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AI가 논문을 쓰는 시대, 연구자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 오피니언
  • 중도시평

[중도시평] AI가 논문을 쓰는 시대, 연구자는 무엇을 잃고 있는가?

김용성 충남대 사범대학 기술교육과 교수

  • 승인 2026-03-31 17:37
  • 신문게재 2026-04-01 18면
  • 정바름 기자정바름 기자
clip20260331110926
김용성 교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논문 작성은 밤새 모니터 앞에서 한 문장 한 문장 고민하며 써 내려가는, 지극히 고된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한 편의 논문을 완성하기 위해 수십 번의 퇴고를 거치고, 지도교수의 날카로운 피드백에 원고를 갈아엎는 경험은 연구자라면 누구나 겪는 통과의례였다. 그런데 최근 들어 과거의 통과의례는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필자는 AI가 본격적으로 확산 되기 이전에 박사 학위를 받은 세대다. 소위 '라떼 시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때의 글쓰기 훈련이 지금의 연구 역량과 논리적 사고력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논문이라는 것은 단순히 텍스트를 생산해내는 행위가 아닌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깊은 고민을 거쳐 자신만의 논거를 구축하고, 이를 설득력 있는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 수 없는 고민 속에 논리적인 허점을 발견하고, 더 좋은 표현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연구자가 성장하는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AI의 등장으로 이러한 경계가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생성형 AI는 몇 분 만에 그럴듯한 문장을 만들어내고, 논문의 구조까지 빠르게 잡아준다. 실제 많은 연구자는 알게 모르게 AI로 초고를 작성하고, 큰 고민 없이 이를 다듬어 제출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실제 논문 지도를 하는 학교 현장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빈번히 목격하게 된다. 학생들이 스스로 문장을 만들어본 경험이 부족하다 보니, AI가 생성한 텍스트의 논리적 허점이나 어색한 표현을 걸러내지 못하는 모습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학부 과정에서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서울대 학생의 97%가 학업에 AI를 활용한다는 조사 결과가 보여주듯, AI를 활용한 과제 수행은 이미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학생들이 과제의 내용을 깊이 사고하기보다는 단순히 복사하여 붙여넣기 수준으로 과제를 처리하는 경우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물론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MIT에서 발표된 연구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AI를 활용해 에세이를 작성한 그룹은 자신이 쓴 내용을 상당 부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 AI가 글쓰기의 효율성은 높여주지만,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이로 인한 학습 효과는 저하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현실은 지역 대학에 더 심각한 고민과 과제를 던져준다. 매년 지역 대학에서 배출되는 수많은 석·박사 연구자들이 AI에 의존한 채 학위를 취득한다면, 이들이 아무 자료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여러 논거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설득력 있는 글을 써낼 수 있을까?

필자의 생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쪽이다. 연구자의 본질적 역량은 AI가 생성한 텍스트를 편집하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논리를 구축하며 이를 글로 표현하는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아야 할 이 기본 역량이 흔들린다면, 우리가 양성하는 연구 인력의 질적 수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물론 AI라는 시대적 흐름에 거스를 수는 없다. AI를 무조건 배제하자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오히려 역행하는 것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를 활용하되, 연구자로서의 핵심 역량을 잃지 않는 균형을 찾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학원 교육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중 필자가 제안하는 방식은 논문 평가의 초점을 '결과물'에서 '과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완성된 논문만을 평가하는 현행 방식으로는 AI 활용 여부를 판별하기 어렵다. 연구 주제 선정부터 자료 수집, 분석, 집필에 이르는 전 과정을 포트폴리오 형태로 기록하고 평가하는 방식이 도입되어야 한다.

더하여 이들의 글쓰기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실제 AI 없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교육이 대학원 교육의 필수 과정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이미 AI가 논문을 구상하고 써주기까지 하는 시대는 도래했다. 그러나 논문의 본질은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사고력과 표현력에 있다. AI는 연구를 돕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연구자를 대체할 수는 없다. 지역 대학에서 배출되는 연구자들이 AI 시대에도 진정한 연구 역량을 갖춘 인재로 성장하려면, 지금이 바로 글쓰기 교육과 연구 훈련의 패러다임을 재정립해야 할 시점이다.

