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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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20-03-0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문득 바라본 양지바른 언덕, 여기저기 푸른 잎이 솟아나 있다. 마른 잎이 얼기설기 얽혀 남은, 그 사이로 쭈뼛거리며 큰개불알꽃이 환하게 웃는다. 들여다보니 푸른 잉크 빛 꽃이 예쁘기 그지없다. 이름도 재미있다. 뿐인가 성질 급한 벚꽃이 개화해, 얼어붙은 마음을 일깨운다. 봄이로구나.

봄을 잊었다. '코로나19'에게 봄을 빼앗겼다. 봄 같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예 봄이 없어 보인다. 세상이 멈춰있는 것으로 느낀다. 한가로이 챙길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탓이리라. 현장에서 노고를 아끼지 않는 의료진이나 봉사자뿐 아니다. 모든 국민이 한 마음이다. 상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다. 마스크뿐이 아니다. 국가 대란 상태이다.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못하는 절망의 순간이 많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도 마찬가지다. 민족시인 이상화(李相和, 1901.04.05. 대구 ~ 1943.04.25. 서울)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식민치하에서 봄이 돌아왔다고 참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가 묻고,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로 맺고 있다.

중국 전한시대 일이다. 황제가 후궁 모집 조서를 내린다. 전국 각지에서 선발되어 입궁한 궁녀가 수천이다. 너무 많아 황제가 직접 면접하기 어려웠나 보다. 요즈음 같으면 사진이나 동영상을 첨부한 영상 심사도 가능하겠으나, 전자 장비가 없던 당시 초상화로 대신한다. 초상화 그리는 일은 모연수(毛延壽)라는 화공이 담당한다. 절차가 많아지면 부정이 생긴다. 부잣집 자녀나 후원자가 있는 여인은 뇌물을 주고 예쁘게 그려 달라 청탁한다. 여인네 형상이 모연수 맘이다.



방년 18세 왕장이라는 여인은 처음부터 속일 마음이 없다. 신분이 낮고 가난하여 바칠 뇌물도 없다. 가까스로 선발은 되었으나 모연수가 대충 그려, 5년이 넘도록 황제의 은총은커녕 눈길도 받지 못한다.

흉노족 선우(왕) 호한야(呼?邪, 미상 ~ BC 31)가 전한의 11대 황제 원제(元帝, BC 75 ~ 33/32, BC48 ~ 33/32 재위)를 찾아와 부마가 되기를 청한다. 환영연을 열고 소외되었던 궁녀들로 시중을 들게 한다. 그중에 군계일학(群鷄一鶴) 미모가 빼어나 여인이 있지 않은가? 한눈에 반한 호한야는 공주가 아니어도 된다며 그 여인을 지목한다. 누구를 보낼까 고민하던 황제가 잘됐다 싶어 쾌히 승낙한다. - 전에 선물한 오녀도(五女圖) 속의 한 여인이란 설도 있음 - 소군(昭君)이란 칭호까지 내려준다. 그가 바로 중국 역사상 4대 미녀 중 하나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이다. 얼마나 고왔을까? 미모에 놀란 원제도 후회하며, 초상화를 잘 못 그려 기만한 화공 모연수를 참수한다.

네이멍구(內夢古) 자치구 왕소군 묘역인 청총(靑塚, 초목이 누렇게 물들어도 무덤 풀이 항상 푸르러 붙여진 이름)에 <왕소군 출새도(出塞圖)>가 있다. 호화롭게 치장한 백마에 붉은 털옷을 입고 비파를 안은 왕소군이 타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는 왕소군이 다칠세라 꽃가마에 태우고 호한야 일행이 호위하며 호화롭게 떠났다 하기도 한다.

전하기를, 장안에서 북으로 떠날 때 구경 나온 사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다. 잠시 멈춰, 달랠 길 없는 슬픈 마음을 비파에 담아 이별곡을 연주한다. 고운 비파소리에 지나던 기러기도 바라보다 그만, 왕소군 미모에 홀려 날개짓을 잊은 탓에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런 연유로 왕소군의 미모를 낙안(落雁)이라 한다.

왕위가 선양되면 생모를 제외한 선왕의 처첩 모두 자기 것으로 삼는 것이 흉노족 풍습이다. 수혼제(嫂婚制)라 한다. 호한야가 죽은 후 중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나 허락되지 않는다. 배다른 아들 복주루(復株累, 10년 재위)뿐 아니다. 8년간 재위한 수해(搜諧), 4년간 재위한 차아(車牙)에 이어 오주류(烏株留) 재위 시까지 살아 있었다. 오주류가 즉위할 때 40대에 지나지 않았다.

워낙 절세미인이고 파란만장한 삶을 산 왕소군은 수많은 시인묵객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를 그린 사람이 무려 700여 명에 이른다 한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東方?) 또한 그때의 정황을 그린 <소군원(昭君怨)>이란 시를 썼다. 3연인데 마지막 연에 '봄이 와도 봄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라고 읊었다.(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 옷에 맨 허리띠가 절로 느슨해지니 / 가느다란 허리 몸매를 위함은 아니리, 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自然衣帶緩 非是爲腰身)

몸도 마음도 동토인 땅에서, 봄이라고 한들 봄이 봄 같았겠는가? 마음고생이 심해 몹시 야위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심적 상실의 아픔에서 나아가 건강을 잃을까 심히 염려된다. 방콕에서 벗어나 마음의 여유를 찾았으면 한다. 어서 활기를 찾자.

양동길 / 시인, 수필가

양동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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