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전문직 보조인력, 어디까지가 '보조'고 어디부터 '위법'인가?

  • 오피니언
  • 프리즘

[프리즘] 전문직 보조인력, 어디까지가 '보조'고 어디부터 '위법'인가?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 승인 2026-07-21 14:14
  • 신문게재 2026-07-22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2025061001000555500023201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의사, 약사, 변호사 등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대부분의 직역에서 보조 인력의 역할은 필수불가결하지만, 그들의 업무 범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한 법적 경계는 여전히 모호하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약국이나 병원 약제실의 경우를 들어보자.

약사법 제23조 제1항은 약사나 한약사가 아니면 의약품을 조제할 수 없다고 명시한다. 대법원은 '조제'를 "일정한 처방에 따라서 두 가지 이상의 의약품을 배합하거나 한 가지의 의약품을 그대로 일정한 분량으로 나누어 특정한 용법에 따라 특정인의 특정된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는 것등을 목적으로 사용되도록 약제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로 정의한다 (대법원 1992년 3월 31일 선고 91도2329 판결). 이 정의에 따르면, 약사가 이미 조제를 마친 약을 단순히 전달하거나, 완제품 형태의 약을 포장 그대로 꺼내주는 행위는 '조제'에 해당하지 않는다.

법원의 판결들은 대체로 '실질적인 지휘·감독' 여부를 유무죄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특히 최근 자동조제시스템(ATC)이 보편화되면서, 보조 인력의 행위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에 대한 법원의 판단 기준은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판례는 "자동조제기는 컴퓨터의 약국 전산시스템과 연동해 자동으로 정제(알약)를 분류·분배·포장하는 기기인데, 약사가 담당하는 조제 행위 중 일부를 자동조제기가 보조하는 것으로, 실질적으로 약사가 조제 행위 전반을 관리·통제·감독했다면 자동조제기의 작동을 위한 행위 중 일부 기계적인 행위를 약사가 직접 담당하지 아니했다고 하더라도 약사가 아닌 사람이 조제 행위를 담당한 것이라 단정할 수 없다."면서, 약사가 현장에서 지휘·감독하며 보조 인력이 자동조제기의 약품을 채우는 등 기계적이고 단순한 작동을 보조하는 행위는 약사법상 '조제'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바 있다(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2020년 12월 2일 선고 2020고단438 판결). 이는 보조 인력의 행위가 약사의 전문적 판단이 개입되지 않는 '손발'의 역할에 그쳤다고 본 것이다.

더 나아가, 의사나 약사가 전자처방시스템(EMR)에 처방을 입력하면 그 정보가 자동조제 시스템으로 전송되어 기계가 오차 없이 약을 포장하는 경우, 보조 인력이 단순히 '조제 시작' 버튼을 누르는 행위는 더욱 위법의 소지가 적다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의사의 지시에 따른 간호사의 조제 행위가 적법하려면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지휘·감독'이 있었거나 실질적으로 가능해야 한다고 판시했는데(대법원 2007년 10월 25일 선고 2006도4418 판결), 자동화 시스템은 사람의 실수나 자의적 판단이 개입될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므로, 오히려 이러한 지휘·감독의 취지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하는 방식으로 평가될 수 있다. 반면, 이러한 시스템 없이 약사가 부재한 상태에서 보조 인력이 독자적인 판단으로 약을 배합하거나 나누는 행위는 허용된 '보조'의 범위를 넘어선 '무면허 실행'으로 평가될 가능성이 좀 더 높다.

이러한 법리는 다른 전문직역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의료법, 변호사법 등 각종 전문직 관련법의 입법 취지는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고도의 전문적 판단이 필요한 핵심 업무는 반드시 해당 자격자만이 수행하도록 하는 데 있다. 판례는 일관되게 보건위생상 위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침습적 의료행위나 법률적 판단이 개입되는 상담 행위 등을 보조 인력이 수행하는 것을 금지한다. 결국, 관건은 해당 행위가 전문적 판단을 요하는 '본질적 부분'인지, 아니면 그 준비나 마무리에 해당하는 '기계적·사실적 부분'인지에 달려있다.

