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딜룰루(Delulu)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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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딜룰루(Delulu) 사회

원구환(한남대 학사부총장)

  • 승인 2026-08-18 17:02
  • 신문게재 2026-08-19 18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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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구환 한남대 학사부총장
사람은 누구나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내일은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믿음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곤 한다. 그러나 희망과 망상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최근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는 '딜룰루(Delulu)'는 바로 그 경계를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다. 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더 강하게 믿는 태도를 뜻하는 이 표현은 이제 인터넷 유행어를 넘어 우리 사회를 설명하는 하나의 시대정신이 되고 있다. 원래는 '망상(Delusion)'에서 나온 말로, 자신이 믿고 싶은 이야기를 현실처럼 받아들이는 태도를 뜻한다. 처음에는 팬덤 문화에서 장난스럽게 쓰였지만, 이제는 사회문화 전반을 설명하는 시대의 키워드가 되고 있다.

딜룰루는 희망과 망상이라는 양면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향한 도전도 처음에는 누군가의 망상처럼 보였을지 모른다. 인류의 많은 혁신은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에서 시작되었다. 라이트 형제는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꿈을 현실로 만들었고, 토머스 에디슨은 수천 번의 실패 끝에 전구를 완성했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국제대회에서 약체로 평가받던 팀이 끝까지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을 잃지 않고 강팀을 꺾는 '언더독(underdog) 신화'는 스포츠의 가장 큰 감동이다. 기록은 열세였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았던 선수들의 믿음은 실제 경기력을 바꾸기도 한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긍정적 자기 확신은 건강한 딜룰루의 모습이다.

팬덤 문화 역시 긍정적인 면이 있다. 팬들은 자신이 응원하는 가수나 배우를 통해 위로를 얻고, 기부와 봉사 활동을 함께 펼치며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 낸다. 공연장 주변 환경 정화, 소외계층 지원, 재난 성금 모금 등 팬덤이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믿음이 공동체를 위한 행동으로 이어질 때 딜룰루는 희망의 언어가 된다. 동양 고전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다. 중국 고사 '우공이산(愚公移山)'은 어리석어 보일 만큼 꾸준한 믿음이 결국 산을 옮긴다는 이야기다. 이런 점에서 건강한 딜룰루는 자기효능감과 도전 정신을 키우는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딜룰루 현상도 쉽게 발견된다. 정치를 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의 잘못은 외면하고, 상대 진영의 실수는 크게 확대한다. 사실보다 진영이 먼저이고, 논리보다 감정이 앞선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것처럼 해석하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다. 알고리즘은 자신이 보고 싶은 정보만 반복해서 보여주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자신의 믿음을 더욱 확신하게 된다. 결국 사회는 대화보다 대립이, 설득보다 확신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해 간다.

경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검증되지 않은 투자 정보에 열광하거나, 근거 없는 낙관론에 기대어 무리한 선택을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문화 역시 딜룰루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화려한 일상과 성공한 삶이 넘쳐난다. 사람들은 타인의 편집된 삶을 보며 그것을 현실이라고 믿고, 자신의 삶은 실패한 것처럼 느낀다. 반대로 자신도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며 또 다른 환상을 만들어 낸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지만, 정작 마음속에는 불안과 비교 의식이 깊어지는 역설이 나타난다. 현실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한 시대, 우리는 서로의 진짜 삶보다 만들어진 삶을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딜룰루는 결국 두 얼굴을 가진 시대의 언어다. 현실을 뛰어넘는 상상은 혁신과 도전의 출발점이 되지만, 현실을 외면하는 착각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개인을 위험에 빠뜨린다. AI를 활용하되 맹신하지 않고, 팬덤을 즐기되 타인을 존중하며, 정치에서는 사실을 확인하고, 투자에서는 냉정함을 잃지 않고, 스포츠에서는 끝까지 희망을 품는 것. 이것이 딜룰루를 건강한 에너지로 바꾸는 길이다. 희망은 필요하지만, 희망은 진실 위에 세워질 때 비로소 미래를 바꾸는 힘이 된다. 믿고 싶은 현실이 아니라 마주해야 할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 그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지혜일지도 모른다.

/원구환(한남대 학사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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