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훈이 보고있다" 고3교실 무한경쟁

  • 사회/교육
  • 교육/시험

"급훈이 보고있다" 고3교실 무한경쟁

과거 '성실·근면' 인성강조 단골메뉴… 입시위주 교육으로 경쟁일색 바뀌어 학급 교육목표·덕목 설정 의미 퇴색… 공부전념vs인격 악영향 찬반의견도

  • 승인 2016-06-08 13:03
  • 신문게재 2016-06-09 12면
  • 성소연 기자성소연 기자

적막감이 흐르는 고3 교실 정면에 급훈이 눈에 띈다. '우리 엄마도 계모임에서 말 좀 하자' 꾸벅꾸벅 침 흘리며 졸다가도 저 문구 한 번 보고 마음을 다잡는다는 학생들. 각자 책상에는 이보다 더 심장이 쫄깃해지는 문구가 붙어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 하지만 연봉은 성적순이다'는 현실반영형부터 '아버지는 망하셨지~ 인생을 즐기다~'는 패러디형까지. 과거 '할 수 있다', '성실한 사람이 되자' 등의 급훈이 요새 업그레이드돼 재기발랄함을 넘어 절절함마저 묻어난다. 어떤 이는 이러한 급훈이 오로지 대학 입시 준비에 내몰린 고3학생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마냥 웃을일만은 아니라고 한다. 무한경쟁의 현주소를 반영한 '고3 급훈'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시대 흐름에 따라 급훈도 변했다=80년대는 인성을 강조한 '성실, 근면, 정직, 슬기, 질서' 등이 급훈의 단골 메뉴였다면 90년대 말부터 '고3=입시' 성격이 강해지면서 현실을 반영한 다양한 급훈이 쏟아져 나왔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덕선이네 고3 교실에 붙어있는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말이다' 급훈이 전파를 탔다.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 외에 '최선을 다하여 최고가 되자',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계획보다 중요한 건 실천' 등의 문구가 교실에 자리했다.

2000년대에 진입하면서 급훈은 경쟁 일색으로 바뀌었다. 입시 위주의 교육이 강화되면서 모든 급훈에 '좋은 대학을 가야만 한다'는 속뜻이 내포돼 있다. 문구도 자극적이다.

'죽도록 공부해도 죽지 않는다', '네 성적에 잠이 오냐', '개같이 공부해서 정승같이 놀자' 등이 그 예다. '재수없다'는 수능을 다시 한 번 준비하는 '재수'(再修) 를 하지 않고 한 번에 대학에 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2호선 타자'는 서울지하철 2호선에 서울대, 연세대, 한양대, 이화여대 등 서울의 주요 대학이 있는 것에 착안한 급훈으로 상위권 대학은 서울에 있다는 '대학 서열주의'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관찰형부터 협박형까지, 유형별 급훈=급훈의 유형은 크게 '관찰형', '패러디형', '협박형' '직설형'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 입시경쟁으로 인한 세태를 반영했다는 것이다.

우선 '관찰형' 급훈에는 '담임이 뿔났다', 'CCTV 작동중', '쟤 깨워','엄마가 보고 있다' '칠판이 남자다', '칠판을 원빈처럼, 교과서를 강동원처럼' 문구에 교사나 가족, 좋아하는 연예인의 사진을 붙여놓는 게 특징이다.

'패러디형'은 가요나 드라마, 영화 제목 등을 바꾼 유형으로 온라인상 유행어인 '그러라고 사준 컴퓨터가 아닐텐데'를'그러라고 보낸 학교가 아닐텐데'로 패러디 했다.

또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를 '지금 (대학에) 다니러 갑니다'로 바꿔 눈길을 끈다. '네 얼굴에 공부 못하면 NO답', '그 얼굴에 공부까지 못하면 안습이다',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 외모(남편의 직업이)가 바뀐다', '공주되어 왕자낚자',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등 협박형 급훈은 학생들의 경쟁의식을 더욱 부추긴다.

자신의 경제·사회적 조건과 위치에 따라 아내나 남편의 등급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 밖에 해석이 필요한 '4행시 급훈'도 있다.

