤 가치에 대해 핑계도 변명도 찾을 수 없을 거라고….' 말한다. 그의 철학적 항변을 부정할 순 없지만 '빈손'이란 시를 음미하다 보면 누군가 가만히 나의 빈손을 보듬는 손길을 느끼곤 한다. (아마 그 일지도 모른다) 나의 손금에도 분명 부정할 수 없는 타인(당신)의 손금이 새겨져 있기에…. 우리는 그렇게 공명하는 존재가 아닐까./김재석 소설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이스라엘, 이란 보복 공격에 건설업계 '긴장'
  2. 윤석열 대통령-이재명 대표 다음주 ‘용산 회동’ 성사되나
  3. [날씨] 20일부터 비 오며 다시 서늘…대전 낮 최고기온 18도
  4. 대전극동방송 창립 35주년 기념 희망콘서트 봄.봄.봄
  5. [아침을 여는 명언 캘리] 2024년 4월19일 금요일
  1. "미래 선도하는 창의융합 인재로" 대전교육청 과학의 날 기념식 개최
  2. 보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활동지원팀 오지희 팀장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3. '2025년 의대 정원' 1000명 선까지 낮춰 정한다
  4. 의대증원 규모 대학에서 자율적 판단키로…"원점재검토를" 목소리
  5. 근로복지공단, 푸른씨앗 전국 1만5600개 사업장 가입

헤드라인 뉴스


소진공 본사 유성구 이전 확정… 중구 “원도심 버리나” 거센반발

소진공 본사 유성구 이전 확정… 중구 “원도심 버리나” 거센반발

대전 중구 원도심에 있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유성구 신도심으로 이전하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소진공을 지켜내야 하는 중구는 정치권까지 나서 이전에 전면 반대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유성구는 중구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해 대체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적극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18일 소진공이 유성구 지족동 인근 건물로 이전하는 것과 관련해 중구 정치권에서는 잇따라 반대 입장을 내며 적극 만류에 나섰다. 김제선 중구청장은 이날 중..

윤 대통령, 4·19혁명 기념 참배… 조국당 “혼자 참배” 비판
윤 대통령, 4·19혁명 기념 참배… 조국당 “혼자 참배” 비판

제64주년 4·19혁명을 기념하는 윤석열 대통령의 참배를 놓고 조국혁신당이 “여야와 정부 요인도 없이 ‘혼자’ 참배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19일 오전 8시 서울 국립 4·19 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했다. 참배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과 오경섭 4·19민주혁명회장, 정중섭 4·19혁명희생자유족회장, 박훈 4·19혁명공로자회장, 정용상 (사)4월회 회장, 김기병 4·19공법단체총연합회 의장 등이 함께했다. 사의를 표명한 대통령실 이관섭 비서실장과 장호진 국가안보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인성환 국가안보..

소진공 이전 후폭풍… 중구 강력반발 유성구 신중 속 환영 감지
소진공 이전 후폭풍… 중구 강력반발 유성구 신중 속 환영 감지

대전 중구 원도심에 있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유성구 신도심으로 이전하는 사실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지역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소진공을 지켜내야 하는 중구는 정치권까지 나서 이전에 전면 반대하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반면, 유성구는 중구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해 대체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정치권 일각에선 적극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내놓기도 했다. 18일 소진공이 유성구 지족동 인근 건물로 이전하는 것과 관련해 중구 정치권에서는 잇따라 반대 입장을 내며 적극 만류에 나섰다. 김제선 중구청장은 이날 중..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선거 끝난지가 언젠데’ ‘선거 끝난지가 언젠데’

  • 4월의 여름 풍경 4월의 여름 풍경

  • 선거 및 폐현수막의 화려한 변신 선거 및 폐현수막의 화려한 변신

  • ‘원색의 빛’ 뽐내는 4월의 봄 ‘원색의 빛’ 뽐내는 4월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