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한해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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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한해의 씨앗을 뿌리는 마음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6-04-20 10:16
  • 수정 2026-04-20 12:45
  • 신문게재 2026-04-21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풍경소리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봄빛이 짙어짐에 잠잠하던 내면도 덩달아 일렁거린다. 겨우내 땅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씨앗과 추위에 떨던 나무도 천지의 흐름에 동참하고자 저마다의 결정적인 순간에 얼굴을 삐죽 내밀었다. 해마다 맞이하는 봄이지만 새봄은 늘 설렌다.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다는 스물네 절기의 하나인 '곡우'가 다가오니 대지에 희망을 심는 이들의 마음은 바쁘다. 얼어있던 땅을 바라보며 무엇을 심을지 궁리했는데 이제부터 텃밭에 손톱만큼의 빈 곳이라도 남아 있지 않도록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며 찾아야 한다. 곧 종묘상에 가서 씨앗과 모종을 사서 심을 것이다.

이즈음이면 가드닝 분야의 오래된 명저 카렐 차베크의 '정원가의 열두 달'을 꺼내 들게 된다. "정원가란 흙을 가꾸는 사람"'이라는 문장이 여운으로 남았다. 화학비료가 귀했던 옛 시절에는 가을부터 두엄을 만들어 봄에 땅에다 내곤 했다. 오로지 땅심을 북돋아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오늘날 흙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농협에 신청해 받은 퇴비에다 몇 가지 보조재가 더해지고 나면 흙은 멀칭비닐 안에서 산업재로 기능할 뿐이다.

해가 갈수록 봄날의 농촌에는 설렘만큼 불안이 교차한다. 노는 땅이 늘어나고 들판에서 농사짓는 젊은이는 드물다. 매년 되풀이되는 이상기후로 인한 폭염과 폭우, 가뭄으로 인해 작물들은 몸살을 앓고 있고, 병충해는 기승을 부린다. 이에 나라마다 고온과 저온, 병해충에 강한 '기후내성 종자' 개발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관행농법에서는 농약, 제초제가 필수품이다. 잎에 뿌리는 농약은 잔류성분에 대해 소비자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 규제가 많다. 문제는 땅에 뿌리는 흔히 소독제라고 하는 토양 살충제다. 해마다 재배하는 고구마 감자 마늘 고추 파 등 농산물 재배 시 토양 살충제를 넣는다. 잔류기간이 짧다고 하지만 계속 농사를 짓다 보면 농약 성분이 토양 속에 쌓일 수 있다. 이미 땅속에 지렁이 같은 익충은 잘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우리의 욕심을 땅에다 자꾸 섞으면 땅도 아파하고 언젠가는 병이 들지 모를 일이다.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고 산다. 유튜브나 TV의 '먹방' 프로그램에서는 농산물로 만든 맛깔스러운 먹을거리를 보여준다. 하지만 아무리 음식이 먹음직해 보여도 재료가 좋지 않다면 우리의 몸은 건강하지 못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다. 우리는 화려한 음식에 현혹되어 가고 있다. 이제는 물을 마셔도 그 물의 기원을 생각하지 않듯이 농산물의 밑바탕이 되는 흙에 관심이 없다. 일 년 동안 농촌의 흙을 밟아보지 못한 사람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농사의 밑바탕인 흙은 사랑을 받은 만큼 건강한 땅심으로 소비자에게 보답해 줄 텐데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흔히 농사를 자연과 동행하는 생명산업이라 한다. 아니, 농사는 인간의 욕망이 담긴 인간을 위한 산업이다. 그 욕망의 밑바탕에는 마음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마음밭'이라고 부를 수 있다.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나고 감정이 분출하는 곳이다. 그곳이 알고리즘과 욕심, 비교와 아집에 의해 오염되고 있다. 더욱이 농사에 가장 중요한 날씨는 정말이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장자' 산목편에 나오는 '주인 없는 빈 배(Empty boat)'의 이야기처럼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인생살이도 농사와 비슷하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은 늘 생겨나고 하소연할 데도 딱히 없다. 올라오는 감정을 잘 살피고 그때의 조건에 맞추어 자기를 다독거려 갈 수밖에 없다.

4월, 완연한 봄이다. 들녘이 부산하니 덩달아 마음도 바쁘다. 텃밭 농사가 좋은 점은 과거와 미래로 늘 분주하게 오가는 마음이 지금 여기에서 멈춘다는 점이다. 새봄을 다시 만났다는 사실, 이 눈부신 봄날에 대지의 호흡과 더불어 할 수 있는 일이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올해는 나의 마음 밭을 어떻게 일구어 어떤 씨를 뿌릴 것인가, 하고 자문해본다. 모두의 마음속에 배려와 나눔, 공감과 연대의 씨앗들이 많이 뿌려져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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