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칼럼] 없음으로 무한을 표현하다

  • 오피니언
  • 사이언스칼럼

[사이언스칼럼] 없음으로 무한을 표현하다

윤강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부산의료수학센터장

  • 승인 2026-03-26 17:16
  • 신문게재 2026-03-27 18면
  • 임효인 기자임효인 기자
clip20260325175012
윤강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부산의료수학센터장
저는 KAIST에서 수학전공으로 박사를 취득했고 국내 유일의 수학전문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수학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초등학교 때에는 수학에 대해서 많은 어려움을 지녔습니다. 지금도 생각나는 어려워했던 문제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자릿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721를 7로 나누면 13만 나오고 정답인 103에서 1과 3사이에 왜 갑자기 0이 나오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신기함은 자릿수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야 사라졌습니다.

모든 발명품들이 그러하듯이 발명되고 나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발명 이전에는 까다롭고 어려운 문제로 여겨집니다. 자릿수의 개념을 적용한 현재의 표기법도 그 대표적인 예 중 하나입니다. 아니 현재 과학기술의 진보는 0을 통한 수의 표기로부터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자릿수의 개념이 없던 시기에 동서양은 숫자를 10단위를 기준으로 표기했습니다. 서양에서는 5단위를 보조단위로 해 1과 5의 배수를 나타내는 알파벳기호의 조합으로 표현했습니다. I(1), V(5), X(10), L(50), C(100), D(500), M(1000) 등과 같이 단위의 새로운 수들에 대해서 새로운 알파벳을 부여했으며 이들을 기준으로 1, 2, 3, 4를 I, II, III, IV로 6, 7, 8, 9는 V1, VII, VIII, IX로 표기했는데 이는 6 (5+1)은 VI, 4은 IV, 15은 VX (10+5)로 유추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26년은 위의 형식에 따라 MMXXVI(2000+20+5+1)으로 표기됩니다. 동양 또한 10단위로 1(一), 10(十), 100(百), 1000(千), 10000(萬) 등으로 한자를 지정하고 이를 기준으로 수들을 표기했으며 2026은 二千二十六(2000+20+6)으로 나타냈습니다.

이렇듯 0과 자릿수의 개념이 없던 시기에는 점점 더 큰 수들을 표기하기에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문자들을 만들어야만 했으며, 이 표기법으로 덧셈, 뺄셈 등을 계산하기에는 그 숫자들과 결괏값들의 연관성이 쉽게 연상되거나 유추되지 않아 숫자가 커질수록 그만큼 복잡한 문제가 되어갔습니다.

0의 개념이 없던 시대의 사고의 흔적들이 아직도 우리 생활에는 건물의 층수와 연도를 100단위로 표기하는 세기 등에 남아 있습니다. 첫 번째로 지상에 존재하는 건물은 당연히 1층부터 시작하게 돼, 건물의 층수는 1층, 2층, 3층 등으로 올라가며 1층 아래는 0층이 아닌 지하 1층, 지하 2층 등으로 표기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을 20세기 (20th century)가 아닌 21세기라고 표현하는 것도 고대 로마에서는 '0'이라는 개념이 없었기에 서기(AD)와 기원전(BC)을 서기 1년을 기점으로 시간을 나누었으며, 처음 (AD) 1년에서 100년까지를 1세기, 101년~200년을 2세기로 표기했으며 AD 1년의 전년도는 BC 1년으로 표기했으며 그 표기법이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런 표기의 근본적인 이유는 '0'은 없음을 뜻하며, 존재하는 것은 1부터 시작하여 표기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류의 역사에 '0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없음'을 표기하기 위해서 고안된 숫자 '0'의 등장은 산술은 물론 수학을 바탕으로 하는 자연과학의 발전에 엄청난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수학에서의 '0'은 어떠한 숫자도 0을 더하면 그 숫자 자신이 되게 하는 수로서의 기능(항등원)과 자릿수에서 없음을 뜻하는 수입니다. 즉 103에서 1과 3 사이의 0은 '십의 자릿수는 없다'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

이를 활용하면 2026을 로마 숫자 MMXXVI로 쓰는 것보다 0을 활용한 아라비아 숫자가 훨씬 간결해지며 새로운 알파벳이나 문자의 도움이 없이 숫자만 지속적으로 첨가해 점점 커지는 수들도 아주 편리하게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리고 0의 등장으로 음수(-)의 개념이 가능해졌고, 현대 컴퓨터의 근간인 이진법(0과 1)도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없음'을 표기하기 위해 고안된 숫자 '0'은 '있음'의 증명에 활용돼 이제 어떠한 수들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됐으며, 무한한 연산의 자유와 함께 현대 디지털 문명을 탄생시킨 반전의 열쇠가 됐습니다. 윤강준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부산의료수학센터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2. 여고·등산로서 상습 신체 노출… 50대 남성 검거
  3. [대전노인신문] 대전 어르신들 체육으로 하나됐다…제25회 어르신 체육대회 성료
  4. 원자력연, 원전 방사능 폐수지 굳혀서 처분기술 개발…특허로 이어져
  5. [대전노인신문] 詩 한 편 편지 한 장
  1. [대전노인신문] 대전 대덕구 목상동 새마을부녀회, '어르신 효 잔치' 개최
  2. 집주인 모자 찾아가 흉기 휘두르고 불 지른 70대 체포
  3. [날씨] 추석 연휴 충청권 구름 많아…추석 밤부터 약한 비
  4. [대전노인신문] "추석 명절 이야기"
  5.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헤드라인 뉴스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민족 최대 명절인 추석을 맞아 거리를 걷다 보면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명절 풍경을 실감하게 된다. 온라인 장보기와 간편식, 모바일 선물 등이 일상화된 지금과 달리 약 20년 전 추석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불편했고 느린 것만은 확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추석 풍경이 달라진 것은 많지만 추석의 의미는 변하지 않았다는 건 확실하다. 가족과 친지가 직접 만나 웃음과 정겨움을 나누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전 추석의 모습은 지금과는 얼마나 달랐는지 사진으로 살펴보자. 먼저 고향을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열차표 예매가 정해진..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상권 침체는 없다. 우리는 맛으로 승부하고, 고객들을 불러 모은다."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통하는 세종특별자치시에도 맛집들이 건재하고 있다. 세종사랑 맛집 98곳이 이름을 올리며, 읍면동 맛집 지도를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다. (재)세종시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박영국)은 작년부터 시민 추천과 전문가 평가를 거쳐 선정한 '세종사랑 맛집'을 총 98개소로 확대했다. 작년 11월 44개소에 이어 이번에 신규 선정한 맛집은 모두 54개다. 최근 이름을 올린 맛집 54개소는 신도심 33개소, 구도심 21개소로 구성됐고, 한식과 중식, 일식, 카..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오상욱(대전시청)은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쿄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로 개인전 결승에서 선천펑(중국)을 15대 1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선수단 8번째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펜싱에서는 전날 여자 에페 개인전의 송세라(부산시청)에 이어 두 번째 '금빛 찌르기'가 펼쳐졌다. 오상욱은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