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5장-목신제, 오래된 나무에 깃든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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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5장-목신제, 오래된 나무에 깃든 소망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9-01 14:29
  • 수정 2026-09-01 15:46
  • 신문게재 2026-09-02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괴곡동과 부수동 등 여러 지역에서는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아래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목신제를 지내며 공동체의 결속을 다져왔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나무를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존재로 여긴 세계수 신화와 맥을 같이하며, 나무는 사람들에게 쉼터이자 마을을 지키는 든든한 수호신 역할을 해왔습니다. 결국 나무에 깃든 신성한 기운은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디며 자리를 지킨 나무에 쌓인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와 공동체적 염원이 만들어낸 소중한 결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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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서구 괴곡동 느티나무 목신제가 8월 19일 열려 참석자들이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있다. 사진=한소민 소장
8월 19일 대전시 서구 괴곡동 느티나무 앞에서는 목신제가 열렸습니다. 해마다 칠월 칠석이면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아래에 모여 제를 올리고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있지요. 수령이 약 700년에 이르는 괴곡동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마을 사람들의 쉼터이자 소원을 비는 신성한 장소였습니다.

괴곡동처럼 칠석에 목신제를 지내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마을에서는 주로 정월대보름에 열립니다. 이 무렵 태평동과 원내동, 용문동에서는 목신제를 지내고, 비래동에서는 느티나무 당산제를, 봉산동에서는 둥구나무제를 이어오고 있지요. 부르는 이름과 제의 방식은 조금씩 다르지만, 오래된 나무 앞에 음식을 차리고 한 해의 풍년과 가족의 건강, 마을의 평안을 비는 마음은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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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열린 대전시 중구 태평동 느티나무 목신제 모습. 사진=한소민 소장
대전시 대덕구 부수동의 목신제에는 수몰된 고향을 향한 그리움도 담겨 있습니다. 대청호에 잠기기 전 부수골에서는 음력 정월 열나흗날이면 마을 입구의 돌탑 두 기에 제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대청댐 건설로 마을이 물에 잠기면서 주민들은 각지로 흩어졌고 탑제도 중단되었지요. 고향을 잊지 못한 사람들은 마을 고갯마루에 남아 있는 느티나무 앞에서 목신제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을 그리워하던 사람들이 해마다 다시 만나 함께 살던 옛 시절을 추억하며 서로의 평안을 빌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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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에 진행된 대전시 대덕구부수동 부싯골 목신제 모습 사진=한소민 소장
마을의 나무는 사람들 곁에서 여러 역할을 해왔습니다. 넉넉한 그늘을 내어 쉬어 갈 자리를 마련해 주었고, 이웃들이 모여 안부를 나누거나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의논하는 장소가 되기도 했지요.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켜온 나무는 더욱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나무를 당산나무나 당목, 신목이라 부르며, 그 안에 신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으며 제사를 올렸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가 사람들의 쉼터이자 마을의 중심이 되고, 마침내 공동체의 안녕을 지켜주는 든든한 수호신이 된 것이지요.

나무를 신성하게 바라본 것은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땅 위에 줄기를 세우고, 하늘을 향해 가지를 펼치는 모습에서 옛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나무가 땅과 하늘, 인간과 신의 세계를 이어준다고 상상한 것이지요. 신화에서는 이처럼 여러 세계를 이어 주는 거대한 나무를 '세계수'라고 부릅니다.

북유럽 신화의 위그드라실은 가장 잘 알려진 세계수입니다. 거대한 물푸레나무 위그드라실을 중심으로 신들의 세계와 인간의 세계를 비롯한 여러 세계가 이어집니다. 나무의 세 뿌리는 서로 다른 세계로 뻗어 있고, 그 아래에는 지혜의 샘과 운명의 샘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지는 온 세상을 덮을 만큼 넓게 뻗어 하늘에 닿아 있지요. 신들은 나무 곁에 모여 중요한 일을 의논하고, 운명을 관장하는 세 여신인 노른들은 샘물을 길어 나무가 마르지 않도록 보살핍니다. 위그드라실은 여러 세계가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의 나무이자 우주의 중심인 셈이지요.

하지만 위그드라실에게도 시련은 있습니다. 사슴들이 가지와 잎을 뜯어 먹고, 아래에서는 용 니드호그가 끊임없이 뿌리를 갉아 댔지요. 세상의 종말인 라그나로크가 닥치면 세계를 떠받치던 거대한 나무도 크게 흔들립니다. 위그드라실은 그렇게 상처받고 흔들리면서도 여러 세계를 잇는 중심으로 서 있습니다. 대전의 오랜 수호목들도 숱한 일들을 겪었을 것입니다. 한자리에 뿌리내린 채 수백 년을 지나오는 동안 거센 비바람과 긴 가뭄을 견디고, 때로는 가지가 부러지는 상처도 입었겠지요.

해마다 칠석과 정월대보름이면 사람들은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오래된 나무 아래에 모입니다. 수많은 고비를 지나 여전히 굳건하게 서 있는 나무 앞에서 가족의 건강과 마을의 평안을 빌어 왔지요. 제를 마친 뒤에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음식을 나누며 다시 한 해를 살아갈 힘도 얻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나무에서 느껴지는 그 신성한 기운은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사람들의 간절한 기도와 바람에서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한소민-최종
한소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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