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신록의 계절, 6월에 듣는 베토벤의 여름 이야기

  • 오피니언
  • 춘하추동

[중도시평] 신록의 계절, 6월에 듣는 베토벤의 여름 이야기

최현숙 침신대 기획처장

  • 승인 2026-06-09 17:24
  • 신문게재 2026-06-10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clip20260609091828
최현숙 처장
우리나라의 기후도 예전 같지 않아 여름은 점점 길어지고 날이 거듭할수록 대지는 뜨거워진다.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가마솥더위와 에어컨 실외기의 소음 속에서 현대인들은 쉽게 지치고 날카로워지기 마련이다. 끈끈하고 짜증스러운 여름은 얼음이 가득한 청량음료나, 아이스 아메리카노조차도 더위와 불편을 해소하기는 어렵다. 이런 여름날, 초록빛 그늘 밑에서 듣는 베토벤의 음악을 소개한다. 베토벤 음악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인 선입견을 완전히 뒤집을 정도로 잔잔하지만, 힘이 넘치는 음악은 뜨겁게 달궈진 마음의 온도를 낮추고, 지친 심신에 위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흔히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이라고 하면 격정적인 운명에 맞서 싸우는 고뇌의 음악가, 불굴의 의지로 수많은 명곡을 작곡한 영웅의 모습을 떠올린다. 서양 음악사에 나타난 그에 대한 평가는 "바흐는 음악의 구약성서이고 베토벤은 신약성서"라고도 하고 "베토벤의 음악은 인간 정신의 해방을 표현한다"라고 할 만큼 절대적이다. 청력을 잃었다는 것은 음악가로서는 사형선고와 같은 것인데 그런 처절함에도 굴하지 않았던 그의 음악은 철저한 형식의 기초 위에 자유와 승리를 갈망하는 강렬한 투쟁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베토벤도 가끔은 모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온전히 자연에 귀 기울일 때가 있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1808년 완성된 교향곡 제6번 F장조, 작품 번호 68번인 《전원(Pastoral)》이다.

이 작품은 베토벤만이 표현할 수 있는 강하면서도 세심한 자연 찬가다. 평생을 병마와 힘든 인간관계 속에서 고뇌해야 했던 거장이 남긴 가장 부드러운 자연과의 대화이고 삶을 향한 진솔한 고백이기도 한 《전원》 교향곡은 그의 창작 인생 전체를 통해서 보더라도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격렬하게 요동치는 교향곡 5번 《운명》과 같은 시기에 작곡되어 초연 시기도 비슷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곡의 성격과 분위기는 확연하게 다르다. 끝없는 항변과 고뇌, 그리고 마침내 승리를 예견하는 강렬한 《운명》 교향곡과는 달리 《전원》 교향곡은 베토벤이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 오스트리아 빈 근교의 전원 마을 하일리겐슈타트(Heiligenstadt)의 숲을 거닐며 느낀 감사함과 평온함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곡은 음악사적으로도 중요도가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될 만큼 베토벤의 걸작 중 하나인데 이 작품을 통해 베토벤은 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4악장 구조를 깨고 총 5악장으로 구성되었으며, 악장마다 '시골에 도착했을 때 느끼는 유쾌한 감정', '시냇가의 풍경' 같은 구체적인 표제(제목)를 붙였다. 이는 음악이 단순히 추상적인 소리의 조합을 넘어, 풍경과 인간의 감정을 서사적으로 묘사할 수 있음을 증명한 것으로 19세기 낭만 음악의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이 대담한 시도는 낭만주의의 거장들, 베를리오즈, 리스트, 슈만을 비롯한 작곡가들에게 '표제음악(Program Music)'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음악적 방향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한다. 베토벤이 그려낸 전원의 다양한 풍경은 메마르고 지친 대지에 쏟아지는 시원한 소나기 같기도 하고 울창한 수풀이 만들어내는 짙은 초록색 그늘이 느껴지게도 한다. 고통(폭풍우) 뒤에 찾아온 평화로운 선율의 아름다움은 숭고한 기운을 느낄 만큼 충만하게 마음을 채우고 위로한다. 화려하지 않지만, 장엄한 음색으로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 순간은 마치 자연이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듯한 깊은 감동을 준다.

