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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
대학생 시절 해마다 여름 장마 때 홍수로 강의실 건물 아래 벽에는 물 자국 얼룩이 알록달록 그려져 있었다. 옛 유적으로 돌다리 중 가장 길다고 알려진 '살곶이 다리'는 보는 것만으로도 측은했었는데 지금은 수변공원이며 물관리도 향상되었고, 새 건물이 따로 건립되어 홍수와 물 자국은 옛말이 되었지만 호우는 그렇게 늘 시름을 불렀었다. 비는 농사 뿐만이 아니라 도시와 건축에 많은 생채기를 내고 있으며, 옛말에 불은 흔적이라도 남기지만 물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표현처럼 모두에게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오늘날에도 많은 비는 여전히 세상 곳곳을 힘들게 하고 있다. 언젠가 배수구 막힘 사고로 인해 실내에 물이 넘쳐 어렵게 공들인 공공건축의 마룻바닥이 빗물에 젖는 사건이 일어났다. 다행히 마루의 시공이 잘 되어 물은 곧 흔적 없이 건조되었지만, 당시 철렁했던 가슴은 비만 오면 그때를 기억나게 하며 우려되는 건축의 약함이 더욱 두려운 존재로 기억된다.
건축의 약함에 반제도 있다. 근래에 한 그룹사가 세운 '오디움(오디오+뮤지엄)'이란 오디오 박물관은 매우 격조를 지닌 걸출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타났다. 일본 외 지역에도 잘 알려진 건축가의 섬세함과 재료의 물성에 헌사 하듯 정성이 깃든 모습이 보는 이의 이목을 끌기에도 충분하다. 건축 외장으로 사용된 알루미늄 파이프는 어찌 보면 그동안 단순한 건축재였을 뿐인데 연약한 소재들이 합쳐져 파동을 일으키는 선의 물결과 음의 진동을 느끼게 되는 외연을 갖추게 하였다. 생물학적 꿈틀거림의 생동감과 물리적인 파동의 조화가 단순한 형태에서도 잘 묻어난다. 사용된 파이프들은 건축 외연의 표현 의지로 보이지만 소리에 대한 시각적 경험이 음으로 체험되며 마치 건축이 숲과 같이 유동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내부는 목재 구성으로 진동을 통한 시각적 변화와 음원의 불규칙한 반사를 고려한 다양한 어쿠스틱 공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에 소재한 그의 건축에서도 건축가 '켄코 쿠마'는 한결 같은 재료의 사용에서 신중하고 재료의 최소와 최대를 모두 겸비한 듯한 모습들의 건축을 보여주었기에 탄탄한 건축가의 디자인으로 여기서 다시 감동을 경험하게 한다. 소박한 생각에서 비롯된 거대한 건축의 출현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고 과하지 않으나 결코 소극적이지 않은 재료의 극한을 보는듯하다. 영국의 런던 템스강이 도버해협의 해일 등으로 범람하여 런던이 물바다가 되는 예측은 그리니치에 런던배리어(개폐식 차단벽)를 만들게 된다. 그런데
강한 재료를 다 놔두고 집성목재(GLT)로 거대한 구조체를 만들어 놀람을 주었던 목재와 연관된 오랜 기억이 있다. 최고의 건축가로 '데니스 레스던' 같은 노출 콘크리트 브루탈리즘이나 현란한 하이테크 건축을 접어두고 물 위의 목조건축을 만드는 것이 시대를 거꾸로 돌아간 듯해서였다. 하지만 런던배리어의 단단한 투구 속에는 물에 결코 강하지 않은 구조 목재가 빼곡하게 들어 찾고 마치 오래된 교훈처럼 부드러움이 강한 것을 이기는 현장을 보여주는 듯하였다.
약한 건축과 강한 건축의 담론을 실현하는 듯한 각기 다른 두 건축을 보며 약한 건축의 생물학적 존재감을 새삼 더 강하게 느끼는 계기가 된다. 건축의 두려운 존재는 재해에 대한 문제들일 것이다. 건축은 늘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재해와의 작은 전쟁터라고 할 정도로 재난이 늘 곁에 붙어있다. 나날이 늘어나는 고층의 유혹은 쉽사리 벗어나기 어려운 이상향이 되어가지만 쉽게 지어지는 건축들이, 자연 약함에서 벗어나질 못함은 숙명적이지 않나 싶고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짜임이 섬세한 건축의 도시를 만드는 일이 더욱 절실해진다.
김병윤 대전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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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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