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다문화]동네 책방에는 책방 주인이 있다

  • 다문화신문
  • 대전

[대전다문화]동네 책방에는 책방 주인이 있다

  • 승인 2025-11-12 08:53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6.-1. 김영미작가 사진
김영미 작가(넉점반 그림책방 대표)가 그림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 작가가 쓴 그림책으로는 '그림책이면 충분하다'가 있다.
고등학교 때 내가 살던 동네 버스 종점에는 지은 서점이 있었다. 그때 난 해마다 11월이면 올해의 '이상문학상'을 사기 위해 지은서점에 갔다. '이상 문학상 나왔어요?' 하며 몇 번이고 책방에 가야 했고 그렇게 1년을 기다렸다. 그런 내가 좋았다.

책이 늦게 나와 되돌아 나올 때 책방 아저씨는 비슷한 출판사의 비슷한 소설을 권했다. 그 때부터 난 이청준, 서정인. 박완서 우리 소설가를 사랑하게 되었고 책방 아저씨가 책을 건네며 '뚝' 던지는 한마디가 그렇게 좋았다. 그 말에 점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고 책방도 자주 가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마치 작년에 본 빔 벤더스의 영화 <퍼펙트 데이즈> 속 한 장면처럼 말이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도쿄의 화장실 청소부이고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다다미방에 누워 책을 읽는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 쯤은 헌책방에 간다. 이 장면이 참 좋았다. 그가 책을 계산 할 때면 책방의 여자 사장님은 거만하게 뒤로 눕듯 앉아 거스름돈을 주며 그가 산 책에 꼭 한마디 한다.

"고다 아야, 너무 저 평가됐죠? 같은 단어도 이분이 쓰면 완전 느낌이 다르다니까" 혹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한 감정을 참 잘 묘사해요."등등이다. 주인공 히라야마는 책방 주인의 말을 무심히 듣지만 영화를 보는 난 무심해지지 않는다. 내가 꿈꾸던 책방주인의 모습이기에...

보문산 아래 문화동 골목길 모퉁이에서 그림책방을 합니다. 벌써 5년이 되어 갑니다. 동네 아이들이 들락거리는 동네 책방이고 싶었는데 골목길에는 아이들이 없습니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한명 두명 찾아와 그림책을 보고 그림책을 이야기하는 곳이 되길 바랬는데 그것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다만 한 해 한 해 더해지면서 어린이집과 유치원 초등학교에서 견학을 옵니다. 아주 가끔이지만 그림책방과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고등학교에서도 옵니다.

지난 달에는 D여고에서 지난 주에는 대전 J 고등학생들이 왔습니다. 두 학교 모두 작년에 이어 두 번 째이고 J 고등학생들은 독서 동아리입니다. 그래도 소설 좀 읽는 문학소년(?)들 말입니다. 그런데 이 문학 소년들이 책방에 오면 책방이 빛이 납니다.

작년에 처음 왔을 때 일입니다. 그림책을 둘러보던 한 학생이 조심이 다가와 제 귀에 대고

6.-1. 김영미작가 사진2
김영미 작가(넉점반 그림책방 대표)가 그림책을 들어보이고 있다. 김 작가가 쓴 그림책으로는 '그림책이면 충분하다'가 있다.
"저 그림 나오는 그림책 있어요?"하고 책방 벽에 걸린 그림을 가리킵니다. 어릴 때 재밌게 읽은 책인데 생각났다고요. 그 그림은 모리스 센닥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의 한 장면입니다. 주인공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 가서 괴물들과 미친 듯이 신나게 밤새 노는 장면입니다. 책을 찾아주자 "그럼 혹시 이상한 화요일은요?"합니다. 이번엔 제목도 분명히. 내가 호들갑을 떨며 아는 척을 하자 레이먼드 브릭스의 <곰>을 찾고는 가슴에 안아보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고등학생들이 새 책이 아니라 어릴 때 마음을 다 해 읽었던 책을 기억해 냅니다. 빛나는 순간입니다. 물론 <곰>을 껴안고 갔습니다.

이번에 온 후배들도 그림책을 샅샅이 찾아 읽더니 작년과 마찬가지로 약속이나 한듯 그림책 한권 앞에 모여듭니다. 서로 아는 척을 하면서 같이 읽더니 얼굴이 환해집니다. 저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책입니다. 그림책 <까까 똥꼬>는 계룡문고에 가면 사장님이 견학온 아이들에게 늘 읽어주던 책입니다. 다들 계룡문고를 기억해냅니다. 내가 그 옛날 지은서점 아저씨를 기억해 내듯이 말입니다.

