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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진성 시인 |
나도 안다. 누군가, 내가 카페에서 작업하는 걸 보면 저게 시인이 맞나, 한숨부터 나올 것이다. 모바일 게임은 계속 돌아가고 있고 어지러운 책상 위 이 책 저 책 뒹굴고 있고, 노트북으로는 트위터와 페이스북, 블로그를 옮겨다닌다. 카톡으로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낸다. 뭐하니, 로 시작되는 쓸데없는 안부 문자부터 누군가에게 시를 전하는 제법 긴 문자까지, 누군가 보면 영락없이 놀러온 사람이 맞다. 몸이 물을 많이 원해서 물을 마시는 일이 잦고, 골초여서 담배 피우러 밖에 나가는 일도 많다. 그런데 당신들이 모르는 나의 작업의 비밀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어떤 글'을 쓰기 위한 '몸 풀기'라는 것이다.
먼저 머릿속에 쓸 글의 얼개를 짠다. 대개 첫 문장을 잡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그러니까 손으로는 다른 짓을 하면서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을 궁글리는 것이다. 첫 문장을 찾고 써야 할 글의 어조를 찾고 이미지를 찾고 대략의 길이를 구상하는 것이다. 그 생각들을 조금씩 트위터에, 페이스북에 기록하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우연으로 다른 생각들과 '접 붙는' 것이다. 나의 글들은 그런 우연을 사랑한다. 어떤 날엔, 댓글에서 영감을 받아 30매짜리 산문을 쓴 적이 있다. 어떤 날엔 트위터에서 본 사진에서 힌트를 얻어 시의 초고를 잡은 적이 있다. 어떤 날엔 누군가에게 보낸 장난 문자에서 시작해 긴 산문을 쓴 적도 있다. 좋게 말해서 '글쓰기를 위한 몸풀기'이지만 이건 난장판이 따로 없다. 그래서 카페에 갈 때는 구석자리를 찾는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최소한으로 주기 위한 나름의 고육지책이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의 저류엔, “시는 노는 것이다”란 생각이 깔려 있다. 당연히 시의 문법은 산문의 문법과 달라서, 비약과 이질적인 것들의 혼합과 엉뚱함이 필요하다. 나의 이 난장판들은 엉뚱함과 비약을 찾아서 헤맨다. 오래 헤맬수록 좋은 글이 나온다. 경험상 그렇다. 온 종일 헛짓만 하다가 겨우 세 줄 쓰고 카페에서 나온 적도 있다. 그 세 줄의 문장은 내가 가장 아끼는 시 중 한 편의 도입부가 되었다.
시 쓰는 사람은 한가해야 한다. 한가하고 더 없이 한가해서 자신을 못 견딜 정도가 되어야 한다. 한량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도저히 못 가본 곳까지 가서 한량이 되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겪어보지 못한 '심심함'을 겪어봐야 한다. 그래야 '다른 곳'을 경험할 수 있고 감각할 수 있고 자신의 글에 그곳을 이식할 수 있다. 결코 문학에서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혹은 '적당한 것이 좋은 것이다'와 같은 명제가 미학이 될 수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한가하게 분주할 것이다. 한가할 수 있을 때까지 한가해져서 내가 이전에 당도해본 적이 없는 곳에 가볼 것이고 분주할 수 있을 때까지 분주해져서 나의 온몸에 상상과 비약과 감각이 흐르도록 둘 것이다. '한가함'과 '분주함', 이 두 개의 모순된 상태가 서로 긴장할 수 있도록 나는 내 자신을 '이상한 한량'이 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다. 내가 가장 한가하고 한량인 곳에서 나의 문장은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나는 끝까지 한가하려고 나의 많은 것들을 포기할 것이다.
박진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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