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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정민 미술평론가 |
우리나라에서 안경이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로 알려져 있다. 중국을 거쳐 전래 된 안경은 임진왜란 전후인 16세기 말부터 기록에 등장하며, 18세기에 이르러서는 학자와 사대부를 중심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조선에서 안경은 단순히 시력이 불편한 사람만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었다. 글을 읽고 경전을 익히며 학문을 이어가야 했던 선비들에게 안경은 배움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돕는 생활용품이었다. 안경을 사용하는 이들이 주로 선비와 사대부였다는 점에서, 안경은 생활용품인 동시에 당시 지식인들의 삶을 보여주는 유물이기도 하다. 작은 안경 하나에는 글을 읽고 배우는 일을 중시했던 조선 사회의 모습도 함께 담겨 있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안경과 비교하면 조선시대 안경은 꽤 낯선 모습이다. 오늘날처럼 귀에 거는 안경다리가 아니라 안경테 양쪽에 실을 연결해 머리 뒤에서 묶는 '실다리안경'이 널리 사용되었다. 안경테는 대모(거북등껍데기), 소뿔, 나무, 금속 등으로 만들었고, 장인들은 재료의 무늬와 질감을 살려 하나의 공예품처럼 제작했다. 오늘날 안경이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난 티타늄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는 것처럼, 당시에도 사용할 수 있는 재료 가운데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했다. 시대에 따라 재료는 달라졌지만 사람들에게 더 선명한 세상을 보여주려는 목적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남아 있는 유물은 조선시대 안경 문화가 생각보다 다양했음을 보여준다. 시력을 교정하는 것은 물론 바람과 먼지, 강한 햇빛을 막기 위해 사용한 안경도 전한다. 다리를 접을 수 있도록 만든 형태도 확인되며, 코 받침에는 구름무늬를 투각해 장식성을 더했다. 기능만을 위한 물건이 아니라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함께 담아낸 생활 공예품이었던 셈이다.
안경만큼 흥미로운 것은 안경을 보관하던 안경집이다. 유물 가운데에는 안경과 안경집이 한 세트로 전하는 사례도 있다. 원통형 안경집은 종이로 형태를 만든 뒤 겉을 비단으로 감싸 제작했으며, 뚜껑과 몸체는 끈으로 연결해 분실을 막았다. 나무를 깎아 만든 안경집도 전해진다. 오늘날 플라스틱이나 금속으로 만든 안경 케이스처럼, 조선 사람들도 귀한 안경을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안경집을 사용했던 것이다. 시대는 달라도 소중한 물건을 오래 사용하려는 마음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안경은 편리한 생활용품인 동시에 예법의 영향을 받는 물건이기도 했다. 유교적 질서를 중시했던 조선에서는 왕이나 연장자 앞에서 안경을 착용하는 일을 예의에 어긋난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다. 시력이 불편하더라도 윗사람을 만날 때는 안경을 벗는 것이 예법이었다. 오늘날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안경 하나에도 사회가 중요하게 여긴 가치관과 질서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안경을 쓴 채 학교에 가고, 회의하고, 사람을 만난다. 이제 안경은 의료기기이면서도 패션의 일부이고, 자신을 표현하는 개성이 되었다. 실다리안경에서 현대의 안경까지 형태와 재료는 크게 달라졌지만, 더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사람들의 바람은 변하지 않았다. 형태와 재료는 시대에 따라 달라졌지만, 안경에는 언제나 그 시대 사람들의 생활방식과 기술, 미감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래서 안경은 단순한 생활용품을 넘어 시대를 읽게 하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최정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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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바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