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이돈형 시인의 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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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공론]이돈형 시인의 시세계

민순혜/수필가

  • 승인 2026-06-03 13:2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잘디잘아서
자투리 시간을 메꾸려고 집은 시집 <잘디잘아서> 첫 장을 열자, 툭 던지듯 쓴 '시인의 말'을 읽는데 섬광이 비치는 듯했다.

//오늘의 내가 아무리 막무가내여도/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_이돈형//

누구나 쓸 수 있는 문장인데도 전율이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시는 시인의 다양한 삶의 체험 속에서 탄생한다고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아무리 가슴 뭉클한 삶의 체험이라도 그것이 상상력을 통한 시 적 체험으로 승화(昇華)시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러한 시에서 삶의 의미와 꿈은커녕 일상의 지루한 설명만 듣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시인의 시는 두 줄 문장을 읽고도 가슴이 일렁였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시를 읽는다.

//헌 집 같은 의자에 앉아/헌 집에 든 바람 같은 아버지가 담배를 태우신다//어쩌다/또 한 대 태우신다//공복에 태우는 담배 맛은 정든 소멸처럼 애태움을 가시/게 해//내뿜는 연기가 생의 뒷주머니 같은 골목에 퍼지다 종일// 담벼락을 옮겨 다니며 중얼거린 의자의 그림자에 가 앉는/다//어쩌다 하루란 게 있어/의자는 허(虛)의 혈(穴)을 찾아 하루치 삭고 아버지는 하루//치 삶을 개어놓는다_중략<의자>중에서_이돈형 시

시인은 충남 보령 출생으로 2012년 <애지>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우리는 낄낄거리다가>(천년의시작, 2017), 2018년 김만중 문학상, 2019년 애지 작품상, <뒤돌아보는 사람은 모두 지나온 사람>(걷는사람, 2020), <잘디잘아서> (상상인, 2022) 등이 있다. 2022년 제3회 선경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이란 인류에게 그 무엇보다도 값진 선물인 것 같다.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서다. 나의 아버지는 로맨틱한 분이 절대로 아니신데도 어찌 된 일인지 문학전집을 책장에 가득 진열해 놓으셨다. 세계문학전집, 한국문학전집, 이광수 문학전집, 삼국지, 도스토옙스키 전집 등…. 내가 어릴 때는 놀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이어서 나는 틈만 나면 책을 꺼내 읽곤 했는데, 그래선지 나는 지금도 문학을 좋아한다.

이 시인을 만난 곳도 대전시민대학 시 창작 강습반에서였다. 시 한 편 써보려고 강습반에 갔는데, 처음에는 낯설었다. 시인의 소탈한 모습에서 참 시인을 느끼게된 것은 그다지 오래지 않아서였다. 시인은 담담히 말한다. 감정을 시적 비유와 리듬을 통해 더 깊고 선명하게 전달할 수 있다고. 또한 시는 어떤 사람에게는 치유의 방식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마음속에 쌓인 감정이나 상처를 밖으로 꺼내는 과정에서 정리가 되고, 조금은 가벼워져서일 것이다.

또한 시는 보석을 다루듯 아름다움을 만들고 싶어서 쓰기도 한다. 리듬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창작이고 즐거움이니까. 시인의 시 <나의 태몽은 나무랄 데가 없으니까요>를 읊조린다.

/내 태몽은 캄캄한 동굴 속에서 한 송이 어리연꽃을 안은/ 거라 했습니다//당신은 그렇게 날 낳으시고/당신은 그렇게 날 남기시어//빗방울 떨어지고//두 손 그러모으며 떨어지는 것만 보고 있습니다//반쯤 진 하루가 떨어지고 별안간이 떨어지고 당신은 그리/움을 떨어뜨리고 있어 나는 빗방울만 들여다봅니다//어린 날 울다 잠들듯 잠에서 막 깬 빗방울이 잠깐의 꿈을/ 털어낸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어둠을 입으로 후후 불어내며 당신이 나를 바라보듯//나는 온 그리움을 태워 낸 흰 빛깔로 첨벙첨벙 수면 위를/ 건너기 시작합니다//눈물겨운 일들은 어떻게든 끝을 보고 만다는 것을 실감하/며 내가 아직 어려서 눈물 떨구어도 당신은 분명 나를 안을/ 겁니다//그게 내 태몽이었으니까요//나의 태몽은 나무랄 데가 없으니까요//_이돈형 시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수필가
민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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