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악마 같은 인간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다. 바로 2023년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중심부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범인은 30대 남성이었다. 그는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주로 단기적인 일을 했고, 최근에는 일자리마저 잃었다. 그리고 대출 받은 돈으로 편의점이나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또한, 최근 8개월 동안은 잠자는 시간 이외에는 주로 게임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1인칭 슈팅게임에 빠져 있었다고 한다. 1인칭 슈팅게임은 게임을 하는 사람이 게임 속의 캐릭터의 시점으로 움직이면서 게임 공간에 있는 적들을 죽이는 게임 장르다.
<범인들의 공통점>
이전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그래서 미워할 이유도 없는 상대에게 갑자기 치명적인 폭력을 가하는 '묻지마 범죄'의 발생 빈도가 최근 들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범인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이들이 장기간 거의 실업 상태에 놓여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오랜 기간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이 단절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실업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주지만 사회심리적인 차원에서도 큰 손상을 야기한다. 사람들은 일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존감을 형성한다. 따라서 실업 상태에 놓이는 것은 정체성의 혼란을 야기하고, 동시에 자존감에 큰 상처를 준다. 또한, 실업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를 박탈한다. 직장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고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실업은 생계유지에 필요한 경제적 재화를 획득할 수 있는 기회뿐만이 아니라 심리적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상호작용의 기회도 박탈하는 것이다.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력 상실>
집단이 구성되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집단 내에서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에 대한 합의가 생기는데, 이를 규범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규범을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자신이 속한 사회의 규범을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재확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범을 점검할 수 있는 기회인 사회적 상호작용이 단절되면, 한 사회의 규범이 개인의 마음과 행동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은 급격히 약화된다.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와 같은 너무 당연해 보이는 규범조차도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재확인되지 않으면 개인의 행동을 제어하는 규범으로서의 힘은 약화된다. 이런 상태에서 상대를 빨리, 그리고 많이 죽여야 높은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게임 속의 규범이 마음을 장악하면, 게임의 규범이 현실의 규범을 대체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실업 상태에 놓인 당사자는 사회 전체가 자신을 집단적으로 따돌리는 것 같은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자신은 해본다고 했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상황은 좌절감을 일으킨다. 그리고 좌절은 자신을 좌절시킨 사회에 대한 분노를 야기한다. 여기에 더해서 실업 때문에 직장이라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공간으로부터 배제되어서 다른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의 빈도는 급격히 감소한다. 그 결과, 현실 규범을 재확인할 기회를 찾지 못하게 된다. 자신을 좌절시킨 사회에 대한 분노와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력 상실이 결합되면, 이제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기 위한 기본적인 준비가 끝나는 것이다.
<실업은 미래의 묻지마 범죄를 예약하는 것>
'묻지마 범죄'에 대한 대책으로 범죄자에 대한 단호하고 엄격한 처벌이 강조되기도 한다. 강력범죄에 대해서는 강한 처벌을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미 현실 규범에 대한 검증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에게 더 강력한 처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고 해서 이들이 자신의 마음과 행동을 조절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실업문제를 방치한 채로 '묻지마 범죄'에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하는 것은 모기들이 알을 낳는 웅덩이는 그대로 놔두고 눈에 띄는 모기만 열심히 잡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모기를 열심히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웅덩이를 메워야 한다.
'묻지마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은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실업 문제의 해결은 한 사회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인 것이다.
전우영(충남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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