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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덕균 소장 |
삼국시대 백제는 일본과 교류했고, 신라는 중국(당나라)과 연합하며 생존을 도모했다. 가까운 이웃의 위협을 극복하기 위해 먼 나라와 연합한 것이다. 신라인들이 당나라를 왕래할 때 사용한 길도 이웃한 고구려가 아닌 험한 서해바닷길이었다. 이런 당나라와의 빈번한 교류 덕분에 경기도 화성 당성(唐城)과 충남 당진(唐津)이란 지명도 나왔다. 안전한 육로보다 위험한 바닷길을 선택한 것은 이웃한 고구려가 더 큰 위협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뱃길이 닿던 산동성 해안가 마을 곳곳에는 고대 한국인들의 흔적(신라방, 신라원, 고려관 등)이 남았다.
고구려와 싸워 혼쭐난 당나라가 전열을 정비하고 다시 고구려 정복에 나선 곳도 산동성 바닷가 마을이다. 신라는 가까운 이웃 고구려와 백제를 정벌하기 위해 바다건너 멀리 당나라와 연합했고, 고구려에 수모를 당한 당나라는 옳다구나 여기며 신라와 함께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정복했다. 이후로 신라와 당나라는 가까운 이웃이 됐지만, 전쟁을 치르며 불편한 이웃으로 변했다. 고구려 땅에 들어선 발해에 대한 역사문제도 복잡해졌다. 신라와 당나라, 멀리 있을 때에는 가까이 협력했지만 막상 가까운 이웃이 되자 먼 나라가 됐다. 먼 나라와 가깝고, 가까운 나라와 먼 것은 비일비재한 역사적 현실이다.
미국-캐나다-멕시코, 영국-독일-프랑스, 중국-인도-파키스탄, 이란-이라크-사우디아라비아, 한국-중국-일본 등은 모두가 가깝고도 먼 불편한 이웃들이다. 접경한 나라들 치고 사이좋은 사례를 찾기 힘들다. 예나지금이나 크든 작든 끊임없는 갈등이 연속되는 지역들이다. 작금 진행되고 있는 딴 나라 얘기할 것도 없다. 한일관계만 놓고 보더라도 이는 분명하다. 멀리 있는 나라에는 관대해도 가까운 이웃 일본만큼만은 불편한 것이 우리의 마음이다. 운동경기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리 성적이 좋지 않아도 일본만 이기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일본은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잠재의식 속에 한일전에서는 유난히 강한 정신력이 발동한다. 일제강점기의 민족적 아픔이 여전한 강박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몽골족의 원나라, 만주족 청나라의 한반도 지배도 처절했지만, 일제강점기만큼 아픔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때의 아픔과 고통이 일본강점기 못지않았지만, 멀리 있는 몽골과 만주에 대한 생각은 오히려 친근감마저 든다. 겉모습의 유사성뿐만 아니라 전원풍의 목가적 분위기가 낭만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정학적으로 가까운 일본에 대한 감정만은 다르다. 여기에는 문화적 자존심의 상처도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우리는 항상 대륙의 고등한 문화를 전달해 주던 문화선진국이었다. 그에 따른 자부심도 강했다. 그랬던 우리가 하대하던 일본의 지배를 받는데 따른 자존심의 상처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대륙의 선진문화는 우리가 전했지만, 바다를 통한 서구의 선진문화는 일본이 먼저 받아 앞서 나갔고, 또 그것을 우리에게 전하고 지배까지 했으니 자존심이 무척 상한 것이다.
아무리 상투가 고등한 대륙 예절문화의 상징이라지만 거추장스런 것은 분명하다. 또 시대가 변했으니 자르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결단코 이를 거부하며 민족적 저항으로 이어간 것은 뒤쳐져있던 일본이 우리보다 앞서간 것에 대한 불편한 마음의 작용이다. 그러고 보면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는 얘기는 국제관계 속에서는 맞지 않다.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얽힌 이웃보다 이것에서 자유로운 먼 나라가 오히려 편한 탓이다.
/김덕균 중국산동사범대학 한국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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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익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