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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무역협회 대전세종충남전문무역상담센터 전문위원·김이지 법률사무소 이지 대표변호사 |
혼인신고는 구청에 가서 신고서 한 장만 내면 되는데, 이혼은 그렇지 않다. 쌍방이 이혼 조건에 완전히 의사가 일치되어 협의이혼을 하더라도, 법원에 두 번은 가야 하고 판사 앞에서 이혼 의사를 확인받아야 한다. 이웃 나라 일본은 구청에 신고서를 내는 것만으로 협의이혼이 가능한데, 우리는 그렇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필자는 우리나라가 여권에 대하여 더 민감하기 때문으로 생각한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더 보호할 필요가 있을 정도로 더 열악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혼은 신라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과거부터 대대로 남편 쪽의 필요에 의한 것이었다. 아들이 없다는 이유가 대표적이고, 이른바 '칠거지악'이라 하여 이혼 사유는 처에 대한 것만 나열되어 있을 뿐, 처는 남편의 동의 없이 이혼할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이 없었다. 오죽하면 '삼불거'라고 하여 특별히 처를 내쫓을 수 없는 경우까지 정하고 있었을까.
어쨌든 이혼은 역사적으로, 국가에서 이를 억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혼으로 인한 사회적인 폐단을 막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양반들과 달리 서민들 사이에서는 부부가 합의하여 이혼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옷깃을 잘라주면 이혼이 성립하였다고 한다. 그러다 일제강점기 때 협의이혼을 관습법으로 인정하였고, 처의 법원에 대한 이혼청구 사건이 있은 후에는 재판상 이혼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혼의 자유가 법적으로 인정된 것이었다.
협의이혼 제도가 존재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이혼하는 부부의 80% 이상이 협의로써 이혼하는 우리 나라 사람에게는 놀라운 일일 수도 있는데, 많은 서구의 나라에서는 원칙적으로 재판을 통해서만이 이혼이 가능하다. 독일은 이혼하려면 기본적으로 3년이 걸린다고 할 정도로 이혼이 쉽지 않다.
우리나라는 1960년 민법 제정 당시 협의이혼제도를 도입했는데 1977년 민법 개정으로 협의이혼에서도 가정법원 판사가 그 의사를 확인하게 하였다. 국회에서 말하는 그 개정 이유는 '여권의 신장'이라고 하는데, 필자의 짐작으로는 축출 이혼을 막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 즉, 한쪽 배우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의하여 이혼을 강요당하는 것을 막는 것이다. 그러니 비록 협의이혼 제도는 있지만, 법원을 통하지 않고 조선 시대처럼 당사자들끼리만 임의로 이혼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셈이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의 이혼 제도는 경제력이 약한 배우자의 축출 이혼을 막기 위한 장치를 갖추고 있다. 흔히, 재판상 이혼에서의 유책주의와 파탄주의의 대립으로 이야기되는데, 잘못이 있는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 유책주의이고, 우리 대법원의 입장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차 이미 파탄난 혼인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혼을 허용하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파탄주의의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데, 이 또한 과거 경제력이 약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축출 이혼을 당하기 쉬웠던 여성들이 이제는 상대적으로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에 일어나는 변화가 아닌가 한다.
이혼 사건을 많이 다루다 보니, 처가 이혼을 먼저 청구하는 쪽이 훨씬 많다는 사실과 이혼 소장을 받은 남편들은 이혼을 원치 않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제는 이혼을 하고 싶은 여성과 버림받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투는 남성들로 양쪽의 지위가 바뀌고 있는 느낌이다. 양성이 평화롭게 사이좋게 함께 살아가기는 왜 이렇게 힘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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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