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전주 한옥마을, 느림의 미학

  • 문화
  • 여행/축제

[여행] 전주 한옥마을, 느림의 미학

넘실대는 기와지붕의 파도, 먹기위해 줄 선 사람들 사이 울긋불긋, 꽃처럼 핀 한복들 전동성당 풍경을 가슴에 담고 오목대 오르면 한옥 수백채가 어깨 맞대고 마음 열게해

  • 승인 2016-03-17 14:34
  • 신문게재 2016-03-17 9면
  • 박희준 기자박희준 기자
느림은 우리를 단박에 시간의 부자로 만든다. 이 느림은 애초에 우리 것이 아니었던가? 느리게 봐야 풍경들은 제 색깔과 향기를 드러낸다. 느림은 시간의 늘어남이고, 공간을 파고들며 스며서 깊이를 만든다.

박연준·장석주 에세이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중에서

전주의 밤엔 비밀이 없다. 아주 작은 말소리부터 문 여닫는 소리까지 모두 들린다. 편집기자협회 정기총회 참석 차 들른 전주의 늦은 오후. 사람들로 북적이던 한옥마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집집마다 불이 꺼지고 어느 시골마을처럼 고요했다. 도란도란 말소리가 잦아들고, 까만 기왓장이 가지런히 놓여있는 지붕을 덮은 채 모두가 잠든 밤. 낮은 담장너머 방마다 켜진 불빛이 정겹다. 한옥을 지탱하는 기둥을 쓸어내려본다. 나무가 겨울을 건너며 생긴 굳은살이 느껴졌다. 뜨끈뜨끈한 방바닥에 몸을 눕히자 바로 잠이 들었다. 일정에 지친 하루의 굳은살이 연해지는 듯했다.


▲내부의 무늬들 =날이 밝자 어제 보이지 않던 한옥들이 제각각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사뿐히 날아오르는 새의 날개 같은 처마.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의 곡선이 넘실대는 파도 같았다. 이른 시간임에도 사람들이 북적였다.

사실, 한 낮의 전주 한옥마을에선 고즈넉한 정취와 고요함은 찾아보기 힘들다. 슬로시티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손쉽게 사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SNS를 타고 입소문이 급속도로 퍼져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만큼 사람도 많았다. 트럭도 지나다닐 만큼 꽤 넓은 길가엔 발 디딜 틈 없이 '먹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아쉬웠다. 전날 밤 보았던 정겨운 시골마을은 온데간데없었다. 가게 앞 늘어선 대기 줄이, 머리를 길게 땋아 놓은 것 같이 얽히고 설켜 있었다.

전부 둘러보지 못했지만 한옥마을 곳곳에는 한지원, 공방촌, 서예관, 술 박물관 등 볼거리가 많다. 모두 둘러보아도 하루가 다 모자를 지경인데 너무 먹을거리에만 집중하는 사람들이 야속했다. 한옥의 화려한 겉모습에 심취하기보다 내부의 무늬들, 나무의 숨결을 느끼고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만두면 제자리를 찾는 것=전주 한옥마을 초입부(풍남문에서 태조로 방면)로 들어가면 전동성당이 제일 먼저 반긴다. 1914년 완공됐다는 전동성당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손에 꼽히는 관광지다. 그전에 천주교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웅장한 성당의 모습은 카메라에 담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큰 길을 따라 동쪽으로 걷다보면 오목대가 있다. 오목대에 오르면 한옥 수백 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실로 장관이다. 이제야 한옥마을에 온 것 같았다. 마을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이 뻥 뚫렸다. 한옥마을의 가장 특이한 점은 한복체험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생활한복에서 기생한복까지 가지각색의 고운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사진을 찍는 것이 일상복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다. 한복대여소도 20여곳으로 점차 늘어나고 있으며 비용도 저렴해 부담이 적다. 오목대에서 내려다보면 기와집 사이로 여기저기 꽃이 핀 것처럼 고운 빛깔의 한복이 싱그럽다.

오목대 뒤편에 있는 오목교(육교)를 건너면 또 다른 마을, 자만 벽화마을이 나온다. 이곳은 6·25때 피란민들이 정착하여 만들어진 달동네인데 2012년 녹색 둘레길 사업이 시작되면서 40여채 주택에 벽화들이 그려지기 시작했고 한옥마을과 더불어 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만 판다는 전주비빔밥 와플은 낯설지만 신선하다. 마을 끝자락에는 커다란 테라스가 있는 카페도 있는데 한옥마을에서 사람들 발길에 치여 정신이 없다면 이곳처럼 평화로운 곳도 없다.

