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이소룡 |
이소룡은 홍콩 액션영화의 전설적인 배우다.
촘촘하게 다부진 근육이 인상적인 이소룡도 멋있지만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역시나 검정 띠가 둘린 노란 운동복을 입은 모습일 것이다. 한때 무술 좀 한다는 사람들이 운동복에 "아비요~!"하면서 흉내를 내곤 했으며, 무술에 무자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선망의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소룡은 32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기 전까지 찍은 영화는 '사망유희'였다. 삶은 때론 얄궂기도 하다.
젊은 배우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소문이 무성했다. 그가 중국 삼합회에 의해 암살됐다는 말도 있었고 친구가 살해했다, 백인 우월주의자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그 가운데는 '이소룡 가문의 저주' 때문이라는 무시무시한 이야기도 있었다.
▲ 중국 광둥성 포산시 쥔안진의 `이소룡 기념공원'에 자리잡은 이소룡 동상. 18.8m 높이로 이소룡 동상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사진=연합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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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감춰진 내막은 이랬다.
어릴 적부터 선천적으로 가위눌림을 자주 당했던 이소룡이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꾸게 됐다.
“네 아버지는 64살에 죽고 너는 그 반도 못 살 것이다.”
꿈이었지만 너무도 생생한 음성에 기분이 이상했던 이소룡은 아버지 이해천에게 꿈에 대해 말했다.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놀랍게도 풍수신동과 가문에 얽힌 비밀을 터놓았다. 어린 나이로 죽은 풍수신동이 죽을 때 ‘자신의 무덤 옆에 아무도 묻지 말 것’을 유언으로 남겼는데 이소룡의 할아버지가 바로 그 옆에 묻혔던 것이다.
자신의 유언이 지켜지지 않은 것에 대한 풍수신동의 저주였을까.
이소룡은 악몽에 계속 시달렸고 미국으로 건너가서도 신경안정제를 복용할 정도로 시달렸다. 그러던 중 미국여성 린다 에메리와 결혼식을 올리고 아들을 얻게 되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던 중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게 됐는데, 신동의 예언 대로였다.
배우로 세상에 그의 이름이 알려져 유명세를 치르고 있던 중 1973년 7월 20일 이소룡은 애인으로 소문이 났던 여배우 정패의 집에서 갑작스런운 두통을 호소하다 진통제를 먹고 잠든 뒤 영영 깨어나지 못 했다.
1940년 11월 27일 바로 ‘오늘’ 태어난 이소룡은 아버지 나이의 반을 살고 32세에 떠난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화배우가 된 아들 브랜든 리도 1993년 영화촬영 중 권총에 복부를 맞아 사망했다.
어두운 밤하늘 반짝이는 별에는 전설이 깃들어 있다. 빛나는 별처럼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의 요절은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기도 한다. 때론 그것이 스타를 기억하는 방식인지도 모르겠다. '이소룡 가문의 저주' 또한 그를 잊지 않으려는 것은 아닐지.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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