/김용성 충남대 사범대학 기술교육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선도지구 발표 임박…몇 개 구역 선정될까?
  2. 민선 9기 대전시 첫 인사 단행
  3. '반도체 홀대' 충청, 李 정부 장관 인사서도 푸대접
  4. [한화에어로 참사] 참사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사고 한 달 지났지만 정확한 원인 규명 '아직'
  5. [한화에어로 참사] 금속분말-세척수 반응했나… '수소가스 폭발' 가능성도 조사 쟁점
  1. 대전 밀알복지관,'안전한 보금자리'사업 수행
  2. '새벽 스쿨존 30㎞' 손보나… 황운하, 보호구역 탄력 운영법 발의
  3. '외연 확장' KAIST 이광형 총장 이임…실패연구소 이끌며 도전과 개척 강조
  4. 제5대 세종시의회 상임위 구성 마무리… 4개 위원장 모두 민주에
  5. 대덕세무서 신설 승인 지연에 지역 경제계 '촉각'

헤드라인 뉴스


한화에어로 참사 중간수사 결과 "세척기 발화 가능성 커"

한화에어로 참사 중간수사 결과 "세척기 발화 가능성 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폭발 참사 발생 한 달 만에 경찰이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사고의 정확한 원인은 여전히 규명하지 못했다. 사고 지점이 세척기 주변일 가능성과 당시 작업자들이 세척 설비 내부 탱크를 청소하고 있었다는 정황은 확인됐지만, 폭발을 일으킨 직접 점화원과 작업 공정상 문제, 안전관리 책임 소재는 추가 감정과 보강 수사를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2일 대전경찰청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전사업장 폭발사고 중간 수사 브리핑을 열고 현재까지 현장 합동감식 3회, 압수물 5700여 점 분석, 관계자 32명 조사 등..

대전 선도지구 발표 임박…몇 개 구역 선정될까?
대전 선도지구 발표 임박…몇 개 구역 선정될까?

대전 노후계획도시정비 선도지구 발표가 임박하면서 최대 몇 개 구역이 선정될지 관심이 쏠린다. 둔산지구의 경우 최대 3개 구역까지 선정 가능하며, 송촌지구는 1개 구역만 신청해 사실상 선정이 확정된 상황이다. 현재 대전시는 국토교통부와 사전 협의를 마친 상태로, 2~3주 내 선도지구 선정 결과를 발표할 것으로 전망된다. 2일 시에 따르면 대전 노후계획도시정비 선도지구 공모에 둔산지구 9곳, 송촌(중리·법동)지구 1곳 등 총 10개 구역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신청구역은 특별정비예정구역 27곳 중 1구역(상록수·상아·초원·강변) 3899..

[MSI 2026] 대전 뜨겁게 달군 T1… 이제 우승 향해 달린다! 브래킷 스테이지 대진 확정
[MSI 2026] 대전 뜨겁게 달군 T1… 이제 우승 향해 달린다! 브래킷 스테이지 대진 확정

대전에서 열리고 있는 이스포츠 게임축제 2026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SI 2026)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대표로 출전한 T1이 승승장구하며 본선 라운드 브래킷 스테이지에 진출했다. '페이커' 이상혁의 소속팀인 T1은 1일 진행된 MSI 플레이-인 스테이지 최종전에서 강팀 '리퀴드(TL.북미)'를 세트 스코어 3대 0으로 완파하며 단 1팀에 주어지는 브래킷 스테이지 진출권을 따냈다. 이로써 T1은 세계 최정상급 8개 팀과 함께 우승을 향한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다. T1의 본선 과정은 그야말로 '압도적'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이재명 대통령,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참석 이재명 대통령,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 참석

  • ‘개문냉방 안돼요’ ‘개문냉방 안돼요’

  • ‘함께하는 가치, 소비자의 힘’ ‘함께하는 가치, 소비자의 힘’

  • 본격적인 장마철의 시작 본격적인 장마철의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