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19. 봉인첩설(逢人輒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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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는 삶의 이음매] 19. 봉인첩설(逢人輒說)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 승인 2019-12-13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죽은 아이에 속죄하고픈데…" 하은이 엄마의 눈물] 2019년 12월 7일자 D일보에 실린 뉴스다.

= "눈 뜨고 죽은 아기야…. 속죄하고 싶었는데…." 6일 오전 서울남부지법 306호 중법정. 법정을 나선 조모 씨(40·여)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두 차례 심호흡한 조 씨는 이렇게 말했다.

"죽은 아기한테 해줄 수 있는 건 벌 받는 것뿐인데…. (재판이) 끝나질 않네요." 조 씨는 2010년 12월 생후 2개월 된 딸 하은이(가명)가 사흘 동안 고열에 시달리는데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숨지게 한 혐의(유기치사)로 올 1월부터 재판을 받아왔다.

조 씨가 2017년 3월 경찰에 자수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조 씨가 자수할 때까지 7년 동안 이웃과 당국은 하은이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다. 하은이는 출생신고가 안 돼 있었다.(중략)

법무부는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한 채 숨진 아이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가족관계등록법을 고치기로 했다. 법무부 산하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올 9월 병원이 아이가 태어날 때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출생 사실을 알릴 수 있도록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법무부는 불법체류 이주여성에게도 이 같은 내용의 '출생통보제'를 적용해야 하는지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출생신고(出生申告)는 사람이 태어났음을 관청에 알리는 일이다. 이를 근거로 각종의 지원 및 국가통계까지 이뤄진다. 작년에 태어난 외손녀와 친손자는 당연히 출생신고를 마쳤다.

2019년에 대한민국이 전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했음은 이제 상식이다. 따라서 아들과 딸은 우리나라의 저 출산 입장에서 보면 어떤 '애국자'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호적(戶籍)이 없었다.

호적은 호주(戶主)를 중심으로 하여 그 집에 속하는 사람의 본적지, 성명, 생년월일 따위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공문서다. 2008년 호적법 폐지에 따라 폐지되고, '가족 관계 등록부'가 이를 대체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출생신고와 동격인 셈이다.

"다들 국민(초등학교)에 간다는디 홍 씨 아들은 안 가는규?"라는 이웃사람들의 말에도 아버지는 시큰둥했다. 아들의 교육보다 중했던 건 오로지(!) 술뿐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아버지의 당시 상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물귀신보다 지독한 가난, 홀아비라는 사회적 편견은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당최 피해갈 수 없는 암초였을 테니까.

아무튼 '호적 없는 아이'라는 소문은 봉인첩설(逢人輒說)로 동네에도 파다하게 퍼져나갔다. 그래서 한번은 어떤 녀석이 이런 말까지 했었다.

"너는 호적도 없는 놈이라며? 그럼 누가 너를 죽여도 그 사람은 무죄여."

2019년 11월 28일 개봉한 미스터리 스릴러 한국영화 [삼촌]은 보기 드문 수작이다. 하지만 [겨울왕국2]가 스크린을 독점하면서 빛이 바랬다.

아무튼 이 영화에서 심리적 외상으로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없는 주인공 19세 소녀 잎새의 삶은 식물(植物), 그 자체이다. 하루하루를 지옥이란 일상 속에 살아가던 그녀의 집에 어느 날, 낯선 사내가 찾아온다.

자신을 '삼촌'이라 밝히는 그의 존재가 새로운 보호자일지, 또 다른 포식자인지 알 수 없는 잎새는 그저 불안할 따름이다. 먹고 먹히는 생태계 속에서 식물과도 같은 존재인 잎새는 과연 침대 밖을 벗어날 수 있을까…

삼촌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회복지사인 자영과 김 과장 역시 노골적으로 그녀를 무시하고 학대까지 한 때문이다. 이 모습에서 나는 잎새가 흡사 '호적 없는 처자'로 보여 예사롭지 않았다.

죽으란 법은 없는지 내게도 삼촌, 즉 숙부님이 계셨다. 그분 덕분에 늦게나마 호적을 만들었다. 그리곤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받아쓰기 시험을 치렀는데 당당히 100점을 받았다. 호적을 안 만들었으면 결코 누릴 수 없는 기쁨이었다.

홍경석 / 수필가 & '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 저자

홍경석-작가-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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