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 칼럼] 이대남·녀를 위한 명랑 코메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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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 칼럼] 이대남·녀를 위한 명랑 코메디

송 전(한남대 명예교수, 공연예술학)

  • 승인 2021-05-05 12:31
  • 신문게재 2021-05-06 19면
  • 한세화 기자한세화 기자
송전
송 전 한남대 명예교수, 공연예술학
요즈음 '이대남', '이대녀'라는 신조어가 신문을 휘갈고 있다. 불안한 2·30대를 지칭하는 말이다. 지금 이들은 뜨겁게 분노하고 깊게 절망하고 넓게 냉소적이다. 이들의 마음을 어찌 어루만져 줄 수 있을까? 기성세대들은 당혹해하며 겁을 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들에게 살짝 위안과 어렴풋한 답을 던지는 약간 꼰대스럽지만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한 편의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2020년 내내 꽁꽁 얼어붙어 있던 공연계가 대전예술의전당 스프링페스티벌을 통해 비상의 날갯짓을 시작했는데 그 일환으로 내어놓은 '신비한 요리집 백년국수'(김태린 작, 박소영 각색·연출, 이인복 예술감독, 2021년 4월 22일 목요일~24일 토요일)이 그것이다.

어느 도시의 폐가에서 집안의 아기 울음을 연주하는 삼신할멈(문혜인 분)과 집의 대들보를 지켜주는 성주신(김경탁 분)이 백수 신세가 되어 서로 짜증을 내고 있다. 그런 차에 구천을 떠도는 소천(신주현 분) 망령이 폐가를 찾아든다. 전생의 연인을 닮은 소천의 출현에 성주신 마음이 야릇해진다. 여기에 더해 이 폐가의 상속녀 선화(강승리 분)가 돌아온다. 두 신은 모처럼 흥분에 휩싸인다.

선화는 상처가 많은 이대녀이다. 출산욕으로 세상을 뜬 모친을 본 적이 없고 홀아비의 냉대에 반발해서 가출했는데, 그 사이에 부친은 사고로 세상을 떴기에 사고무친의 고아다. 현재 서울 어디에선가 알바를 하고 있다. "이름은 정규지만, 비정규직"인 국수집 알바 생 남친(김광원 분)과 천 일째 만나고 있지만, 그와의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단정하고 있다. 자신이 그야말로 칠포 세대 - 연애, 결혼, 출산, 육아, 내 집, 일터, 인간관계 등 '7가지를 포기한 세대'의 전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규에게 일방적인 절교 선언을 한 다음 신용카드 연체료를 갚기 위해 자신이 떠맡게 된 폐가를 처분하러 내려온 터다.



상황 파악을 한 두 가택신은 다급해져서 선화의 일에 개입한다. 그녀에게 부친의 모습으로 현몽해서 집 파는 것을 만류하고, 찾아온 정규와 선화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데 더해 자연스런 임신으로 두 사람을 묶고, 증조할머니가 시작해서 한때 번성했던 '태평 국수'집 전통을 이어가게 한다. 선화는 사별한 부친과도 화해하고, 성주신은 소천의 이승 원한을 풀어주고 그녀를 집안 재물신인 조왕신으로 앉힌다. 성주신의 전생업도 풀린 셈이다. 모두가 해피엔딩이다.

연극 곳곳에 묻혀있던 웃음지뢰들이 터지며 관객의 웃음을 자극한다. 인간과 신들의 겹층 구조에 따른 엇갈린 대화가 만들어내는 웃음, 빙의의 효과, 작은 말장난 등이 부담 없는 명랑 코메디를 만들어 낸다. 꼰대 세대들이 맴젯(MZ)세대를 향해 하고픈 말이지만 쉽게 할 수 없는 말들을 삼신할멈과 성주신의 입을 통해 전달한다. 사실 '7포'의 고민이 없는 세대, 시대,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걸 돌파하려는 의지일 것이며, 욕망의 한계선을 어디에 두느냐 일 것이다. 현대 유물론의 거두 맑스의 뿌리가 닿아 있는 곳도 결국은 '정신'이었다. 연극은 에둘러 주어진 사회 여건 속에서 소망을 성취하기 위한 정신과 의지를 환기시킨다.

자신이 몸담은 사회를 '헬'이라고 생각하던 딸 선화에게 아버지로 빙의하여 건네는 성주신의 말이다. "이승에서 고민고민 하던 것들 이제 와서 생각하믄 참 다 부질없어. 인생은 멋지고 짧은 여행이여.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최선을 다해 그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거여.", 그 중 '최선의 노력'이라는 말이 이 연극을 통해 꼰대들이 이십녀·남에게 해주고픈 말일 것이다. 또 그들도 이런 식의 자신 있는 조언을 듣고 싶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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