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취재 기록-38]시청에 딱 1권뿐인 ‘제천군지’…서울 골동품 상점서 극적으로 발견

[10년간의 취재 기록-38]시청에 딱 1권뿐인 ‘제천군지’…서울 골동품 상점서 극적으로 발견

‘운명적 만남’…노재명 학자, 최근 서울 골동품 상점서 우연하게 발견
노 학자, “청풍승평계, 우륵의 예술혼을 되살린 역대 최대 규모의 민간 국악단”
“청풍 수몰지역 이주민 대상 청풍승평계 조사와 자료관 건립, 기록집 발간해야"

  • 승인 2022-01-17 09:48
  • 수정 2022-01-17 11:08
  • 손도언 기자손도언 기자
노재명 제천군지 사진2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장이 지난해 12월 21일 서울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구입한 '제천군지(1969년 제천군지편찬위원회 편찬)'.
'우연일까, 필연일까.'

제천시청에 단 1권밖에 없던 '제천군지(1969년 제천군지편찬위원회 편찬)'가 최근 서울의 한 골동품 상점에서 발견됐다. 그것도 서울에서 국악이론을 평생 연구하고, 국악에 청춘을 바친 국악학자 노재명(53) 국악음반박물관장 손에 들어간 것이다. 운명적 만남이다.

노 관장은 36년간 6만 3000점 국악자료를 수집했다. 또 명인·명창 800여명을 인터뷰했고 국악음반 사전 7권도 완간했다. 24세 때는 국악 최대전집 명반 기획자로 발탁되기도 했다. 특히 그는 국악 음반 '세계 최다' 보유자다. 국악 석·박사 논문 상당수가 노 관장의 자료 제공과 자문으로 탄생됐다.

제천군지는 청풍승평계와 속수승평계의 단원 규모와 악기 분포 등의 내용을 기록해 놨다.

노 관장이 구입한 제천군지는 겉 표면부터 매우 양호했다. 거의 새 책 수준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 관장은 청풍승평계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악성(樂聖) 우륵(于勒)이 활동한 제천시 청풍(淸風)에서 후세 사람들이 그 예술혼을 되살리기 위해 결성한 국악단체였다. 청풍승평계를 이은 속수승평계의 경우,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역대 최대 규모의 민간 국악단"이라고 설명했다. 노 관장은 이어 "우륵이 '즐거우면서도 무절제하지 않고 슬프면서도 비통하지 않으니 바르다고 할 만하다(樂而不流 哀而不悲 可謂正也)'고 했다"며 "청풍승평계가 추구한 음악은 바로 이러한 예술 정신이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38편_사진3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되기 전 제천시 청풍면 양평리(陽坪里) 전경.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양지말, 양평리로 불렸다. 이 고을에 60여호가 살았는데 정이 넘치는 곳이었다. 마을을 넘나들던 고개에 오르면 제일강산이라는 이름값을 하는 명소가 있고 제천이 24km, 충주가 32km 거리에 있는 곳이다. 제천 속수승평계 율원 류갑수(1879년 출생) 연주자가 이 양평리에 살았다. <제천 청풍관광마을 홈페이지(http://cheongpung.invil.org)의 기록 사진>
노 관장은 이러한 우륵의 음악론이 중고제 판소리를 비롯한 중원문화권 가무악에 영향을 준 것으로 봤다.

충북 충주출신 한명희 국악학자는 '우륵(가야국 가실왕과 신라 진흥왕 때 활동한 작곡가이자 가무악 명인)이 한국 각지와 드넓은 실크로드를 넘나들며 활동한 유랑 예인'이라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서울 국악음반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권오성 국악학자와 김정남 역사학자의 연구 기록에 따르면 우륵은 실크로드 음악과 관련이 깊은 음악가로 평가된다. 우륵이 지었다는 열두 음악 이름을 고대 타밀어로 해독하면 그 가운데 가라도는 '고전 음악(Classical Music)'을 뜻하는 '가르나타카'(Karnataka)의 줄인 말이다. 보기는 '군중 음악(Music by the Crowded Group)', 거열은 '음악의 템포(Tempo)', 이사는 '일반적인 음악(General Term of Music)'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런 점들로 봐서 우륵은 국내에 국한된 음악가가 아닌 실크로드, 더 나아가 지구와 우주의 섭리를 음악으로 표현한 인물이라는 게 노 관장의 설명이다.

노 관장은 특히 "조선시대, 20세기에 충청도 지역에선 특히 음악 예인을 많이 하대했는데 제천 청풍은 음악을 상당히 존중하고 육성했다는 점이 이례적"이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그는 "우륵의 음악론이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예악론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며 "그래서 양반 유교 문화가 성행했던 충청도 지역인데도 청풍에서 우륵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그러한 승평계와 같은 뜻 깊은 움직임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38편_사진2
'비파 연주 모습의 목조각'…20세기 전반 한국 상여 꼭두. 높이 18.5cm. 제천 청풍승평계에서 연주된 악기 가운데 특히 비파가 학술적으로 중요하게 평가된다. <국악음반박물관 소장>
노 학자는 청풍승평계에서 연주된 악기 가운데 각별히 '비파'를 주목했다.

비파는 삼국시대~조선시대 궁중의 안팎에서 널리 연주됐던 악기다. 비파는 삼국사기에서도 등장하는데, 북쪽 오랑캐들이 말 위에서 연주했던 현악기로 표현됐다.

그는 "비파가 본래 실크로드 전통악기"라며 "조지아공화국의 민속악기 판두리가 비파와 닮았고, 20세기 전반기까지도 한국 상여를 장식했던 꼭두에 이 비파를 연주하는 인형이 흔히 쓰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금은 비파가 연주되는 경우가 드물고 전통 연주법과 고유의 연주곡이 많이 단절됐는데, 청풍승평계 당시만 하더라도 비파가 중요하게 즐겨 연주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청풍승평계의 다양한 악기 편성과 조직 면에서 당대 궁중악단 규모에 버금갈 정도"라며 "그래서 일반 한옥에서는 모여서 연주하기가 어려워 한벽루 같이 크고 넓은 장소에서 합주 등을 한 것"으로 덧붙였다.

노 학자는 "비파, 산조가야금 같은 전문가 영역에 해당되는 악기들까지 연주한 점으로 봐서 이 지역 내외부의 전문 악사들도 가담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1985년 충주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이주민이 5만명인데 향후 이들을 대상으로 한 청풍승평계에 대한 조사, 기록과 관련 자료관 건립, 기록집 출판 등의 작업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천=손도언 기자 k-55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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