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삶 가까이 와있는 웰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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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삶 가까이 와있는 웰다잉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

  • 승인 2026-05-18 16:33
  • 수정 2026-05-18 22:14
  • 신문게재 2026-05-19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1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
황금연휴라고 은근히 기대하며 맞이한 5월이 내게는 호사였나보다. 모처럼 제정된 노동절 공휴일이라고 마음 편히 타지를 다녀온 것이 화근이었다. 전날 어머니가 감기 기운이 있으셔서 동네 병원에 다녀왔으니 잘 살펴보라는 요양보호사의 말이 있었는데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이다. 피곤한 마음에 집으로 곧장 귀가할까 하다가 늦게 엄마 집으로 향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화장실 바닥에 쓰러진 엄마를 발견했다. 순간 너무 놀라 비명부터 질렀다. 축 늘어진 엄마를 부둥켜안고 겨우겨우 일으켜 세우니 기우뚱 서로 휘청거린다. 등줄기에 진땀이 훅 지나간다. 얼마나 혼자 그러고 계셨던 걸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회식까지 하고 느긋하게 온 것이 후회막심이 된다. "엄마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언제부터 그러고 있던 거야?" 물어도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대답을 제대로 못 하신다. 겨우 물 한 모금 드시더니 이내 기진맥진 곤한 잠에 빠져든다. 아무래도 집에 갈 일이 아니다 싶어 바닥에 자리를 폈다.

나도 모르게 깜박 피곤한 잠에 들었다가 잠깐 눈을 뜨니 새벽이다. 꼼짝 안 하고 주무시는 모양새가 다행이다 싶었는데 웬걸, 곁으로 가보니 몸은 뜨겁고 온통 땀투성이다. 그냥 주무시는 게 아닌 듯싶었다. 급히 119를 불러 성모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늘 다니는 병원이라 엄마의 상태를 신속하게 체크하고 CT 검사를 한 결과 폐렴이었다. 곧바로 입원 수속을 하란다. 응급실 의사는 환자가 고령이라 만약의 경우 패혈증이 오면 임종을 볼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순간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이 든 사람에게 폐렴이 얼마나 위태로운 병인지 알기에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만약에 그런 일을 당한다면 나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순간 마음이 아뜩해졌다. 연휴가 지나자마자 일이 산적해 있는데 어쩌나, 동생과 의논한 것도 없는데 아버지 묘소는 서울에 있는데, 엄마는 그러면 어찌해야 하나, 갑자기 머리가 핑그르르 갈 바를 모르는 것처럼 멍해졌다. 우리는 오늘을 살 뿐 아무것도 예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때그때 걱정거리가 생기면 미리 앞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지나야만 한다.

엄마는 입원 후 이틀 정도 고열을 동반한 통증을 호소하면서 섬망 증세가 심했지만, 잘 견뎌내고 열하루 만에 무사히 퇴원하셨다. 퇴원 후 엄마는 밤에 혼자 생활하는 것이 불안하니 당분간 부천에 사는 동생이 모시기로 했다. 엄마는 아들네에서 더 열심히 약과 식사를 챙기고 계신다. 전화 너머로 "좀 어때?"하고 물으면 "그만그만하지 뭐" 하신다. 전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 한마디에 괜히 마음이 놓인다. 단출한 안부로도 충분한 사랑이 있다는 것을, 나이가 들수록 더 절실히 배우게 된다. 앞으로 더 힘들어지면 요양원을 알아보자는 무거운 대화도 자연스럽게 오고 간다. 내 집이 삶의 전부인 엄마에게는 이보다 더 큰 결심은 없다.

평소에 엄마와 대화하다가 죽음 준비에 대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때가 있다. 엄마는 무덤덤하게 듣는 듯하다가도 화제를 슬쩍 돌리면서 TV 화면 속으로 눈길을 보낸다. "자다가 죽으면 얼마나 좋겠냐" 한숨이라도 내쉬면 왠지 내 마음 한구석이 민망해진다. 마치 뭔가를 재촉하는 듯한, 불효녀가 되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서 못내 불편해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웰다잉 단체에서 활동하다 보니 내겐 죽음이라는 용어가 일상화되었지만 엄마에게는 두려움 자체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90세라는 시간의 무게가 주는 감정을 실감하지 못하기에 말이다. 마치 마지막 불꽃의 간절함 같은 걸까.

누구라도 단 한 번뿐인 인생에서 언젠가 마주하게 될 죽음을 인식한다면 자신의 삶을 함부로 지나치지 못할 것이다. 나에게 웰다잉은 죽음 준비뿐만 아니라 오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가장 인간적인 질문으로 다가온다. 몸을 돌보고 마음을 살피며, 사랑하는 사람의 안부를 묻는 존엄한 삶의 실천을 생각하게 한다. 메멘토 모리! 너의 죽음을 기억하라는 말은 오늘을 더 의미 있게 살아내기 위한 다짐이 되고 있다. /홍인숙 대전웰다잉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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