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필요는 어떻게 배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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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필요는 어떻게 배우는가

김정숙 충남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 승인 2026-05-26 17:38
  • 신문게재 2026-05-27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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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교수
몇 해 전 봄볕이 부드럽게 내려앉던 날, 텃밭을 둘러볼 겸 동네를 걷다가 길모퉁이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일회용 종이컵에 한 뼘 길이의 연녹색 모종들이 놓여 있었고, 그 사이에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해바라기 모종 필요하면 가져가세요!" 짧은 문장 끝에 웃음 이모티콘이 덧붙어 있었다. 누군가의 호의가 햇빛처럼 놓여 있는 장면이었다.

나는 잠시 서 있다가 누군가 가져가겠지 생각하며 지나쳤다.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필요'라는 말 앞에서 스스로를 절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시간쯤 뒤 다시 그 길을 돌아왔을 때, 모종들은 그대로였다. 햇볕은 더 뜨거워졌고, 컵 속의 물은 거의 말라 있었다. 어린잎들이 조금씩 시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마음이 움직였다.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던 것이 필요해졌다. 나는 결국 열두 포기의 해바라기 모종을 집으로 데려왔다.

그날 이후 '필요'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그리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교육으로 이어졌다. 우리는 학교에서 무엇을 필요로 배우고 있는가, 아니 그 필요는 과연 누구의 것인가 하는 질문이었다.

교육은 오랫동안 필요를 규정해 왔다. 정해진 교과와 성취 기준, 평가 방식 속에서 학생들은 '이것이 필요하다'는 목록을 지속적으로 전달받는다. 사회가 요구하는 지식과 능력을 길러야 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 목록이 곧 배움의 전부가 될 때 문제가 생긴다. 학생 각자의 흥미와 질문, 삶의 맥락은 그 바깥으로 밀려나기 쉽다. 살아 있어야 할 필요가 고정된 기준으로 굳어지는 순간이다.

해바라기를 떠올리면, 필요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나는 처음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 놓인 시간과 상태를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 필요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명령이 아니라, 나의 마음과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감각이었다. 바라보고, 머물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었다.

교육 역시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학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는 일괄적으로 정해질 수 없다. 그것은 교실이라는 관계 속에서, 교사와 학생의 만남 속에서, 그리고 학생 스스로의 경험과 질문 속에서 드러난다. 어떤 학생에게는 한 번의 격려가 필요하고, 어떤 학생에게는 실패를 견딜 시간이 필요하며, 또 다른 학생에게는 스스로 질문할 여유가 필요하다.

문제는 과잉된 교육적 욕망이 이러한 필요를 쉽게 가린다는 데 있다. 더 많은 것을, 더 빠르게, 더 잘 해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학생들은 자신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조차 잊기 쉽다. 필요 이상의 것을 채우려는 시도가 오히려 배움의 중심을 비워버리는 역설이 생긴다.

배움은 생명과 닮았다. 겉으로는 연약해 보이지만, 적절한 조건을 주면 스스로 자라난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주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느냐이다. 학생을 채워야 할 대상으로 보기보다 이미 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바라볼 때, 배움은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씨앗 속에 이미 꽃이 있듯이, 학생 안에도 배움의 방향이 내재해 있다.

나는 그날 모종을 두고 간 사람에게 짧은 쪽지를 남겼다. "해바라기 데려갑니다. 잘 키울게요!" 그 문장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하나의 약속처럼 느껴졌다. 시간을 들여 돌보겠다는 약속, 그리고 그 존재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이었다. 교육 역시 그런 약속 위에 서 있어야 한다. 학생을 일정한 기준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각자의 필요와 가능성을 존중하겠다는 약속, 눈에 보이지 않는 성장을 믿고 기다리겠다는 태도 말이다.

텃밭에 심은 해바라기는 시간이 지나 내 키만큼 자라났다. 바람에 흔들리며 꽃봉오리를 준비하던 모습을 떠올리면, 배움도 그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필요와 마주치며 자란다. 지금 교실 안에도 수많은 작은 씨앗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아직은 눈에 띄지 않지만, 누군가의 관심과 기다림을 필요로 하는 배움의 순간들. 교육이 해야 할 일은 그것을 알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조용히 말해주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여기 있어도 된다고.

/김정숙 충남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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