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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식 기자<사진=김정식 기자> |
최호림 의원과 이승화 군수 사이에 오간 질의응답은 날카로웠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최 의원의 지적은 분명 핵심을 찔렀다.
3년간 의회와 단 한 번도 소통하지 않았다는 것, 케이블카 사업 예산 조달 방안이 허술하다는 것, 국립공원에 민간자본을 1원도 투입할 수 없다는 기본 상식조차 모른다는 것.
이 모든 것들은 군민이라면 당연히 궁금해할 내용이고, 군수는 마땅히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안들이었다.
하지만 그 방식은 어땠을까.
"군수 놀이하는 데입니까?" "깡통도 아니고" "원맨쇼하려고 나왔습니까?" 이런 표현들이 본회의장에 울려 퍼질 때마다, 방청석과 다른 매체를 통해 본 군민들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정당한 지적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해야 하나 싶은 표정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분명한 정서가 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특히 군민들이 뽑아준 단체장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날카로운 견제와 무례한 언사는 엄연히 다르다.
최 의원이 던진 질문들은 모두 필요한 것들이었지만, 그 포장지가 문제였다.
이승화 군수의 모습은 더욱 당황스러웠다.
자신이 직접 작성해 제출한 답변서에 나온 '5대 중점전략'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3년째 추진하고 있다는 케이블카 사업의 예산 조달 방안을 묻자 "서면으로 답변하겠다"고 했다.
국립공원에 민간자본을 얼마나 투입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도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40분 동안 "서면으로 답변하겠다"는 말을 8번도 넘게 들었다.
그럴 거면 애초에 왜 본회의장에 나온 것일까.
군정질의는 서면 답변을 받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
군민 앞에서 직접 설명하고 소통하기 위한 자리다.
"의회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식으로 답변해야 하나?"고 되묻는 모습에서는 더 큰 문제가 드러났다.
의회에 대한 기본 인식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군민과 소통하면 된다"며 의회를 우회하려는 태도는 지방자치의 기본 원리를 무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이겼느냐가 아니다.
이날의 군정질의에서 승자는 없었다.
최 의원도, 이 군수도, 그리고 무엇보다 군민들도 모두 아쉬움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의회는 집행부를 견제하고 감시하는 기관이다.
이는 헌법과 지방자치법이 보장하는 권한이자 의무다.
하지만 견제는 파괴가 아니라 건설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군민들은 의원이 군수를 굴복시키는 모습을 원하는 게 아니라, 군정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이끄는 모습을 원한다.
집행부는 의회의 질의에 성실히 답변할 의무가 있다.
이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군민이 선출한 대표들 앞에서 군정을 설명하는 것은 군수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다.
준비 없이 나와서 "서면으로 하겠다"고 하는 것은 군민을 우롱하는 일이다.
이날 본회의장을 지켜본 군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최 의원의 지적 내용에는 공감하면서도 그 방식에는 불편함을 느꼈을 것이다.
반면 이 군수의 태도에는 더 큰 실망을 느꼈을 것이다.
군민이 뽑아준 자리에서 그 정도의 준비도 없이, 그 정도의 성의도 없이 나온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는 갈등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발전한다.
의회는 견제 기능을 포기할 수 없고, 집행부는 책임 행정을 회피할 수 없다.
하지만 양쪽 모두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을 돌아봐야 한다.
최 의원에게는 말하고 싶다.
날카로운 견제는 계속하되, 품격 있는 언어로 하기를.
군수를 굴복시키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군정을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임을 잊지 말기를.
군민들은 의원의 날카로움보다 의원의 품격을 더 오래 기억한다.
이 군수에게도 말하고 싶다.
의회의 질의를 귀찮은 일로 여기지 말기를.
그것은 군민의 목소리이고,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성의 있는 준비와 진정성 있는 답변으로 군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를.
회피와 방어보다는 소통과 협력의 자세를 보이기를.
앞으로도 군정질의는 계속될 것이고, 의회와 집행부는 계속 만날 것이다.
그때는 오늘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군민들이 "맞다, 그렇다"고 고개 끄덕일 수 있는 군정질의, 품격과 내용을 모두 갖춘 지방자치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지방자치 30여 년,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포기할 이유는 없다.
오늘의 아쉬움이 내일의 발전으로 이어지기를, 그래서 산청군민들이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의회와 집행부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민주주의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간다.
마치 강물이 바위를 깎아 계곡을 만들듯, 오늘의 작은 충돌들이 모여 내일의 아름다운 협치를 빚어낸다.
산청=김정식 기자 hanul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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