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AI(인공지능), 도구와 창작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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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즘] AI(인공지능), 도구와 창작의 경계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 승인 2025-12-30 10:24
  • 신문게재 2025-12-31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김성수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이탈리아 기호학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중에 '장미의 이름'이라는 작품이 있다. 혹 독자 중에는 숀 코너리 주연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영화를 기억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다. 중세 수도원에서 연쇄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수사들은 목숨을 걸고 어떤 책의 유출을 막으려 했다. 그 책은 놀랍게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 웃음에 관한 논고였다. 웃음이 신의 질서를 위협한다고 믿었고, 맹인인 수도원의 장서 관리인은, 그 책을 접한 모든 이를 독살했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그 배경에는 역사적 진실이 있다. 중세시대 수사들은 양피지에 한 글자씩 정성스럽게 성경을 필사했고, 이 작업과 이로 얻어진 지식을 신성시했다. 그런데 15세기,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기가 등장했을 때, 이들은 두려웠을 것이다. 책(성경)이 대량으로 유통되면 지식의 신성함과 아름다운 필사 예술이 같이 사라질 것이니까. 하지만 역사는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인쇄술은 지식의 독점화를 무너뜨렸고,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의 문을 활짝 열어 주었다. 필사 예술은 사라졌지만, 인류는 비약적인 지적 팽창을 경험한다.

2022년 말 ChatGPT가 등장했다. 전 세계는 혼란에 빠졌다. 대학들은 AI 사용을 금지하거나 탐지 소프트웨어를 도입했다. 국제사진전에서는 AI로 생성한 사진이라 작가가 수상을 거부했고, 일본 문학계에서는 권위 있는 상을 받은 작가가 수상 소감에서 ChatGPT를 활용한 것을 밝히기도 했다. 저명한 학술지에서도 AI가 작성한 것으로 의심되는 논문들이 게재되어 논란이 일었다.

창작의 본질에 대한 화두로 보면, 10여 년 전 화가 조영남의 위작 논란이 있었다. 조수에게 그림 일부를 그리게 한 것으로 사기 혐의를 받았을 때, 대법원은 무죄를 확정하며 창작의 원칙을 확인해 주었다.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붓을 잡느냐 가 아니라 누구의 비전이 작품에 담겼느냐 는 것이었다. "AI를 쓰는 것은 표절이다"라는 주장도 있다. 이해할 수 있는 우려다. 하지만 모든 인간들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배우며 성장한다. T.S. 엘리엇은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고 했다. 모든 창작은 어느 정도 이전 결과물의 영향 아래 있다. 핵심은 투명성과 책임이다. AI를 사용했다면 그 사실을 밝히고 최종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또 AI는 우리를 생각으로부터 해방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단순 반복 작업에서 해방되어, 더 창의적이고 전략적으로 사고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AI는 인간의 '대체재'가 아닌 창작활동의 '파트너'인 것이다. 좋은 프롬프트를 작성하는 능력, AI 결과물의 품질을 판단하는 능력, 그것을 자신의 목적에 맞게 편집하는 능력. 이것들은 새로운 형태의 리터러시이며, 중세 필경사가 라틴어 문법을 알아야 했듯이, 21세기 창작자가 갖춰야 할 필수 역량일 것이다.

한국의 주요 대학들의 비대면 시험에서 집단 부정행위가 있었고, 이에 대처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듯하다. 필자가 감히 의견을 낸다면, 대학들이 AI를 금지하는 것은 중세 수도원이 인쇄기를 금지하려 했던 것과 같다. 학생들은 졸업 후 AI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세상에 나간다. 대학이 해야 할 일은 금지가 아니라 교육일 것이다. 어떻게 AI를 윤리적으로 사용할 것인가? 어떻게 AI의 한계를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평가할 것인가? 어떻게 AI를 도구로 활용하되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을 것인가?

'장미의 이름'에서 신념으로 뭉친 노수도사(老修道士) 호르헤는 금지된 책을 독으로 지켰다. 하지만 지식은 결코 금지될 수 없었다. 중세 필경사들은 인쇄술을 두려워했지만, 인쇄술은 인류 문명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AI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AI 사용 여부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지 질문하는 능력이다. 다만, AI가 제시하는 답을 무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AI는 때로 그럴 듯한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편향된 학습 데이터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한다.

기술은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을 두려워하며 쇠사슬로 묶을 것인가, 아니면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올바르게 사용할 능력을 키울 것인가 뿐이다. 역사는 이미 답을 보여주었다. 필자도 이 컬럼에 Claude Sonnet 4.5를 활용했다. 김성수 충남대 에너지과학기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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