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권익위원 칼럼] 무더위에 떨어진 식욕, 억지로 먹기보다 원인을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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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권익위원 칼럼] 무더위에 떨어진 식욕, 억지로 먹기보다 원인을 살펴야

정진규 충남대병원 공공부원장·의과대학교수

  • 승인 2026-08-20 14:48
  • 김흥수 기자김흥수 기자
정진규(신규사진)
정진규 충남대병원 공공부원장·의과대학교수
"교수님, 더워서 밥맛이 하나도 없습니다."

여름철 외래 진료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이야기 중 하나다. 특히 어르신들은 "입이 쓰고 음식 냄새만 맡아도 먹기 싫다", "물만 마시고도 하루가 간다"고 말씀하신다. 보호자들은 혹시 큰 병이 생긴 것은 아닌지 걱정부터 앞선다. 실제로 무더운 여름에는 식욕이 떨어지는 것이 흔한 생리적 현상이지만, 때로는 우리 몸이 보내는 중요한 건강 신호일 수도 있다.

우리 몸은 항상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추운 겨울에는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므로 자연스럽게 식욕이 증가한다. 반대로 여름에는 외부 기온이 높아 체온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고, 몸은 조금 덜 먹어도 된다는 신호를 보내게 된다. 여기에 높은 습도와 무더위로 활동량이 감소하고, 땀을 많이 흘려 탈수가 생기면 위장 운동과 소화 기능도 떨어져 입맛은 더욱 감소한다.

노년층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나이가 들수록 후각과 미각 기능이 감소하고 침 분비도 줄어 입안이 마르기 쉽다. 음식 맛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니 식사가 즐겁지 않고, 조금만 먹어도 배가 부른 느낌이 들어 식사량이 줄어든다. 여기에 여러 만성질환과 복용 중인 약물까지 영향을 미치면 식욕부진은 더욱 쉽게 나타난다.

다행히 대부분의 여름철 식욕부진은 일시적이다. 하지만 "여름이니까 원래 그렇겠지"하고 넘겨서는 안되는 경우도 있다. 최근 3~6개월 사이 체중이 5% 이상 감소했거나, 식욕부진이 2주 이상 지속되고 점점 심해지는 경우에는 반드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기침, 발열, 복통, 설사, 피로감, 우울감 등이 함께 나타난다면 더욱 그렇다. 식욕부진은 단순 소화불량뿐만 아니라 갑상선 질환, 당뇨병, 감염, 위장관 질환, 우울증, 심지어 일부 암의 초기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고령 환자에서는 복용 중인 약물이 식욕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입맛을 되찾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억지로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먹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무더운 시간대를 피해 아침이나 저녁처럼 비교적 시원한 시간에 식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한 번에 많은 양을 먹기보다는 적은 양을 여러 번 나누어 먹는 것이 부담이 적다. 또한 생강, 레몬, 식초, 고추, 강황 등 향과 산미가 있는 재료는 미각을 자극해 식욕을 돋우는 데 도움이 된다. 빨간 파프리카나 실고추처럼 색감이 풍부한 식재료를 곁들이는 것도 시각적인 자극을 통해 식사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입안이 마르거나 음식이 잘 넘어가지 않는 어르신이라면 죽이나 수프, 미음처럼 부드럽고 수분이 많은 음식이 적합하다. 단백질이 풍부한 달걀, 두부, 생선, 우유 등을 충분히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다. 식욕이 없다고 밥만 줄이는 경우가 많은데, 오히려 단백질 부족은 근육 감소를 촉진해 낙상과 면역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에는 노년층의 근감소증이 중요한 건강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만큼, 식사량이 줄더라도 양질의 단백질은 꾸준히 섭취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여름철에는 수분 보충도 빼놓을 수 없다. 갈증을 느낄 때는 이미 탈수가 시작된 경우가 많다. 특히 어르신들은 갈증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물을 조금씩 자주 마시는 습관이 중요하다. 다만 당분이 많은 음료나 카페인이 많이 들어 있는 음료는 오히려 탈수를 악화시킬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

가족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왜 그것밖에 못 먹느냐"고 다그치기보다 함께 식사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해 주며 식사 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실제로 혼자 식사하는 어르신들이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 식사량이 늘어난다는 연구도 적지 않다. 식욕은 단순히 위장의 문제가 아니라 정서와 사회적 환경의 영향을 함께 받기 때문이다.

무더위에 입맛이 떨어지는 것은 누구에게나 흔히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그러나 식욕은 우리 몸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이기도 하다. 단순히 "얼마나 먹었는가"보다 체중이 유지되고 있는지, 일상생활을 무리 없이 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여름철 일시적인 식욕 저하는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회복되지만, 체중 감소가 동반되거나 증상이 지속된다면 전문의의 진료를 받아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올여름, 밥 한 숟갈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면 억지로 식사를 강요하기보다 먼저 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를 기울여 보자. 작은 식욕의 변화가 건강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정진규 충남대병원 공공부원장·의과대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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