고도로 분업화·전문화되는 현대 사회에서 보조 인력의 활용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전문직업인 스스로 본인의 지휘·감독 책임 아래 보조 인력의 업무 한계를 명확히 설정하고, 보조 인력 또한 이를 숙지해 법적 테두리를 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함을 넘어, 해당 전문직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지키는 근간이 된다. /윤인섭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충청권 인구감소지역 15곳 그대로… 대전 원도심 3곳 ‘인구활력+지역’ 전환
  2. "우리 위성이다,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진 사출 지켜보며 환호
  3. 충남대 통합신청서 부결 한 달…“국립대 통합 재추진 필요” 민병권 대표 제언
  4.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5. "지천댐 건립 지자체 결정권 없어" 선 그은 박수현 지사…주민들 사이 찬반 대립 지속
  1. 누리호 5차 발사 성공…대전 한국형 뉴스페이스 도약 가속도
  2. 충남도 의정비심의위 열고 도의원 월정수당·의정활동비 협의… 매달 582만 원으로 잠정 결정
  3. 충남교육청 '2026 충남 교육 SNS 지원단' 54명 위촉
  4. [한글날 제정 100주년]AI 시대, 한글의 힘을 기르자
  5. ‘가갸날’에서 한글날까지 100년…대전·세종에서 즐기는 한글날

헤드라인 뉴스


대전 무임교통 3만원 제한… 어르신 3명중 1명 한도초과

대전 무임교통 3만원 제한… 어르신 3명중 1명 한도초과

대전시가 내년부터 70세 이상 어르신 무임교통 지원을 월 3만원 한도로 축소하기로 한 가운데 현재 이용자 3명 중 1명 이상이 지원 한도를 넘겨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 방식도 현재 사실상 무료 이용에서 본인이 교통비를 먼저 결제한 뒤 이용액을 돌려받는 방식으로 바뀔 예정이어서 제도 변경에 따른 고령층의 체감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7일 대전시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어르신 무임교통카드 이용자는 모두 11만 1997명이다. 이들의 1인당 월평균 교통비 이용액은 2만 8586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월 3만 원을 초..

축구대표팀 ‘병역 논란’ 후폭풍…53년 병역특례 폐지 수순 밟나
축구대표팀 ‘병역 논란’ 후폭풍…53년 병역특례 폐지 수순 밟나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다시 불붙은 예술·체육인 병역특례 제도가 53년 만에 존폐 기로에 섰다. 일부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금메달 획득 후 병역 혜택을 과도하게 부각하는 언행을 보이면서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정부가 '궁극적 폐지'를 공식화하고 정치권에서도 관련 법안까지 나오면서다. 선수들의 경솔한 행동이 그동안 누적돼 온 형평성 논란에 기름을 부은 셈이다. 8일 정치권과 정부 등에 따르면 강신철 국방부 장관은 전날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병역특례를 단계적으로 줄여 최종적으로 폐지하는 것이 국방부의 목표라는..

지역화폐 몸집 키우는 정부·지자체… 소비 쏠림에 실효성 물음표
지역화폐 몸집 키우는 정부·지자체… 소비 쏠림에 실효성 물음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지역화폐 발행을 확대하고 있지만 소비가 일부 상권에 집중되면서 정책 실효성을 보다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비와 지방비가 투입되는 만큼 발행 규모뿐 아니라 지역 내 소비가 어디로 흘러가는지까지 정책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7일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최근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 기본계획(2026~2030)'을 수립하고 2030년까지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31조 2000억 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지역사랑상품권 발행지원 국비도 올해 1조 1500억 원에서 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와! 성공이다’ 대전샛 개발자들 누리호 발사 성공에 환호

  • ‘은행 열매를 피해라’ ‘은행 열매를 피해라’

  • ‘한글, 예술이 되다’ ‘한글, 예술이 되다’

  •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3000석 증축 추진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3000석 증축 추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