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묻지마 범죄'의 공통점

  • 사람들
  • 뉴스

[독자칼럼]'묻지마 범죄'의 공통점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 승인 2023-08-21 10:00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전우영 충남대 심리학과 교수
택시를 타고 서울 신림역에서 내린 남성. 그는 근처 골목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남성에게 갑자기 달려들었다. 그리고 칼을 휘둘렀다. 쓰러진 피해자의 목을 한 번 더 찔러 치명상을 입힌 범인. 그는 약 2분 동안 대낮의 서울 번화가에서 또 다른 남성 3명의 얼굴과 목을 겨냥했다.

이 사건은 악마 같은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2023년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심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범인은 30대 남성이었다. 그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단기적인 일을 했고, 최근에는 일자리마저 잃었다. 그리고 대출 받은 돈으로 편의점이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또한, 최근 8개월 동안은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주로 게임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인칭 슈팅게임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1인칭 슈팅게임은 게임을 하는 사람이 게임 속의 캐릭터의 시점으로 움직이면서 게임 공간에 있는 적들을 죽이는 게임 장르다.



<범인들의 공통점>



이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래서 미워할 이유도 없는 상대에게 갑자기 치명적인 폭력을 가하는 '묻지마 범죄'의 발생 빈도가 최근 들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범인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이들이 장기간 거의 실업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오랜 기간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단절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실업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주지만 사회심리적인 차원에서도 큰 손상을 야기한다. 사람들은 일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형성한다. 따라서 실업 상태에 놓이는 것은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고, 동시에 자존감에 큰 상처를 준다. 또한, 실업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박탈한다. 직장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실업은 생계유지에 필요한 경제적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뿐만이 아니라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도 박탈하는 것이다.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력 상실>

집단이 구성되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집단 내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합의가 생기는데, 이를 규범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규범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재확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범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인 사회적 상호작용이 단절되면, 한 사회의 규범이 개인의 마음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급격히 약화된다.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와 같은 너무 당연해 보이는 규범조차도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재확인되지 않으면 개인의 행동을 제어하는 규범으로서의 힘은 약화된다. 이런 상태에서 상대를 빨리, 그리고 많이 죽여야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게임 속의 규범이 마음을 장악하면, 게임의 규범이 현실의 규범을 대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업 상태에 놓인 당사자는 사회 전체가 자신을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것 같은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은 해본다고 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은 좌절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좌절은 자신을 좌절시킨 사회에 대한 분노를 야기한다. 여기에 더해서 실업 때문에 직장이라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공간으로부터 배제되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의 빈도는 급격히 감소한다. 그 결과, 현실 규범을 재확인할 기회를 찾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좌절시킨 사회에 대한 분노와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력 상실이 결합되면, 이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실업은 미래의 묻지마 범죄를 예약하는 것>

'묻지마 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범죄자에 대한 단호하고 엄격한 처벌이 강조되기도 한다.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강한 처벌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미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조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실업문제를 방치한 채로 '묻지마 범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하는 것은 모기들이 알을 낳는 웅덩이는 그대로 놔두고 눈에 띄는 모기만 열심히 잡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기를 열심히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웅덩이를 메워야 한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실업 문제의 해결은 한 사회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나성동 '도시상징광장'서 매주 릴레이 축제
  2. [문화 톡]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와 함께 하는 한마음 축제에 다녀와서
  3. [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고품격 모임, 유숙의 <수계도>
  4. 한전(송주법) 서구 평촌2동 지회 장학금 지원
  5. 꽃으로 친구를 만나다
  1. "당신의 세월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2. ‘한부모에게 희망을 아이에게 행복을’
  3. 대덕구노인종합복지관 선배시민 자원봉사단 '희망그린 꽃길 따라
  4. 굿네이버스 대전충북사업본부-도안예미지어린이집, 해외아동지원 위한 후원금 전달식
  5. [인터뷰] 백향기 대전창조미술협회장, 창조. 융합 전국작가특별전 열다

헤드라인 뉴스


바다 없는 대전서 프리다이빙을? 수중 15m 다이빙 가능한 이곳!

바다 없는 대전서 프리다이빙을? 수중 15m 다이빙 가능한 이곳!

물속에서 물고기들과 심해를 유유히 돌아다니는 모습! 영화나 드라마 아니면 꿈속에서 상상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산소통 같은 특별한 장비 없이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활동을 프리다이빙(freediving)이라 부른다. 대전시 중구 안영동에 위치한 ‘알프스 다이빙센터’는 바다와 인접하지 않은 대전에서 프리다이빙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다. 이곳 풀장은 최대 수심15m(가로10m/세로20m)로 대전을 포함한 중부권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1.3m, 6m, 15m등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어 초보자도 바로 입수가 가능하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시즌1 파이널 경기 10일 성공적 개막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시즌1 파이널 경기 10일 성공적 개막

'2024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프로 시리즈(PMPS)' 시즌1 파이널 경기가 10일 대전 이스포츠 경기장(대전드림아레나)에서 성공적으로 개막했다. 이번 경기는 앞서 3월에 개최된 시즌0에 이어 본격적인 프로시리즈가 시작되는 경기로, Beyond Strotos Gaming, Dplus 기아, 덕산 ESPORTS, Eagle Owls, emTex StormX, 젠지 Esports, IFYOUMINE GAME PT, 미래앤세종, 농심 RedForce, ROX, ANGRY, FOCUS, INFINITY, Join uS, VEGA ESPOR..

따뜻한 한끼에 커지는 나눔…도시락 봉사 훈훈
따뜻한 한끼에 커지는 나눔…도시락 봉사 훈훈

어려운 이웃에게 정기적으로 도시락을 제공하고 있는 50대 음식점 사장이 있어 훈훈함을 주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대전 중구 오류동에서 도시락과 토스트 전문점 '나두나두'(NADU NADU)를 운영하는 김은주(51)씨다. 김씨는 얼마 전 중도일보 유튜브 '곽성열의 판 깔아드립니다' 생방송 중 댓글 이벤트에 당첨된 당첨자 이름으로 손수 만든 도시락을 중구에 사는 불우이웃에게 전달했다. 무료로 주는 도시락이라고 해서 대충대충 만들지 않았다. 김씨가 전달한 도시락은 흰쌀 밥에 국, 일곱 가지 반찬이 곁들어져 있어 든든한 '한 끼'로서 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金값된 김값’…장바구니 물가 부담 ‘金값된 김값’…장바구니 물가 부담

  • ‘온천에 빠지다’…유성온천 문화축제 10일 개막 ‘온천에 빠지다’…유성온천 문화축제 10일 개막

  • 윤석열 대통령 입에 쏠린 관심 윤석열 대통령 입에 쏠린 관심

  • ‘5월의 여왕’ 장미 만개 ‘5월의 여왕’ 장미 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