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졸업때 미래 나에게 쓴 편지 20년만에 열어보니…대전원앙초 개봉식 가져

  • 사회/교육
  • 미담

초등 졸업때 미래 나에게 쓴 편지 20년만에 열어보니…대전원앙초 개봉식 가져

2005년 12월 작성하고 20년 후 만나 열어보자 약속
원앙초 1회 졸업생 12명과 당시 담임교사 3명 참석
친구들 별명부터 꿈은 이뤘는지 묻고 괜찮다고 위로

  • 승인 2026-02-15 09:38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IMG_1587
대전원앙초가 2006년 졸업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그들이 20년 전에 작성한 편지를 개봉하는 행사를 14일 개최했다.  (사진=임병안 기자)
초등학교 졸업 20주년이 되는 날 학교 운동장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풋풋한 마음이 실제로 결실을 맺었다. 13살에서 33살이 된 그들은 20년 만에 교실로 돌아와 13살 과거의 자신이 33살 현재의 나에게 쓴 편지를 수신했다.

대전 원앙초등학교는 2월 14일 오후 2시 20년 전 제1회 졸업생들을 초청해 당시 졸업을 앞두고 '20년 후의 내 모습은'이라는 주제로 쓴 편지의 개봉식을 가졌다. 원앙초는 서구 관저동에서 2005년 3월 31학급으로 개교했고, 2006년 2월 16일 1회 졸업식에서 168명이 졸업생을 배출했다. 5반까지 학급이 편성되었던 당시 6학년 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2005년 12월께 교실에서 편지를 썼다. 편지는 누구도 보여주지 않고 담임선생님이 준비한 큰 봉투에 담아 학교에 보관하고 20년 후 졸업식날 만나서 열어보기로 약속했다.

이날 '졸업생 꿈단지 개봉식'에서 오상연 원앙초 교장은 "1회 졸업생들이 20년 후 졸업식날 학교 운동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해 편지를 남겼고, 그때의 약속을 기억해 학교를 찾은 졸업생에게 실망을 안길 수 없어 저희가 먼저 졸업생들에게 연락드려 20년 전 약속을 상기시키고 이틀 앞서 오늘 모이자고 초청했다"라며 "저희도 열지 않았던 꿈단지 편지를 오늘 읽어보시고, 잊고 지낸 어린 시절 추억과 친구들을 되찾는 시간이 되어 앞으로 모교를 아껴주시기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원앙초는 이날 행사를 위해 지난해부터 교감과 교무부장이 졸업생들에게 초청 이메일을 두 차례 보내고 당시 교원들에게도 연락해 참석을 요청했다. 김광수 초대 교장 선생님은 건강 상의 이유로 참석하기 어렵다고 회신해왔다.

이날 1회 졸업생 12명이 찾아왔고, 당시 6학년 1반과 2반, 5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도 참석해 제자들을 맞았다. 매일 교실에 모여 왁자지껄 소란했을 아이들은 이날 도서관에서 20년만에 만나서는 서로 서먹한 듯 잠시 조용하더니, 이네 오랜 친구임을 알아채고 서로 안부를 묻고 옛 기억을 말하느라 소란해졌다. 졸업앨범을 꺼내 서로 옛 추억을 나누고는 곧바로 20년 전 편지 개봉식을 가졌다.

IMG_1590
33살을 맞은 원앙초 1회 졸업생들이 13살에 자신이 쓴 편지를 개봉하고 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1반부터 5반까지 큰 봉투에 각각 담겨 있었고, 큰 봉투를 뜯어 그 안에 자신의 편지를 찾을 때부터 졸업생들은 13살 아이가 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6학년 1반이었던 곽경민(33)씨는 "제가 졸업 앞두고 20년 후 자신에게 편지를 썼던 게 기억나지 않는데 편지가 있다는 연락을 받고 뭐라고 썼을지 너무 궁금하고 친구들을 만나는 설렘에 찾아왔다"고 소감을 말했다. 6학년 2반이었던 최영선 씨는 "친구들이 뭐하고 사는 지 궁금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13살 내가 쓴 편지를 20년 만에 집어 든 졸업생들은 눈썹에 잔뜩 힘을 주며 아주 느린 속도로 편지를 펼치고, 아끼는 과자를 끝부터 조금씩 뜯어먹듯 단어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편지지에 연필로 또박또박 쓴 자필을 보고 감탄사를 한 번 내뱉고, 내용을 눈으로 훑으며 이네 큰 웃음으로 이어졌다. '20년 후의 나의 자화상' 또는 '20년 후 나에게 이 글을 바친다', '20년 후 나에게 안녕, 20년 전 나야'라고 편지는 익살스럽게 시작했다. 그리고 '평생 잊을 수 없는 친구들' 또는 '우리반 아이들 잊지 말자'라며 교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친구들 이름을 편지에 대부분 적어놨다. 이름보다 별명으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을 예상했는지 이름 옆에 별명을 써놓은 편지도 있었는데, '욕쟁이', '문제아', '덜렁이', '울보', '이중인격', '조용저주', '공주병', '아픔이' 등이 있었다. 물론, 당시 자신이 좋아하던 여학생을 향해 마음을 고백한 연애편지도 있었는데, 그 편지를 쓴 졸업생은 20년 자신의 글을 읽으면서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KakaoTalk_20260215_071914554
초등학교 6학년이 20년 후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에 장래 희망과 위로, 세상을 향한 호기심이 고루 담겨있다.  (사진=임병안 기자)
사뭇 의젓한 편지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33살 아저씨. 전 아저씨의 과거에요. 33살이니까 높임말로 쓸게요. 아저씨는 지금 총각인가요 아니면 결혼했나요? 직업은 지금의 장래 희망인 교수인가요? 저는 중학교, 고등학교는 어디를 나왔고, 대학교는 어디를 나오게 되었죠? 또 20년 후 과학은 어느 정도까지 발전했죠? 로봇이 어느 정도까지 움직일 수 있는지 알고 싶어요. 교통 수단은 지금도 자동차를 이용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자원은 어느 정도 남아 있는지도 궁금해요.~" 이 편지를 쓴 이가 지금 답장을 쓴다면 '너는 과학고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수학했단다. 로봇은 사람의 노동을 대체할 정도로 유연하고, 자동차는 여전히 활용 중이나 곧 무인 자율주행 시대가 도래할 텐데 다시 20년 후 과학기술과 기초연구 분야에 나의 역할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하구나'라고 작성했을 것이다.

