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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조 운영위원장 |
세종시가 탄생할 때도 이러한 원칙이 적용되었다. 많은 사람이 도시 이름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고민했고, 세종대왕의 정신을 담을 수 있도록 도시의 철학과 정체성이 반영된 명칭을 선택했다. 이후 행정동·학교·건물 등에도 세종의 가치와 이야기를 담기 위해 한글 또는 세종과 관련된 이름을 부여해 왔다. 도시의 이름과 공간이 하나의 서사로 이어지도록 정교하게 설계해 온 것이다. 그러나 유독 공원의 명칭만은 예외다. 세종시의 가장 중심에 놓인 공원이지만 이름은 '중앙공원'이다. 한국의 대구·부산·청주, 일본의 히로시마·신주쿠, 대만 타이중, 라틴아메리카 여러 도시가 모두 'Central Park/中央公園/Parque Central'이라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한다. 이름만 보아도 무슨 의미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도시 중앙의 공원'이라는 지리적 표기다. 바로 이 단순함과 범용성이 문제의 출발점이다. 수많은 도시가 동일한 이름을 쓰는 만큼, 특정 도시만의 고유성은 없고, 그 공간은 아무런 이야기나 철학 없이 익명화된다.
세종의 중앙공원도 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공원은 도시의 심장부이자 상징적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은 세종시의 역사·문화·정체성·미래 비전을 담지 못한 빈칸처럼 남아 있다. 도시의 핵심 공공 공간인데도 세종만의 이야기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서울의 '서울식물원'처럼 정책 철학을 단번에 전달하는 이름과 달리, 세종의 '중앙공원'은 도시의 미래 전략과도, 지속 가능한 비전과도 연결되지 않는다. 이 공간은 단순한 녹지로만 인식되며 공공성·정책성·교육적 기능을 설계할 출발점을 잃고 있다.
이름은 장소 경험의 가장 강력한 첫 관문이다. 그러나 '중앙공원'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도 특별하지 않은 이름이기에 기억에 남지 않는다. 관광객에게 소개하기도 어정쩡하고, 시민에게도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 '도시의 상징 공간이면서도 상징이 되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이유다. 이는 도시 브랜드의 부재로 이어지고, 결국 공원의 기능도 분산되고 모호해진다. 이름이 방향성을 제시하지 않기에 휴식·생태·학습·공론 등의 역할 중 무엇을 중심에 둘지 합의되지 못하고, 운영 역시 조경 관리 수준에 머무르기 쉽다. 실제로 공원에 파크골프장을 만든다는 계획이 등장했던 것도 이름의 공백이 전략의 공백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도시의 공원은 도시 정체성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히로시마의 공원이 전쟁과 평화의 의미를, 타이중의 공원이 스마트 생태도시의 미래를 드러내듯, 세종의 중앙공원 또한 '세종다움'을 표현해야 한다. 금강, 장남들 습지, 제방길 등 세종시의 생태 자산과 연결되고, 시민참여 등 세종시가 구축해 온 지속가능성의 내용을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세종RCE(지속가능발전교육 거점센터)와 연계해 기후·생태·지역 참여 교육이 이루어지는 열린 학습공간이 될 수도 있다. 세종대왕이 집현전을 통해 지식과 토론의 문화를 일으켰듯, 세종의 중앙공원은 시민 누구나 참여하고 토론하고 배우는 '현대의 집현전'이 될 잠재력을 품고 있다. 그럼에도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은 이 모든 서사를 공원 밖으로 밀어낸다. 세종대왕의 철학(민본·공론·학습), 금강과 장남들 습지의 생태성, 행정수도라는 국가적 의미, 시민 중심의 도시 철학 등이 공원 이름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그저 도시 한가운데 있는 익명의 녹지에 머물 뿐이다.
지금 세종시는 중요한 전환기에 있다. 국회의사당과 대통령 집무실 조성이 시작되었고, 행정수도 기능이 빠르게 갖추어지고 있다. 중앙공원은 국회의사당에서 금강을 바라보는 핵심 경관 축에 놓여 있으며, 세종을 방문하는 누구라도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는 첫 이미지다. 이 공간이 세종을 대표하는 철학과 비전을 담아낼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제 세종시는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중앙공원'이라는 이름을 내려놓고, 오직 세종에만 존재할 이름을 고민해야 한다. 예컨대 '세종공원' 또는 '세종OOO공원'이라 명명한다면 그것은 한 도시의 공원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도시의 철학을 담은 고유한 상징이 될 것이다. 세종시의 이름을 말할 때 세종대왕의 철학을 설명하듯, 세종의 공원을 설명할 때도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금강을 바라보며 지속 가능한 국가 운영을 상상하도록 설계된 공원"이라는 이야기를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도시의 이름을 짓는 일은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었듯이 세종의 중심 공원도 이제 그 이름을 통해 세종의 철학과 비전을 이야기해야 한다. 이제 '중앙공원'의 이름 변경을 진지하게 논의할 때다./최병조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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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효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