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칼럼] 폭력과 성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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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人칼럼] 폭력과 성스러움

김홍진(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 승인 2026-02-25 16:46
  • 신문게재 2026-02-26 19면
  • 최화진 기자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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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진(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지난번 칼럼 〈광장의 단두대〉는 잔칫날 돼지 잡는 일화로 시작해 인신공희를 키워드로 끝냈다. 이번만큼은 사족을 달아야겠다. 인신공희는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에게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원시적 의례를 뜻한다. 태양신에게 산 인간이나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고대 아즈텍과 가나안 지방의 몰렉 숭배, 중국의 순장이나 아가멤논이 딸 이피게네이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신화가 대표적 사례다. 우리에겐 순결한 효의 영혼 심청이 있다. 구약 창세기 이삭 번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어느 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야훼로부터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을 받는다. 백수(白壽)를 훌쩍 넘긴 늙은이에게 애를 잉태케 할 땐 언제고, 제물로 바치라는 건 도대체 무슨 변덕…. 하지만 아브라함은 아무런 불평 없이 순순히 따른다. 제물인지 모른 채 아비 손을 잡고 모리아 산을 오르는 이삭, "근데 아버지 양은 어딨어요?" 묵묵부답 산에 오른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단에 올려놓고 칼을 치켜든다. 그 순간 나타난 천사, "근데 사실은 말이야 네 아들을 제물로 받으려는 건 아니고, 네 믿음을 시험한 거야."

이 서사는 인신공희가 희생양으로 바뀌는 문명화 과정의 산물이다. 오늘날 대부분 문화권에서 신전에 산 짐승을 바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가끔 가죽을 벗긴 소를 제물로 바친 법사나 무당, 혹은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이 이를 모방하기도 한다. 문명은 공공장소에서 잔혹한 죽음의 현시를 금한다. 문명과 이성 이전의 야만과 주술이기 때문이다. 이런 잔혹극은 검투사들이 피를 흘리며 싸우는 콜로세움이나 중세 광장의 공개처형, 시간을 끌며 물고기 회 뜨듯 조각조각 살점을 발라내 죽이는 중국의 백각형(白刻刑) 등으로도 연속한다.

리들리 스콧의 〈글래디에이터〉, 코모두스에게 아내와 어린 아들이 죽임을 당하고, 겨우 살아남아 검투사로 변신한 막시무스가 복수를 향해 혈투를 벌인다. 거대한 콜로세움 한복판 칼날이 부딪치고 굶주린 맹수들이 달려든다. 찢긴 살점과 터져 나온 내장이 사방에 흩어지고, 모래 바닥이 붉게 물든다. 환호하는 관중들의 함성…. 움베르토 에코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장 자크 아노의 〈장미의 이름〉, 음산한 잿빛 하늘 광장 형틀에 매달린 마녀의 발아래 장작더미 불이 붙는다. 공포에 질린 짧은 순간의 정적 끝, 군중들이 미친 듯 열광한다. 백각형은 조르주 바타유의 〈에로스의 눈물〉을 참조할 만하다.

근대에 들어서는 나치 히틀러와 이탈리아 파시즘, 스페인 내전의 프랑코와 소련의 스탈린, 탈레반과 IS, 우리에겐 한국전쟁기 좌우익이 자행한 공개처형의 비극적 기억이 있다. 유파를 달리 하나 고야, 마네, 피카소로 연속하는 학살의 형상화에 담긴 맥락도 참조할 만하다. 하드고어 혹은 하드코어라 할 수 있는 잔인한 폭력과 처형의 현시는 엽기적이고 혐오스럽다. 군중은 잔혹한 엽기를 끔찍하게 여기는 동시에 강박적으로 끌린다. 프로이트 식으로 이 매혹은 문명의 억압과 금기를 위반하는 데서 오는 욕망의 은밀한 충족, 혹은 타나토스의 발현….

문명은 잔혹한 짓을 금한다. 하지만 폭력은 성스러운 종교, 국가, 이념의 명분으로 대중들의 숨은 본능을 은밀히 충족시켜 준다. 대중은 잔혹한 폭력을 혐오하지만, 현실원칙이 금한 파괴적 욕망을 손가락으로 눈을 가린 채 호러나 스너프 필름을 보듯 즐긴다. 진짜 하고픈 말은 내란의 히스테리, 반국가 종북세력을 척결하여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란 성스러운 명분을 내세워 계엄을 선포한 내란수괴를 숭배하는 태도다. 그러나 법정에 선 그의 몰골은 벌거벗은 임금님, 권력의 외설적 실재를 현시할 뿐이었다. 그리고 대체로 자기발견의 정도가 낮은 이가 우상을 숭배하는 법이다.

김홍진(한남대 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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