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웰다잉을 위한 사진 자서전 수업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 웰다잉을 위한 사진 자서전 수업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 소장

  • 승인 2026-10-19 10:11
  • 신문게재 2026-10-20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풍경소리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 소장.
거리에 가을이 깊어지니 나무마다 형형색색이다. 어떤 나무는 아직 푸른 잎을 넉넉히 품고 있고, 어떤 나무는 붉고 노란 잎으로 온통 물들어 있다. 잎을 거의 떨구어낸 나무도 있다. 같은 바람과 햇살을 받으면서도 저마다 다른 모습으로 계절을 지나고 있다. 사람들에게도 각자 자기가 살아온 계절의 언어가 있다. 누군가는 더 멀리 나아갈 길을 찾고, 누군가는 여기까지 걸어온 자신을 다독일 터이다. 어느 한쪽이 더 옳거나 성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고유한 자신만의 색으로 삶을 채색해나간다.

복지관 배움터에 나오는 어르신들과 만나는 일은 내게도 큰 행복이다. 연세를 알고 나면 놀랄 만큼 젊어 보이시는 분들이 많다.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삶임을 이미 몸으로 체득하신 어르신들이라 그런지 참여의식도 높고, 놀랄 만한 경력의 소유자들이 계셔서 항상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웰다잉 교육에서 진행하는 "사진으로 만드는 자서전 프로그램"은 언제나 서로를 향한 공감과 응원으로 뜨거운 현장이다.

"발표해 주실 분 나와주세요." 멈칫멈칫 마이크 앞으로 나오는 어르신의 표정이 영 수줍어 보이신다. 각자 자리에서 교육을 들으실 때와는 다르게 살짝 긴장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 학생들 같다. 자기소개 먼저 해 주세요, 운을 떼어드리면 잠깐 숨을 고르면서 조심스레 마이크를 바짝 붙이신다. "저는 어디 사는 아무개입니다"에서 시작된 짧은 인사가 사진에 담긴 살아온 내력으로 넘어가면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다. 구구절절 한 편의 소설이 나올 것 같은 사연에 모두 탄성이 나온다. 담아둔 사연마다 곡진하다.

구절양장 같은 세월을 지나오면서 가슴으로 견디어냈을 저마다의 사연이, 그 시절을 추억하는 사진 한 장에 소중하게 담긴다. 까맣게 잊어버렸던 옛 생각에 눈물짓기도 하고, 어렵게 일구어온 삶에 긍지를 느끼며 새삼 열심히 살아온 자신을 향해 토닥여주는 시간이 된다. '인생그래프' 양식에 그려보는 삶의 희로애락과 '삶의 연대기' 도표에 채워보는 나와 가족 그리고 사회적 사건의 회고는 옛 기억을 복기하는 산 증언이다.

"이런 거 평생 처음 해봐요" 하면서 열심히 만드신 꽃 만들기 작품을 들어 보이며 함빡 웃으시는 어르신의 행복한 표정에 교육장 안이 환해진다. 해묵은 사진첩에서 찾아온 빛바랜 사진을 소개하며 저마다 마음속에 간직해둔 인생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새 서로를 격려하고 공감하는 치유의 시간으로 거듭난다. 사람은 말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언어로 표현함으로써 치유하는 존재이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독 나무'라는 시에서 내가 화난 것을 친구에게 말하니 그 분노가 사라졌고, 적에게 참고 말하지 않았더니 분노가 자라났다는 표현으로 언어의 치유적 기능을 전했다.

웰다잉 교육 현장에서 가끔 하는 질문이 있다.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의 봄을 만날 수 있을지 숫자로 헤아려 보자는 것이다. "100세 시대이니 앞으로 서른 번쯤 봄을 맞이하겠네요, 어르신들 모두 장수하실 테니 한 오십 번쯤 봄을?" 하면 모두가 까르르 웃으신다. 우리 삶에서 봄을 만날 회수를 숫자로 환산하면 그 적은 분량의 시간 개념에 오히려 놀라곤 한다. 그 얼마나 짧은 인생인가. 누구라도 올해의 봄이 내 인생에서 마지막 봄날은 아닐 거라는 장담을 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인생에 허락된 확신은 "오늘"이라는 기적 같은 하루뿐이다. 오늘을 잘살자는 말이 지닌 엄숙함을 되새겨보는 시간이다.