도시의 소음과 더위에 지친 날,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이 선사해 주는 시냇물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강렬한 폭풍우 후의 잔잔한 평온함을 꼭 경험해 보면 좋겠다. 음악 안에서 진정한 "나"를 만나고 보듬고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는 여유가 이 여름에 꼭 필요할 것 같다.

/최현숙 침신대 기획처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교육 오석진號 출범 준비 본격화… 인수위 동부교육청에 마련
  2. 8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전…한전 원인 조사 중
  3. 66년 만에 이름 찾은 대전고 학생… 국가유공자 김태진 선생, 기념회 천만원 기탁
  4. [풍경소리] 물의 길을 새기며
  5. [한화에어로 참사] 대표·사업장장 입건… 중대재해·산안법 본격 수사
  1. 대전 신탄진농협-대전청과(주), 짜장면 무료나눔 행사
  2. KDI "중동전쟁 영향 불구, 반도체 호황에 완만한 개선세"
  3. 대전 대동천 하상주차장 15일부터 폐쇄
  4. AI·VR로 첼시 팬 경험 제안… 한남대팀 국제 프로젝트 우승
  5. [편집국에서] 애연가의 권리주장(2)

헤드라인 뉴스


허태정號 출항…`이장우 브랜드` 손질 나서나

허태정號 출항…'이장우 브랜드' 손질 나서나

허태정 대전시장 당선인의 인수위원회가 9일 공식 출범하면서 이른바 '이장우 브랜드'의 향배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대전 0시축제와 꿈씨패밀리는 단순한 축제나 캐릭터를 넘어 이장우 시정 4년을 상징하는 트레이드 마크라는점에서 향후 존치 여부와 활용 방향에 지역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9일 출범한 인수위는 민선 9기 시정 운영 방향을 설계하는 동시에 민선 8기 주요 정책과 사업에 대한 점검 작업에 착수한다. 허 당선인이 선거 과정에서 전임 시정의 정책 우선순위와 행정 기조를 비판하며 일부 사업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해 온 만..

한화에어로 참사 일주일 만에 아워홈 용인공장서도 끼임 사고
한화에어로 참사 일주일 만에 아워홈 용인공장서도 끼임 사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폭발 사망사고가 발생한 지 일주일 만에 한화그룹 계열 식품기업인 아워홈 용인공장에서도 중대 산업재해성 사고가 발생했다. 9일 경찰과 소방당국 등에 따르면 6월 8일 오후 2시 50분께 경기 용인시 처인구 남사읍 아워홈 용인2공장 4층 어묵꼬치 포장작업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50대 근로자 A 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목 부위가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A 씨는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오후 3시 25분께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부상자는 의식은 없으나, 심장 박동은 있는 상태"라며 "작년에도..

닭고기 소비자가 1년 새 20%가량 폭등... 밥상 물가와 외식물가 자극하나
닭고기 소비자가 1년 새 20%가량 폭등... 밥상 물가와 외식물가 자극하나

대전 닭고기 소비자 가격이 1년 새 20%가량 폭등하면서 밥상·외식 물가 부담을 키우고 있다. 복날과 월드컵 특수를 앞두고 닭과 관련된 식품 수요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시기에 원재료 가격 급등으로 전체적인 물가를 자극하고 있다. 9일 축산물품질평가원에 따르면 8일 기준 대전 육계 1kg 소비자 가격은 7273원으로, 1년 전 6064원보다 19.9%나 오른 것으로 집계됐다. 5월 말에서 6월 초까지만 하더라도 6900원으로 7000원선을 위협했으나 7000원을 넘어선 것이다. 대전 육계(1kg) 가격은 부산(7824원)과 세종(754..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혹서기 이동노동자 생수 나눔 캠페인

  • ‘무럭무럭 자라거라’ ‘무럭무럭 자라거라’

  •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및 전체회의 대전시장직 인수위원회 현판식 및 전체회의

  • 대전 대동천 하상주차장 15일부터 폐쇄 대전 대동천 하상주차장 15일부터 폐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