그림책방 5년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있습니다. 대전의 고등학생들은 그림책에 대한 같은 기억이 있습니다. 계룡문고에서 늘 읽어주던 몇 권에 책 특히 <까까똥꼬><왜요?>등 그림책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좋은지 얼굴이 환해집니다. 책 한권이 준 기쁨을 기억해 냅니다. 아마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다 풀렸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우리 책방에 견학을 오면 집에 있는 책, 어린이집에서 본 책을 찾아내고 환호합니다. 그리고 나 이 책 알고 있다고 아는 척을 합니다. 독서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이런 기쁨이 책읽기를 이어가고 생애의 독자로 만들어 줍니다. 아이들에겐 아는 척이 필요합니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서면서 소리를 지르고 아는 책 앞에서 환호하며 그 앞을 떠나지 않는 일이 필요합니다.

넉점반 그림책방 대표 김영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준비 안된 채 신입생만 받아"… 충남대 반도체 공동 연구소 건립 지연에 학생들 불편
  2. '복지부 이관' 국립대병원 일제히 반발…"역할부터 예산·인력충원 無계획"
  3. '수도권 대신 지방의료를 수술 대상으로' 국립대병원 복지부 이관 '우려'
  4. 설동호 대전교육감 "수험생 모두 최선의 환경에서 실력 발휘하도록"
  5. 대전시의회 교육위 행정사무감사…학폭 예방 교육 실효성·대학 사업 점검
  1. '국힘 VS 민주당' 2026 세종시 리턴매치, 총성 울린다
  2. 가원학교 건물 흔들림 원인 밝혀지지 않았는데 증축 공사?… 행감서 질타
  3. 2025 '도전! 세종 교육행정' 골든벨 퀴즈 대회 성료
  4. 세종교육청 '수능' 앞둔 수험생 유의사항 전달
  5. [대전유학생한마음대회] 유득원 행정부시장 "세계로 잇는 든든한 주인공 뒷받침 최선"

헤드라인 뉴스


늦어지는 팩트시트… "관세 인하 언제쯤?" 지역 수출기업 답답

늦어지는 팩트시트… "관세 인하 언제쯤?" 지역 수출기업 답답

한미 정상회담 이후 '조인트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 발표 지연으로 실질적인 관세인하가 불투명해지면서 지역 수출기업들이 답답함을 토로하고 있다. 11일 지역 경제계 등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주간인 10월 29일 경주에서 정상회담를 갖고 관세·안보 협상을 포함한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당시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양국 간 세부 합의 내용은 거의 마무리됐으며, 팩트시트는 2~3일 내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열흘이 지난 현재까지 팩트시트는 발표되지 않았고 25%의..

조선시대 해안 방어의 핵심 거점…`서천읍성` 국가유산 사적 지정
조선시대 해안 방어의 핵심 거점…'서천읍성' 국가유산 사적 지정

국가유산청은 충남 서천군에 위치한 '서천읍성(舒川邑城)'을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서천읍성은 조선 세종(1438~1450년) 무렵에 금강 하구를 통해 충청 내륙으로 침입하던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성으로, 둘레 1645m 규모에 이른다. 조선 초기 국가가 해안 요충지에 세운 방어용 읍성인 연해읍성 가운데 하나다. 산지 지형을 활용해 쌓은 점이 특징이며, 일제강점기 '조선읍성 훼철령(1910년)' 속에서도 성벽 대부분이 원형을 유지해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현재 전체 둘레의 약 93.3%(1535.5m)가..

세종 청소년 인구 1위 무색… "예산도 인력도 부족해"
세종 청소년 인구 1위 무색… "예산도 인력도 부족해"

'청소년 인구 최다' 지표를 자랑하는 세종시가 정작 청소년 예산 지원은 물론 전담 인력조차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동에 이어 청소년 예산까지 감축된 흐름 속에 인력·자원의 재배치와 공공시설 확충을 통해 지역 미래 세대를 위한 전사적 지원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11일 세종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아동청소년 인구(0~24세)는 11만 4000명(29.2%)이며, 이 중 청소년 인구(9~24세)는 7만 8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20%에 달하고 있다. 이는 전국 평균 15.1%를 크게 웃도는 규모로, 청소년 인구 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혼잡 없이 수능 시험장 찾아가세요’ ‘혼잡 없이 수능 시험장 찾아가세요’

  • 국제 육군 M&S 학술 컨퍼런스 및 전시회 국제 육군 M&S 학술 컨퍼런스 및 전시회

  • 2025년산 공공비축미곡 매입 시작 2025년산 공공비축미곡 매입 시작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답지 전국 배부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문답지 전국 배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