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공론] 인문학 여행, '술의 과학과 문화'

  • 오피니언
  • 문예공론

[문예공론] 인문학 여행, '술의 과학과 문화'

민순혜/수필가

  • 승인 2025-02-06 09: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KakaoTalk_20250204_204712405
최우영 충남대 명예교수
최우영 충남대 명예교수를 만난 건 '우리 가곡을 부르는 모임'에서였다. 어울리는 가사의 시어(詩語)에 꾸밈없는 중저음으로 그의 연주가 가곡의 맛과 멋을 살리는 것처럼, 오랜 시간 와인과 식초의 맛과 향을 찾아 도전해 온 사연을 듣게 된 것은 최근이다.

그는 퇴직 무렵, 유등천 상류의 가마소 건너편 산 밑에 뽕나무를 심었다. 열매를 수확하여 오디 와인을 만들어볼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 목표는 끝내 달성하지 못했다. 와인을 만들지 못한 것이 아니고, 술은 잘 되었는데 숙성 후에도 과실주의 특성이 발현되지 않아서였다. 아무리 좋은 성분이 들어있어도 과실주로서의 향미를 갖추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최 교수는 고민 끝에 오디로 만든 와인을 식초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와인은 그와 늘 가깝게 있었고, 전공 영역에서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호주 유학 시절에는 바로사, 헌터, 야라 밸리를 돌며 와인을 익혔고, 미국은 미시간의 와이너리, 일본에서는 청주와 식초 공장을 틈나는 대로 둘러보았다.

그는 집에 포도밭이 있어서 젊은 시절부터 술 담는 일을 연례행사처럼 지냈다. 나이 들어서는 연구 생활의 틈을 내어 품종별로 시험 양조를 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포도는 대부분 와인에는 적합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부여 은산 지역의 스튜벤 (steuben)이란 품종에 주목하기도 했다.



KakaoTalk_20250204_204851093
최우영 충남대 명예교수
퇴직 후에는 술에 관한 교양과목 「술의 과학과 문화」를 강의했다. 팀티칭 형식으로 여러 교수가 참여하여 세계의 술, 술과 건강, 술과 문학 등으로 분담하였으며, 다수 학생의 관심 속에 10여 년간 진행했다. 학교 지하실에 와인 창고가 있어서 술도 담고 시음 실습도 했다. 하지만, 수년 전 가마소 뽕밭으로 살림을 이전하여 그저 취미생활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독특한 와인의 향미를 찾았을 때 즐거움을 느낀다고 말한다. 식초를 여러 해에 걸쳐 장기 숙성시킨 후 향상된 익은 맛을 찾아갈 때도 마찬가지다. 그가 자랑하는 제품 몇 가지가 있다. 와인 중에서는 은산 스튜벤와인, 익산 황매와인, 성북동 살구와인, 증류주로는 '魂'항아리에서 숙성시킨 스튜벤그라빠, 오디 식초 중에서는 5년 숙성품 하나 등이다.

와인은 집에서 만들기가 비교적 쉬운 편인데, 원료가 준비되면 당도를 확인하고 주모를 첨가하여 온도를 유지해 주면서 2~3주의 발효 과정을 거친다. 당도계와 효모 균주가 필요하며, 발효 온도를 20~25℃로 유지한다.

식초는 와인보다 훨씬 까다롭다. 원료에 미리 식초산이 1% 이상 존재하여야 초산발효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적정 온도가 30~35℃여서 외부 조절 장치가 필요하다. 기간도 2개월 이상으로 길다. 발효 후 와인과 식초를 숙성하는데 최소한 3~6개월이 소요되며, 포도 와인의 경우에는 냉장 숙성을 포함해야 신맛을 낮출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제품이 맑아지며 향미는 안정된다.

뽕나무는 토질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지만, 야생동물 때문에 산밑에서 묘목을 키우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시련을 겪었지만, 어느 정도 묘목을 살려 뽕밭을 이루고 2, 3년을 지나면서 수형을 잡고 오디를 수확하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고라니들은 오디에는 관심이 없다. 매년 풍작을 이루었고, 6월에 수확한 다음 냉동실에 넣고 사용해 왔다.