복지관 어르신들과 죽음준비교육이라는 키워드로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는 웰다잉 교육 시간은 특별하다. 서로 살아온 날에 감사하며, 앞으로의 꿈도 나누고, 해보고 싶은 일도 표현한다. 특히 사진 자서전 만들기 시간은 자신의 지난날과 오늘의 삶을 통합하는 기능이 있다. 빛 바란 사진 한 장에 담긴 추억을 꺼내놓으며 치유의 시간을 경험하기도 한다. 지나온 날의 아픔이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준 삶의 가르침인 것을 성찰하며, 수고한 시간을 서로 격려해 주는 따뜻한 나눔이 있다. 담담하게 삶의 의미를 견인하는 시간이다.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 소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빵축제 내년에는 원도심서 연다…시민참여형 축제로
  2. 제주도 전국체전서도 '행정수도 완성' 기운 확산
  3. 아산시 신통매립장 진출로 개통 효과 '톡톡'
  4. 온양민속박물관, '2026 찾아가는 공예 명작전' 개최
  5. '아산페이'.메인화면 대폭 개선
  1. 아산시의회, 법률고문 위촉
  2. 대전역세권 개발 또 원점… 메가충청스퀘어가 공공기관 부지 공백 메우나
  3. 국감 종반전 충청 정치권 중앙행정기관 세종行 이슈파이팅 시급
  4. [공주다문화] 공주 알밤, 화장품으로 새롭게 태어나다
  5. [사설] 반도체연구소 대전 설립보다 나은 대안 없다

헤드라인 뉴스


대전역세권 개발 또 원점… 메가충청스퀘어가 공공기관 부지 공백 메우나

대전역세권 개발 또 원점… 메가충청스퀘어가 공공기관 부지 공백 메우나

대전 원도심 활성화의 핵심 사업인 대전역세권 복합2-1구역 개발사업이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갈 전망이다. 특히 정부의 2차 공공기관 지방 이전 발표를 앞두고 대전역세권이 이전 공공기관의 주요 입주 공간으로 검토돼 온 만큼 사업 무산이 공공기관 유치 전략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다만 별도로 추진되는 메가충청스퀘어 사업을 통해 입주 공간을 확보할 수 있어 공공기관의 순차적 이전에는 큰 차질이 없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18일 대전시 등에 따르면 코레일은 한화건설 컨소시엄의 잔여 토지대금 납부 기한인 19일까지 대금이..

대전 빵축제 내년에는 원도심서 연다…시민참여형 축제로
대전 빵축제 내년에는 원도심서 연다…시민참여형 축제로

대전시가 내년 '대전 빵축제'를 원도심 일원에서 개최하고, 시민들이 기획 단계부터 함께하는 시민참여형 축제로 육성할 전망이다. 지역 제과점뿐 아니라 전국 유명 빵집까지 참여 범위를 확대하고, 축제 규모도 대폭 키워 관광객 유치와 지역 상권 활성화를 이끌 국내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구상이다. 18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대전시는 지역 대표 관광 콘텐츠로 자리 잡은 대전 빵축제를 시 대표 축제로 키우기 위한 밑그림을 구체화하고 있다. 시에 따르면, 내년 빵축제는 중구, 동구 등 원도심 일원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대전의 대표 제과점..

대전 정비사업 용역비 ‘고무줄’… "적정 기준 필요"
대전 정비사업 용역비 ‘고무줄’… "적정 기준 필요"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추진 과정에서 사업관리(PM), 정비업체 용역비 등이 천차만별로 책정되면서 적정 비용 산정 기준 마련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18일 대전지역 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용역비가 과도하게 책정됐다는 주장이 제기된 대덕구 송촌동1구역 정비사업장의 예산안에 반영된 용역비는 약 38억 원으로 추산된다. 해당 예산안을 보면 정비사업전문관리업체 용역비의 30%에 해당하는 추정액은 11억 4000만 원으로, 이를 기준으로 산정한 전체 용역비는 38억 원이다. 계약금 지급부터 조합설립인가와 시공사 선정까지..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19일부터 대덕대교 부분 통제…왕복 10개 차로 중 5개 차선 통제 19일부터 대덕대교 부분 통제…왕복 10개 차로 중 5개 차선 통제

  • 한화이글스 류지현 감독 취임 한화이글스 류지현 감독 취임

  • ‘나Be 한마당에서 꿈 찾았어요’ ‘나Be 한마당에서 꿈 찾았어요’

  • 유성국화축제 ‘준비 착착’ 유성국화축제 ‘준비 착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