또 다른 편지에서는 "저는 20년 전 당신입니다. 저는 현재 6학년이죠. 꿈은 이루셨습니까? 공무원이 되는꿈 말입니다. 이루셨으면 축하드립니다. 못 이루셔도 괜찮습니다. 평범하게 사셨으면 합니다.~"라고 위로를 함께 남긴 이는 대전경찰청 과학수사대에서 근무하는 경찰이 되어 편지를 읽었다.

편지에 교사를 적었던 졸업생은 세종에서 교사가 되어 13살 때 편지를 다시 읽었고, '잘 살고 있을까 못 살고 있을까'라고 걱정하던 아이는 세무사가 되어서 그리고 어떤 이는 그 사이 부모가 되어 또는 평범한 사회 구성원이 되어 20년 만에 수신인에게 도착한 편지를 개봉했다.

당시 6학년 1반 담임이었던 이연정 선생님은 이날 "참석하겠다고 예고한 졸업생들의 이름 중에 얼굴이 떠오르는 제자 여러 명이 있었고 오늘 제가 이 자리에 나오지 않으면 크게 후회하게 될 것 같아 한달음에 참석했다"라며 "훌륭하게 자란 제자들을 마주하고 그때의 편지를 함께 읽으니 눈물이 앞을 가릴 정도로 감격스럽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도마 퀸’ 여서정, 금빛 질주 이어간다.
  2. 국군의날 기념행사를 '국민과 함께' 원년되나
  3. 아산시, 신동 곡교천로 진입도로 개통
  4. 서산해미읍성, 600년 시간의 문 활짝, "서산의 맛과 사람들 한자리에"
  5. 상용화 문턱에서 좌절 '자기부상열차' 역사속으로
  1. 통합 무산 충남대 ‘다음 수’ 찾기 고심
  2. [춘하추동] 콜레스테롤은 억울하다?
  3. 건양대목원대 등 충청권4개 대학, AI중심대학 선정
  4. 승용차가 지상 개폐기 들이받고 운전자 도주...일대 2시간여 정전
  5. 명맥 끊긴 대형 민물고기 '종어'…다시 금강으로

헤드라인 뉴스


"30년 시민혈세 따져보자"…대전시민사회, 수소트램 재검토 촉구

"30년 시민혈세 따져보자"…대전시민사회, 수소트램 재검토 촉구

대전시가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급전방식 변경을 고심 중인 가운데, 지역 시민사회가 현행 방식인 '수소트램'을 원점에서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현행 수소트램의 선정 과정과 장기 운영비, 2030년 개통 가능성까지 시에 전면적인 검증을 요구했다.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30일 대전시청 북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의 세금으로 30년을 감당할 사업이라면 그 결정의 근거도 시민 앞에 놓여야 한다"며 수소트램 선정과 차량계약 과정에 대한 투명한 정보 공개를 대전시에 요구했다. 이날 시민사회가 우선 문제로 꼽은 것은 민선 8기..

대전시청 선수들 아시안게임 금 4개 합작 금의환향… 오상욱은 2관왕
대전시청 선수들 아시안게임 금 4개 합작 금의환향… 오상욱은 2관왕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4개를 합작한 대전시청 소속 선수들이 금의환향했다. 30일 대전시에 따르면 펜싱 오상욱·박상원·최세빈과 근대5종 이종현이 이번 대회에서 잇따라 메달을 획득했다. 오상욱은 남자 사브르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모두 금메달을 따내며 대회 2관왕에 올랐다. 박상원도 남자 사브르 단체전에서 오상욱과 함께 정상에 올랐고, 최세빈은 여자 사브르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근대5종 이종현은 남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데 이어 개인전에서도 동메달을 추가했다. 대전시청 소속 선수들은 이번 대회에서 금..

초고령화로 농협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세 이상… `기반 흔들`
초고령화로 농협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세 이상… '기반 흔들'

초고령화에 따라 농업협동조합 조합원 10명 중 8명은 6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신규 가입 조합원 역시 40대 미만은 7%대에 불과해 농협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국민의힘 강승규 의원(충남 홍성·예산)이 농협중앙회의 조합원 현황을 분석해 30일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8월 기준 농협 조합원은 모두 202만 8464명으로 집계됐다. 2021년 208만 7359명에서 2022년 207만 6055명, 2023년 206만 3765명, 2024년 204만 6229명, 2025년 202만 7481명으..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안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바뀐 무궁화호 안전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바뀐 무궁화호

  • ‘대전시는 수소트램 원점 재검토하라’ ‘대전시는 수소트램 원점 재검토하라’

  • 금빛으로 빛난 대전의 영웅들 금빛으로 빛난 대전의 영웅들

  • ‘나이는 숫자일 뿐’ ‘나이는 숫자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