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나라를 걱정하던 고등학생들, '한다발'의 60여 년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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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나라를 걱정하던 고등학생들, '한다발'의 60여 년 회고

정재홍 홍진아카이브 관장(81)

  • 승인 2026-09-03 00:56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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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홍 홍진 아카이브 관장
1961년 5·16 혁명이 일어난 이듬해, 대전의 몇몇 고등학교 1·2학년 남녀 학생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아직 열여섯 열일곱 살에 불과했지만 이들이 품은 질문은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도 국가를 위해 무엇인가 해야 하지 않을까?

뜻을 함께한 학생들은 1962년 6월 30일 나라사랑 모임 '한다발'을 창립했다. 서로 다른 학교에서 모인 남녀 학생들이 한 송이 한 송이의 꽃처럼 마음과 뜻을 하나로 모은 것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린 나이에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고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찾으려 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특하다.

한다발에는 창립 당시부터 여학생들도 함께했다. 까까머리 남학생, 단발머리 여학생 등 창립회원 모두가 함께한 전체 사진을 남기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해도 아쉽고도 또 아쉽다.

한다발은 처음 모인 학생들만의 친목 모임에 머물지 않았다. 해마다 대전 지역 고등학교에서 뜻을 함께할 남녀 학생 10~15명을 새 회원으로 선발했다. 학생들은 함께 나라와 사회의 미래를 생각하고 토론하며 선후배의 인연과 창립 정신을 다음 세대로 이어갔다.

한다발이 단순한 친목 모임이 아니었다는 시실은 1982년 7월 17일 창립 20주년을 맞아 선포한 한다발 헌장에 잘 나타나 있다.

헌장은 민족통일을 '우리 시대의 엄숙한 사명' 이자 '우리가 나아갈 방향의 궁국적인 목표'로 규정했다. 그 역사적 사명을 이루기 위해 배달민족 정신과 건전한 민주시민 정신을 함양하고 실천하며 확산할 것을 다짐했다. 회원들이 갖추어야 할 자세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자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고 자기 완성과 능력 개발에 최선을 다하며 도덕과 정의를 생활화하고 합리와 실천을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발전을 돕고 포용과 융화를 모임의 표상으로 삼았다. 감사와 격려를 회원의 덕목으로 내세우고, 정성을 모아 새로운 도약대를 마련해 위대한 한국을 건설하자는 다짐도 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회원들은 대학과 군대, 직장과 사회로 흩어졌지만 한다발이라는 이름 아래 교류를 이어갔다.

창립 20주년과 30주년, 50주년 기념행사도 열었다. 50주년을 맞아 회원들의 소재를 조사해 보니 주소가 확인된 회원이 약 500명에 이르렀다. 회원들은 정치 행정·법조·교육·종교·경제·의료 등 여러 분야로 진출했고, 국내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저마다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초창기 회원 가운에 유창종은 대검중수부장, 서울중앙지검 검사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유금와당박물관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염홍철은 한밭대학교 총장, 대전시장, 새마을운동중앙회장을 거쳐 지금은 충청유니버시아드 조직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강창희는 6선 국회의원을 거처 과기부장관과 국회의장을 역임했다. 신원철은 미국 LA에서 목회 활동을 하고 있고, 허성도는 서울대 중문과 교수가 되어 후학을 가르쳤고 '우리역사 바로세우기 운동'으로 전국을 돌며 강의를 하고 있다. 고현욱은 경남대학교 대학원장,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 국회입법조사처장을 역임했다. 후배 회원 신영철은 대법관을 지냈고, 김종수 회원은 천주교 대전교구의 주교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다발의 진정한 가치는 몇몇 회원이 높은 지위에 올랐다는데 있지 않다.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회원 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가정을 이루고 이웃을 돌보며 사회와 국가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소년 시절 품었던 뜻을 잊지 않고 자기 몫을 다하며 살아 왔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한다발의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증언하는 것은 회원들이 청년 시절 주고받은 손편지와 사진이다. 내게 보내온 50여년 전의 손편지 500여 통과 수많은 사진을 지금도 내가 보존하고 있다. 내가 친구들에게 보낸 편지는 그들의 손에 남아 있을 것이다. 회원들이 성장한 뒤에 펴낸 저서도 50여 권을 모았다. 이 자료들은 현재 나의 기록물 저장소 '홍진아카이브'에 모두 보관·전시되고 있다.

편지에는 젊은 날의 우정과 사랑, 학업과 진로에 대한 고민뿐 아니라 나라와 시회를 바라보던 당시 청년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훗날 기억을 더듬어 작성한 회고문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던 젊은이들이 바로 그때 남긴 생생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귀중한 1차 자료다.

사회 환경이 변하면서 이제는 새로운 회원을 뽑지 않게 되었다. 어느덧 처음 모임을 만든 첫째·둘째 묶음 회원들이 팔순을 넘긴 나이가 되었고 먼저 세상을 떠난 회원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남아 있는 회원들은 여전히 소통하며 인생이라는 긴 지구 여행을 함께 하는 동반자로 살아가고 있다.

한다발의 기록은 유명 인사 몇 사람의 성공담이 아니다. 6·25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던 절망의 대한민국에서 남녀 청소년들이 무엇을 고민했고 어떻게 성장했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나라의 발전에 어떻게 참여했는지를 보여주는 시민의 역사다. 그런 의미에서 한다발의 60여년 기록은 한국 근현대사의 작지만 소중한 한 장이 될수 있다.

당시에는 별것 아닌 듯했던 편지 한 장과 사진 한 장이 세월이 흐르자 한 시대를 증언하는 사료가 되었다. 별것 아닌 것도 세월이 지나면 별것이 된다. 한다발의 역사가 바로 그 사실을 말해 주고 있다.

정재홍 홍진아카이브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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