어느덧 날이 저물자 또 다시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정신없이 걷다보니 시간가는 줄 몰랐나보다. 자연을 재료로 자연과 어우러져 겸손하게 서있는 한옥들. '슬로시티 전주'와 꽤 닮아있다. 혹시 전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먹방'이 아닌 한옥마을의 속살을 들여다보길 권한다. 그리고 최대한 천천히 걸었으면 한다. 이번 전주여행은 유난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하지만 전주의 시간은 언제나 느리게 간다. 아니 어쩌면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다만 내가 빠르게 걸었을 뿐이다. 느림의 미학. 전주는 '꼭꼭 씹어먹어야' 제 맛일 것이다.

▲가는길=승용차를 이용한다면 계룡IC를 지나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논산, 익산을 지나 완주JC와 동전주IC로 빠져나오면 된다. 시간은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버스를 탄다면 대전복합터미널이나 청사고속버스둔산정류장에서 전주고속버스터미널로 가면 된다. 이후 684번 버스를 타고 전동성당·한옥마을 정류장에서 내린다. 터미널까지 1시간 20분, 한옥마을 진입까지 총 소요시간은 2시간정도 걸린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민주평통 대전 동구협, 한반도 평화공존 대내외 정책 모색
  2. 세종시 '상권' 고립무원…새로운 미래 없나
  3. 대전 진보교육감 단일화 미참여 맹수석·정상신 후보 "단일화 멈춰야"
  4.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5. 석유 사재기·암표상 집중 단속… 민생물가 교란 범죄 뿌리 뽑힐까
  1. [사설] '차기 총선 통합론' 더 현실적 대안인가
  2. 345㎸ 입지선정위 논의 3개월 남아… 지역사회 우려 해소는 '제자리'
  3. [세상읽기]'대전 3·8민주의거' 그 날의 외침
  4. [내방] 김도완 대전지검장
  5. 대전사람 10명 중 8명 "지역치안 안전해"… 대전경찰청 안전 설문조사 진행

헤드라인 뉴스


무산된 대전충남 행정통합… 지방선거 화약고 불보듯

무산된 대전충남 행정통합… 지방선거 화약고 불보듯

대전충남 행정통합이 사실상 무산된 가운데 이 사안이 6·3 지방선거 여야 최대격전지 금강벨트의 화약고가 될 전망이다. 더욱이 행정통합 성공에 따른 논공행상이 아닌 실패로 인한 책임공방이 불가피할 가능성이 커 휘발성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 따르면 통상 공직선거 한 달 또는 늦어도 공식선거운동 기간을 전후해 각 당은 시도별 공약을 발표하기 마련이다. 올 지방선거가 6월 3일 치러지는 점을 감안하면 5월 초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5월 21일께에는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여진다. 충청권의 경우 여야 가릴 것 없이 이미 지역..

20년 숙원 해결 기대감 높였던 대전역세권 복합 2구역, 아직 첫 삽 못떠
20년 숙원 해결 기대감 높였던 대전역세권 복합 2구역, 아직 첫 삽 못떠

시행사가 사업설명회까지 열면서 착공의 기대감을 높였던 대전 역세권 복합2구역 개발 사업이 첫 삽을 뜨지 않으면서 시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중동분쟁으로 경제 위기감이 고조되고,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착공이 계속 지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2일 대전시와 지역 건설업계 등에 따르면 올해 2월 예정이었던 대전 역세권 복합2구역의 착공이 연기됐다. 대전역세권개발의 핵심 사업인 복합2구역 사업은 대전역 동광장 주변 2만8391㎡ 부지에 1184가구 공동주택과 호텔·컨벤션·업무·판매시설을 집약하는 초고층 복..

`정부세종청사` 이전 흔들기 시도… 지역 정치권 규탄
'정부세종청사' 이전 흔들기 시도… 지역 정치권 규탄

인구 39만 명 벽에 갇힌 세종시. 2020년 중앙행정기관 이전기(1단계)도 미완으로 남아 표류하고 있는 현실. 행정 기능만 덩그러니 놓인 세종시의 정상 건설을 뒤흔드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어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해 해양수산부에 이어 올해 지방선거철을 맞아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의 이전을 공약하는 일이 반복되면서다. 김민석 총리와 행정안전부까지 나서 "추가 이전 계획은 없다"는 사실을 못 박았으나 선심성 약속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세종시 여·야 정치권에 이어 세종특별자치시의회(의장 임채성)가 12일 이에 대한 규탄의 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반갑다 야구야! 반갑다 야구야!

  • 내가 최강소방관 내가 최강소방관

  •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저희 동아리가 만든 자동차랍니다’

  • 개학기 등하굣길 ‘안전하게’ 개학기 등하굣길 ‘안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