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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둔산선사유적지에 복원된 청동기시대 주택형식인 움집에 파란 방수막이 설치돼 있다./사진=최화진 기자 |
하지만 유적지를 들여다보니 곳곳에서 어색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입구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청동기시대 집터를 재현한 움집 세 채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자 선사시대 움집 재현의 기대는 다소 부족함이 느껴졌다.
지붕 전반에는 파란색 천막이 덮여 있었고, 일부에는 영어가 적힌 포대기 같은 자재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움집의 몸체는 짚이나 갈대로, 지붕은 플라스틱 인조잔디로 뒤섞여 덧씌워져 있기도 했다. 야외에 설치된 복원 시설의 특성상 비와 햇빛으로부터 움집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보이지만, 선사시대의 주거 형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파란 천막과 인조잔디는 어색할 따름이었다.
특히 세 채 중 한 채는 한때 체험활동 공간으로 활용됐던 곳이지만 현재는 문이 닫힌 채 사용되지 않고 있는 데다 움집의 형태도 온전하지 않아 얼핏 보면 가축 우리를 연상시킬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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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일 둔산선사유적지에 복원된 청동기시대 움집 중 체험활동 공간으로 활용되던 공간이 현재는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사진=최화진 기자 |
둔산선사유적지는 구석기시대 유적까지 확인된 곳이지만, 현장에서는 이를 확인할만한 흔적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 일대 상당 부분은 도로와 무역회관 건물이 들어서면서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무역회관 인근에서도 과거 이곳이 구석기 유적지였다는 사실을 알리는 표식은 찾기 어려웠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가 한곳에서 확인된 복합 유적이라는 설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청동기시대 집터 역시 마찬가지다.
둔산선사유적지 내부에는 청동기 집터였던 세 곳이 보존돼 있지만, 평지보다 조금 높게 올라온 공간 외에는 집터였다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 해설사의 설명을 듣지 않는다면 그저 작은 언덕이나 조경 시설로 지나치기 십상이다.
입구부터도 선사유적지라는 공간의 성격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유적지를 둘러싼 담장과 입구에는 조선시대 한옥을 연상시키는 기와가 사용돼 있다. 선사시대 유적을 보여주는 공간인데 조선식 기와를 내세운 셈이다. 역사적 공간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볼 수도 있지만, 정작 유적지의 핵심인 선사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데는 거리가 있다.
둔산선사유적지는 구석기·신석기·청동기시대 유적이 한곳에서 확인된 복합 유적이다. 특히 도심 한가운데에서 여러 시대의 유적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큰 곳이다.
특히나 이곳은 애초부터 지키기 쉬운 곳이 아니었다. 1991년 둔산신도시 개발사업 당시 이 일대에 시외버스터미널 건립이 추진됐지만, 공사 과정에서 선사시대 유물이 발굴되면서 지역사회에서 선사유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결국 터미널 건립 계획은 백지화됐고, 그 자리는 선사유적공원으로 보존됐다. 개발 대신 유적 보존을 택한 공간이다.
하지만 지금 현장에서 확인되는 모습은 '보존'의 의미를 다시 묻게 한다.
둔산선사유적지를 관리하고 있는 대전시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둔산선사유적지는 1991년도에 시 지정 문화재로 등록돼 노후화가 많이 돼 있는 상황"이라며 "2~3년 주기로 보수 공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역의 문화유산 보존을 위해 지속적으로 관리하겠다"고 했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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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둔산선사유적지 입구와 안내소, 담장 등이 조선식 기와로 조성돼 있다./사진=최화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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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화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