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인칼럼] 인생의 계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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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인칼럼] 인생의 계산기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승인 2026-07-12 12:44
  • 신문게재 2026-07-13 18면
  • 박병주 기자박병주 기자
변호사김이지사진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법인 전환을 준비하며 새 지역 사무소의 운영계획을 짜던 밤이었다. 매출이 한 푼도 없다고 가정하고, 첫 한 달을 버티는 데 얼마가 드는지 계산기를 두드렸다. 임대료, 관리비, 직원 급여, 변호사들의 보수, 세금, 각종 비용까지 하나씩 적어 내려가니 어느새 숫자가 꽤 묵직해졌다. 지금 있는 자금은 무엇부터 충당해야 하는지, 그리고 매출 없는 기간이 두세 달 이어지면 얼마가 부족해지는지 짚어보았다. 부족분은 결국 어디선가 끌어와야 했다. 신용대출이나 사업자대출이 가능한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동안 손끝이 조금 차가워졌다.

혼자 사무소를 꾸릴 때는 몰랐던 감각이었다. 그때는 최악의 경우라도 큰 손실 날 것은 없었다. 있는 사건들만 잘 마무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법인을 꾸리고 매출이 저조한 달을 가정하는 순간, 직원들의 월급날과 사무실 임대료, 계약서에 적힌 위약 조항까지 한꺼번에 떠올랐다. 만약 정말로 몇 달간 매출이 없다면, 그래서 마련해둔 자금이 바닥나면…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않은 손실을 떠안고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수도 있었다. 아, 이게 리스크를 진다는 것이구나. 사업을 한다는 게 이런 무게구나, 실감이 났다. 숫자 하나하나에 앞으로 몇 달의 삶이 걸려 있었다.

그 계산을 마치고 노트북을 덮으려는 순간, 이상하게도 얼굴들이 떠올랐다. 지금 진행 중인 이혼사건의 의뢰인들이었다. 오랫동안 벌지 않고 살림만 해온 분, 남편의 사업체 지분이 타인 명의라는 이유로 재산분할을 인정 못 받을 위기에 놓인 분, 양육비를 받아내지 못해 매달 마이너스 통장을 돌려막고 있다던 분. 그분들도 나처럼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것이었다. 다만 그분들의 계산기에 찍히는 것은 사업의 몇 달 치 운영비가 아니라, 남은 인생 전체를 지탱할 자금이었다.

나는 한 달의 리스크를 계산했을 뿐인데도 손이 차가워졌는데, 그분들은 앞으로 몇 년을 어쩌면 수십 년을 이 계산 하나에 걸고 있었다. 재산분할에서 몇 백만 원, 양육비에서 몇 만 원 차이가 나는 일을 두고 나는 그동안 얼마나 담담하게 서면을 써왔던가. 그 순간 알 수 없는 부채감 같은 것이 올라왔다. 이건 숫자 놀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남은 생을 버텨낼 수 있는지 없는지, 최소한 당장의 자립을 위한 충분한 자금이 될지, 안될지를 가르는 절체절명의 일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분들에게 이혼이란, 평생 또는 오랜 시간을 들여 함께 일궈온 가정이라는 하나의 사업체를 정리하며 마땅히 자기 몫을 챙기는 일이었다. 사업을 접을 때도 출자한 만큼의 지분은 끝까지 지켜내야 하듯, 그분들 역시 한 푼도 손해 보아서는 안된다. 그 사실이 이제야 피부로 와닿았다는 게 부끄러우면서도, 그래서 더 열심히 싸워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일었다.

그날 이후로 서면을 쓸 때 습관이 하나 생겼다. 재산분할표의 숫자 하나를 넘기기 전에, 그 숫자가 의뢰인의 몇 달치 생활비인지, 몇 년치 학원비인지를 한 번 더 헤아려보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그저 판례상 인정될 만한 비율을 계산해 서면에 옮겨 적었을 숫자들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읽힌다.

사업체의 자금 조달을 고민한 일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결국 돈이란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그것은 한 사람이 앞으로 버텨내야 할 시간의 길이이면서, 동시에 지금껏 지나온 시간 속에서 쏟아부은 노력과 에너지, 마음이 쌓여 만들어진 값이기도 했다. 내가 며칠 계산기를 두드려 겨우 마련한 그 돈에도 잠 못 든 밤과 초조했던 시간이 담겨 있었다. 하물며 한 사람이 평생을 들여 쌓아 올린 몫이라면, 그 안에는 그가 지나온 모든 시간과 앞으로 그가 살아내야 할 시간이 함께 담겨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 사실을 마음으로 알게 된 지금이, 변호사로서 조금 더 정직해질 수 있는 순간임을 깨달았다. 의뢰인의 편에서 의뢰인의 이익을 위해 진심을 다할 수 있는… /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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