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총성과 함성 사이, 북중미 월드컵이 던지는 평화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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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논단] 총성과 함성 사이, 북중미 월드컵이 던지는 평화의 패러독스

정문현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 승인 2026-05-17 17:16
  • 신문게재 2026-05-18 18면
  • 송익준 기자송익준 기자
정문현 교수
정문현 교수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격렬한 비군사적 경쟁인 '스포츠'와 인류사에 가장 참혹한 파괴 행위인 '전쟁'은 묘하게도 닮아있다. 전술을 짜고, 영토(그라운드)를 점령하며, 국기를 가슴에 품고 전장으로 향하는 전사들의 모습은 축구장 위 선수들의 투지와 오버랩 된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존재한다. 전쟁의 끝은 파멸과 증오이지만, 스포츠의 끝은 악수와 존중이라는 점이다.

다가오는 2026년 6월, 전 세계는 역대 최대 규모인 48개국이 참가하는 '2026 FIFA 북미 월드컵'의 화려한 막을 마주하게 된다. 캐나다, 멕시코, 미국이 공동 개최하는 이번 대회는 "우리는 하나(We Are 26)"라는 슬로건 아래 축구라는 단 하나의 공으로 지구촌을 묶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화려한 조명,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의 개막식 공연, 초록빛 그라운드 위를 누비는 슈퍼스타들의 몸짓에 전 세계 팬들의 함성이 북미 대륙을 뒤덮을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축제 뒤편에 드리운 지구촌의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경기장을 채울 뜨거운 함성 이면에는,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과 총성이 교차하고 있다. 동유럽을 장기적인 소모전으로 몰아넣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여전히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가자지구에서 시작되어 중동 전역과 이란으로까지 확산된 중동 분쟁의 불길은 매일 수많은 민간인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다. 미얀마의 내전과 아프리카 대륙의 무력 충돌 역시 현재진행형이다.

인류는 지금 '축구공이 주는 위안'과 '지정학적 파멸의 공포'라는 극단적인 패러독스 속에 살고 있다. 스포츠가 전쟁의 참화를 잠시나마 멈추거나, 반대로 비극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던 사례는 역사 속에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인 순간은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크리스마스 정전이다. 벨기에 플랑드르 전선에서 대치하던 영국군과 독일군은 크리스마스 하루 동안 총을 내려놓고 얼어붙은 무인 지대(No Man's Land)에서 함께 축구를 즐겼다. 비록 짧은 순간이었지만 비인간적인 참호전 속에서 '인간성'을 회복시켜 준 것은 다름 아닌 축구공 하나였다.

과거 코트디부아르의 축구 영웅 디디에 드로그바가 월드컵 본선 진출 확정 후 TV 카메라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전쟁을 멈춰달라"고 호소해 5년간 이어지던 내전을 일시 중단시켰던 기적 같은 순간도 존재한다. 이처럼 스포츠는 때로 정치와 총칼보다 더 강력한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해 왔다.

그렇다면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지는 2026 북미 월드컵은 전쟁에 신음하는 현대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질 수 있을까? 이번 월드컵은 참가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과 '포용'을 강조하고 있다. 전장 속에서 고통받는 국가의 선수들도 예선을 거쳐 이 꿈의 무대에 올랐다. 폭격으로 홈경기장을 잃고 제3국을 전전하며 훈련해야 했던 국가의 선수들에게 월드컵 본선 무대는 단순한 스포츠 이벤트를 넘어, 자신들의 국가와 민족이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세계에 알리는 처절한 생존 신고와 같다. 그들이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것 자체가 전쟁에 대한 거대한 비폭력 저항이다. 우리는 故(고) 손기정 선수를 생각해 볼 수 있다.

남아공의 인종차별 정책(아파르트헤이트)을 종식하는 과정에서 스포츠를 통합의 도구로 삼았던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스포츠의 진정한 가치는 갈등의 경계를 허무는 데 있다. 2026 북미 월드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마냥 유쾌할 수만은 없는 이유는,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세계의 절반이 화염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기에 우리는 역설적으로 축구에 더 열광하고, 그 안에서 희망을 찾으려 한다. 경기장에서 흘리는 선수들의 땀방울은 전장의 피눈물을 닦아주는 위로가 되어야 하며, 전 세계 팬들이 외치는 함성은 전장의 포성을 압도하는 평화의 연대가가 되어야 한다.

90분간의 치열한 전쟁이 끝난 후, 서로의 유니폼을 교환하며 포옹하는 선수들의 모습에서 인류는 공존의 방식을 배운다.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지만 서로의 존재를 파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스포츠가 전쟁에 던지는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다. 이번 월드컵이 단순한 상업적 축제를 넘어, 상처 입은 지구촌에 잠시나마 총성을 멈추게 하는 '현대판 크리스마스 정전'의 기적을 가져다주기를 간절히 기대해 본다.

/정문현 충남대 스포츠과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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