한우갈비는 '한마음으로 우리는 갈수록 비상한다', 우주정복은 '우리는 주마다 정석을 3번 복습한다'는 뜻이다.

'직설형' 급훈으로는 '수능 대박', '합격증 휘날리며', '올인' 등이 있다.

급훈이란 학급에서 교육 목표로 정한 덕목이다. 보통 담임교사가 급훈을 정했지만 요즘은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정한다.

이 과정에서 일부 급훈은 진지함보다는 성별과 직업, 학력 등을 희화화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자극제가 된다는 한편, 비교육적인 문구로 인격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고3, 아름다운 미래를 설계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인만큼 미래지향적인 급훈을 만드는 노력도 필요한 이유다.

성소연 기자 daisy823@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세종시, '영화·드라마' 촬영 명소로 간다
  2. 아산시 어의정로 교차점 광장 준공
  3.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①대전 전통산업과 특화거리의 탄생과 번영…그리고 존폐의 기로
  4. 두 자녀 태우고 만취운전 30대 사고까지…여름철 엄격 단속 필요
  5. K리그 휴식기, 대전 서포터즈는 '청소' 중?… "승리의 기운을 줍습니다"
  1. 창업기업 74곳에 최대 4억원 '대전 창업기업 들썩'
  2.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3.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4. 천문연구원, 희귀 왜소신성 발견…공전주기 짧아 중요 연구대상
  5. 대전 보건소 인력부족에 '허덕'…전국 광역시 중 가장 적어 보건의료 '빨간불'

헤드라인 뉴스


삼전닉스 호남 투자 가시화…충청은 생색내기용 전락

삼전닉스 호남 투자 가시화…충청은 생색내기용 전락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광주·전남에 수백조원에 달하는 반도체 생산기지 구축에 나설 것이 유력해지면서 충청권은 곁다리 투자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충청권의 경우 두 기업이 막대한 고용창출 등이 기대되는 대규모 생산 라인이 아닌 AI데이터센터 건립으로 기우는 모양새인데 이럴 경우 지역 경제 파급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코스피 시총 투톱으로 글로벌 메모리 업체인 두 기업이 이재명 정부의 강력한 지역균형 발전 정책에 부응하려면 충청권에도 생색내기 용이 아닌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23일 정치권과..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 2030년 하반기로 늦어진다"
"대전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 2030년 하반기로 늦어진다"

대전도시철도 2호선 트램 개통이 2030년 하반기로 지연된다고 대전시가 공식 인정했다. 당초 2028년 개통보다 2년여가 더 늦어지는 것으로, 주요 공정 리스크와 차량 시운전 계획 반영 등을 이유로 꼽았다. 유득원 대전시 행정부시장은 23일 대전시청 기자회견장에서 도시철도 2호선 트램 관련 브리핑을 갖고 "향후 통합공정 계획 수립을 통해 개통 일정 등을 최종 확정할 것"이라면서 개통 지연을 공식화 했다. 도시철도 2호선 트램은 총연장 38.8㎞, 정거장 45곳, 차량기지 1곳 규모로, 2024년 12월 착공해 현재 본선 14개 전..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
[대전 전통산업 특화거리의 새로운 미래를 그리다] ② ‘생산성을 넘어 브랜딩을 창출하라’

대전 중구 중촌동 맞춤패션거리와 정동 인쇄거리, 원동 한복거리 등 과거 대전을 상징하던 유서 깊은 산업 자산들이 중대한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자구책 마련을 위해 붙여진 특화거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급격한 산업 구조 변화와 유통 시스템 현대화 속에서 경쟁력을 잃어간 채 존폐의 기로에 서면서다. '생산의 효율화'란 거대한 산업 발전 흐름이 오늘날 현대 사회의 모든 가치를 장악하고 있지만, 지역의 고유한 숨결과 정체성이 담긴 전통산업의 흔적이 미래세대에 적절히 계승돼야 마땅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낡은 산업의 미래를 새..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문창동 화재피해 복구 돕는 손길 문창동 화재피해 복구 돕는 손길

  •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월드컵 응원 고조 ‘대한민국을 응원합니다’…월드컵 응원 고조

  •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폐현수막의 변신은 ‘무죄’

  •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 우송대 응급구조학과 학생들, ‘실무능력 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