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AI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암묵지와 미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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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AI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암묵지와 미래 교육

김정숙 충남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 승인 2026-07-21 17:26
  • 신문게재 2026-07-22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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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충남대 교수
칠월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해가 누그러진 아침과 저녁에 노모와 함께 들깨 모종을 심는다. 들깨 모종을 심던 날 노모가 말씀하셨다. "들깨는 서너 개씩 머리를 맞춰 심으면 돼." 키가 제각각인 모종을 뿌리의 길이가 아니라 자란 키에 맞춰 심어야 한다는 것이다. 호미로 흙을 살짝 파고 뿌리가 편안히 앉도록 넣은 뒤 흙을 덮어준다. 그렇게 심긴 들깨들은 같은 높이에서 햇빛을 받고 서로를 의지하며 자라간다.

며칠 뒤 밭을 둘러보다가 노모가 또 말씀하셨다. "쇠비름이 왕성한 걸 보니 올해는 가뭄이네." 노모에게 쇠비름은 단순한 풀이 아니었다. 흙 속 수분의 상태를 알려주는 자연의 언어이자 계절과 날씨를 읽게 해주는 살아 있는 신호였다. 기상청의 예보보다 먼저 땅의 표정을 읽어내는 감각이었다.

또 어느 봄날이었다. "고사리밥이 있는 곳에는 고사리가 있어. 혼자 말고 꼭 둘이 같이 있지." 반신반의하며 숲길에서 고사리밥을 발견하고 주변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신기하게도 어린 고사리 한 포기가 고개를 내밀고 있었고 조금 옆에는 또 다른 고사리가 자라고 있었다. 노모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 지혜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수십 년 동안 계절을 살아내며 흙을 만지고 바람을 읽고 식물의 생장을 지켜본 시간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강의실에서 배운 지식이 아니라 몸과 삶에 스며든 경험이었다. 자식들 밥 굶기지 않으려 새벽부터 저녁까지 땅을 일구며 쌓은 삶의 기록이었고 생활이 길러낸 지혜였다.

이러한 지혜를 떠올리면 철학자 마이클 폴라니가 말한 암묵지(Tacit Knowledge)가 생각난다. 폴라니는 "우리는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암묵지는 언어나 문자로 완전히 설명하기 어려운 지식이다. 오랜 경험을 통해 몸에 밴 앎이며 손끝의 감각과 직관, 상황을 읽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자전거 타는 법을 책으로만 배울 수 없는 것처럼 농사도 설명만으로는 익힐 수 없다. 흙의 촉감과 비가 오기 전 공기의 냄새, 모종의 색 변화와 계절의 흐름을 읽는 능력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몸에 새겨진다.

오늘날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사회 전반에 빠르게 스며들고 있으며 교육 현장도 거대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학생들은 과제에 AI를 활용하고 교사는 이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할지 고민한다. 결과물의 주체가 인간인지 AI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적지 않다.

AI를 잘 활용하려면 좋은 질문, 즉 프롬프트가 중요하다. 그러나 질문하는 능력도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는다. 삶을 경험하고 세상을 관찰하며 사물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축적된 경험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AI는 방대한 정보를 빠르게 분석하고 새로운 문장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흙을 만져 가뭄을 예감하거나 들깨 모종의 키를 맞춰 심는 손의 감각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고사리밥 하나를 보고 주변의 생명을 떠올리는 직관도 데이터만으로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이는 인간이 자연과 관계를 맺으며 몸으로 익혀온 암묵지의 영역이다.

우리는 흔히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역할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폴라니의 암묵지는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고유한 능력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경험을 통해 형성되는 공감과 직관, 맥락의 이해와 윤리적 판단, 손끝으로 익힌 감각은 인간다움의 중요한 토대다.

언론에서는 연일 AI 강국을 이야기하고 교육 현장에서는 AI 활용 전략과 디지털 전환을 강조한다. 이러한 변화는 미래 사회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흐름이다. 그러나 기술의 가능성을 활용하는 것과 기술이 인간의 모든 지혜를 대체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흙 한 줌에 스며든 시간과 손으로 익힌 감각, 계절을 읽는 눈과 공동체의 기억은 더욱 소중해진다. 미래 교육은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능력뿐 아니라 삶에서 길어 올린 암묵지를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까지 품어야 한다. 그것이 기술이 발전해도 놓쳐서는 안 될 교육의 본질이며 인간다움의 핵심 가치일 것이다. /김정숙 충남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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