하지만 잘 나가던 뽕밭에 몇 년 전 큰 사고가 발생했다. 집중호우로 산골 물이 휩쓸고 내려가서 나무뿌리가 노출되기도 하고 엉망이 되는데, 복구작업을 잘 마무리하고 관리에 주의를 기울였지만, 뽕나무 수세가 되살아나지 않았다. 그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오디 재배를 접기로, 개원 16년 만이다. 생각하면 폭우 탓만은 아니다. 영농환경이 많이 변했다. 인력난이 심해져 더 이상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그래도 그에게 뽕밭은 잡념을 앗아가는 선원禪院 같은 곳이라고 한다. 애견과의 산책길이 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철 바뀌는 들꽃과 새소리는 대자연과의 통로란다.

민순혜/수필가

민순혜 수필가
민순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갑천 야경즐기며 워킹' 대전달빛걷기대회 5월 10일 개막
  2. 수도 서울의 높은 벽...'세종시=행정수도' 골든타임 놓치나
  3. 이상철 항우연 원장 "한화에어로 지재권 갈등 원만하게 협의"
  4. 충남 미래신산업 국가산단 윤곽… "환황해권 수소에너지 메카로"
  5.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1. 충청권 학생 10명 중 3명이 '비만'… 세종 비만도 전국서 가장 낮아
  2. 대학 10곳중 7곳 올해 등록금 올려... 평균 710만원·의학계열 1016만원 ↑
  3.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4. [춘하추동]삶이 힘든 사람들을 위하여
  5. 2025 세종 한우축제 개최...맛과 가격, 영양 모두 잡는다

헤드라인 뉴스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근로자의 날] 작업복에 묻은 노동자 하루…"고된 흔적 싹 없애드려요"

"이제는 작업복만 봐도 이 사람의 삶을 알 수 있어요." 28일 오전 9시께 매일 고된 노동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주는 세탁소. 커다란 세탁기 3대가 쉴 틈 없이 돌아가고 노동자 작업복 100여 벌이 세탁기 안에서 시원하게 묵은 때를 씻어낼 때, 세탁소 근로자 고모(53)씨는 이같이 말했다. 이곳은 대전 대덕구 대화동에서 4년째 운영 중인 노동자 작업복 전문 세탁소 '덕구클리닝'. 대덕산업단지 공장 근로자 등 생산·기술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곳으로 일반 세탁으로는 지우기 힘든 기름, 분진 등으로 때가 탄 작업복을 대상으로 세탁한다...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운명의 9연전'…한화이글스 선두권 경쟁 돌입

올 시즌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는 프로야구 한화이글스가 9연전을 통해 리그 선두권 경쟁에 돌입한다. 한국프로야구 10개 구단은 29일부터 다음 달 7일까지 '휴식 없는 9연전'을 펼친다. KBO리그는 통상적으로 잔여 경기 편성 기간 전에는 월요일에 경기를 치르지 않지만,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프로야구 5경기가 편성했다. 휴식일로 예정된 건 사흘 후인 8일이다. 9연전에서 가장 주목하는 경기는 29일부터 5월 1일까지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LG 트윈스와 승부다. 리그 1위와 3위의 맞대결인 만큼, 순위표 상단이 한순간에 뒤바..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교서 흉기 난동 "학생·학부모 불안"…교원단체 "재발방지 대책"

학생이 교직원과 시민을 상대로 흉기 난동을 부리고, 교사가 어린 학생을 살해하는 끔찍한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사들까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충북교육청에 따르면 28일 오전 8시 33분쯤 청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특수교육대상 2학년 A(18) 군이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 4명과 행인 2명에게 흉기를 휘둘러 A 군을 포함한 모두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경계성 지능을 가진 이 학생은 특수교육 대상이지만, 학부모 요구로 일반학급에서 공부해 왔다. 가해 학생은 사건 당일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해 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2025 유성온천 문화축제 5월 2일 개막

  •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오색 연등에 비는 소원

  • ‘꼭 일하고 싶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

  •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