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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염홍철 한남대 석좌교수 |
며칠 전 방송에서 헨델의 오페라 <리날도>에 나오는 '울게 하소서'를 들으면서 감정의 파동을 느꼈는데, 이것이 야릇한 행복감으로 연결되더라고요.
'울게 하소서'는 여주인공이 납치당한 후 자유를 갈망하며 부른 노래인데 소프라노의 음성이 너무 간절했습니다.
오페라 <리날도>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2006년 서울에서 공연이 있었는데, 당시 76세의 거장 이탈리아 출신 루이지 피치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음악 위주의 연출이 아니라 화려한 무대와 빠른 몸동작으로 시각을 자극함으로써 객석을 감동시켰지요.
귀에 익은 아리아 '울게 하소서'는 물론 감동적이지만 동상이나 배를 끄는 보조 출연자들의 연기에서 청각까지도 자극하는 상승효과는 오페라의 새로운 경지를 맛보게 하였습니다.
오페라가 퓨전화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요.
유럽에서는 이미 오래전 <피가로의 결혼>, <세비아의 이발사>에서 노래를 하지 않고 연기만 하는 역할이 생겨났었지요.
독일의 잘츠부르크에서 공연된 <라 트라비아타>에서 출연자들이 부른 노래도 훌륭했지만 몸짓과 표정으로 하는 연기는 환상적이었지요.
춤인가 뮤지컬인가, 오페라인가 연극인가, 벨칸토인가 판소리인가, 현대무용인가 고전무용인가, 동양화인가 서양화인가, 시(詩)인가 수필인가, 장르를 넘어 예술은 더 크게 하나가 됩니다.
이렇듯 국경과 장르 그리고 전공 분야의 경계가 무너져 지나치게 대중 취향에 맞게 상업성으로만 몰아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관객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예술은 더 이상 생존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한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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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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