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공주', 당신은 어떤 어른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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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공주', 당신은 어떤 어른입니까?

  • 승인 2014-04-08 14:47
▲ 한공주 보도스틸
▲ 한공주 보도스틸
새총에 날개가 찢긴 작은새가 퍼득퍼득 살기위해 몸무림치는데 누군가 발로 찍 밟는다. 계속 밟는다. 영화 '한공주'(감독 이수진)를 곱씹다 문득 떠올려본 그림이다.

도무지 손내밀어주는 어른이 없다. 재혼한 엄마는 3년 만에 만난 딸에게 반갑다는 인사 대신 새남편 눈치보기 바쁘고 아버지는 술에 취해 "힘이 있어야 한다"고 푸념만 늘어놓는다. 이렇듯 부모에게조차 제대로 된 관심을 못받는 여고생 한공주(천우희)는 비정한 사회에서 손쉽게 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무리지어 다니는 아이들은 마치 본능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알아본듯 겁도 없이 물어뜯는다.

문제는 그렇게 짓밟힌 아이를 보살펴줄 생각은 않고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리기 싫어 내빼거나 자기자식 감싸느라 남의 자식은 무참히 짓밟는 어른들의 행태에 있다. 갑자기 교실로 들이닥친 가해자 부모들이 난동을 부릴 때는 정말 기가 막히고 화가 치민다. 절벽 끝에 선 아이를 붙들지않고 밀어낼 때는 정말 저렇게 밖에 할수 없냐는 한탄마저 나온다.

▲ 한공주 보도스틸
▲ 한공주 보도스틸
그러다 문득 자문하게 된다. 나라면 저 딱한 사정의 아이에게 선뜻 도움의 손길을 내밀까. 나도 저 스크린 속 어른들처럼 내코가 석자라며 슬그머니 외면하지 않을까. 한 여고생의 예기치 못한 사고 이후 녹록치않은 일상을 담담하게 그려낸 영화 '한공주'는 그렇게 우리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왕따, 집단 폭행, 자살 등 우리사회가 얼마나 각박한지를 드러내는 각종 사건사고가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성원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다소 주눅든 목소리나 진심을 다해 공주는 말한다. "저 잘못한 거 없는데요." 그렇게 시작된 영화는 이유를 숨긴 채 학기 중 딴 도시로 전학가게 된 공주의 소소한 일상을 비춘다.

젊은 남자 선생은 다소 짜증난 얼굴로 지금의 상황을 그나마 고맙게 생각하라고 조언하고, 동네 마트를 경영하며 홀로 사는 엄마에게 공주를 잠시만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선생의 엄마는 무슨 사고를 친 애냐며 싫다고 거절하나 마트 일을 도와주는 공주의 야무진 모습에 마음이 누그러진다. 공주는 난생 처음 수영을 배운다. 숨쉬기가 쉽지 않고 강사 또한 불친절하나 그녀는 열심히 연습한다.

▲ 한공주 보도스틸
▲ 한공주 보도스틸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노래실력을 알아봐준 해맑은 미소의 동급생 은희(정인선)가 그녀에게 호감을 보인다.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 지내던 공주는 은희의 친절에 마음을 열고 어느새 또래소녀들처럼 해맑게 웃는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공주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성실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던 소녀, 단짝 친구와 깔깔 웃던 아이 그리고 친구의 친구를 수줍게 짝사랑한 보통의 여고생.

홀로 기타치며 노래하던 공주가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화음을 맞추며 노래하는 모습은 오후의 햇살처럼 눈부시다. 영화는 도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쉽게 속살을 드러내지 않는다. 미스터리 기법의 이 영화는 관객의 호기심을 단단히 붙들고 있다가 후반부에 가서야 충격적 사건의 전모를 드러낸다.

하지만 그 사건보다 우리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는 것은 주변인들의 태도다. 홀로 트렁크를 끌고 길거리로 나선 여고생에게 갈곳이 있는지 묻기는커녕 말도 안 되는 동의서 따위나 내미는 우리 어른들의 모습이다. 영화는 열린 결말을 취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공주가 왜 그렇게 수영을 열심히 배웠는지 알게 된다. 환청처럼 아이들의 힘찬 응원소리도 들을 수 있다.

한공주를 연기한 천우희는 충무로의 보배다. 그녀는 '써니'의 본드걸로 눈도장 찍은 뒤 '우아한 거짓말'에서 고아성의 절친한 친구로 짧은 분량에도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 영화는 모로코에서 열린 제13회 마라케시 국제영화제와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제43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금별상과 타이거상을 각각 수상했다.

마라케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미장센, 이미지, 사운드, 편집, 연기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극찬했다. 프랑스의 유명배우 마리옹 꼬띠아르는 "여주인공의 연기가 너무 놀랍고 훌륭하다"고 감탄했다. 112분 상영, 17일 개봉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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