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책] 악은 어떻게 존재하고 점화되는가

  • 문화
  • 문화/출판

[맛있는 책] 악은 어떻게 존재하고 점화되는가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2016

  • 승인 2016-08-11 14:15
  • 신문게재 2016-08-12 12면
  • 이현경 한밭도서관 사서이현경 한밭도서관 사서
[사서들의 맛있는 책읽기]

▲ 이현경 한밭도서관 사서
▲ 이현경 한밭도서관 사서
그녀가 돌아왔다. 펴내는 작품마다 압도적인 서사와 폭발적인 이야기의 힘으로 독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온 작가 정유정. '7년의 밤'과 '28'의 작가. 3년 만에 '종의 기원'이라는 책으로 돌아왔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생물의 진화론을 밝혀냈다면 정유정의 '종의 기원'은 한 인간 속에 감춰져 있던 악의 진화를 보여준다.

▲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2016
▲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은행나무, 2016
사람이란 본래 선한 존재일까? 악한 존재일까? 알려진 바에 의하면 인류의 2~3퍼센트가량이 사이코패스라고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유진은 그중에서도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정신의학자들 사이에선 '프레데터'라 부른다는 '순수 악인'이다. 비둘기의 세상에 태어난 매이고, 피식자로 길러지지만 포식자로 성장한다. 평범했던 한 청년이 살인자로 태어나는 악인의 탄생기를 '종의 기원'은 다루고 있다.

소설 속에서 유진은 피비린내로 깨어난다. 문밖을 나온 유진은 부엌에서 예리한 흉기로 살해된 엄마를 발견한다. 피범벅이 된 옷과 주머니에서 나온 면도칼, 여러 정황증거가 유진을 살해범이라고 지목한다. 그렇지만 유신에게는 아무런 기억이 남아 있지 않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 속에서 유진은 망각의 늪으로 빠져버린 지난밤의 기억을 되살려낸다.

유진은 며칠째 약을 먹지 않았다. 발작억제제를 먹으면 언제나 끔찍한 두통과 이명과 무력증이 몰려왔다. 약을 끊은 덕분에 온몸이 가벼워져 밤 운동을 나갔다. 빗속에서 여자를 보았던 것도 같다. 발작이 일어날 것 같아서 서둘렀다. 자신을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도 기억처럼 들려왔다.

지난밤 한 여자를 뒤쫓다가 살해했다. 그 현장을 엄마가 보았고, 집에 돌아와 엄마와 다툼이 있었다. 엄마를 말리려다 살해하게 되었다. 이제 곧 해진이 집에 돌아올 테고, 이모도 엄마를 찾고 있다. 살해현장을 감추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다가 엄마의 노트를 발견하고 16년 전 사건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엄마의 노트에는 유진이 10살 때 있었던 사고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가족여행으로 떠난 바닷가에서 유진의 형과 아버지가 익사사고를 당했다. 이모는 그날 일이 우발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 사이코패스이자 포식자로서 유진이 처음으로 '해치운 짓'이라고 했다. 아이가 무탈하고 무해한 존재로 평범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생 약을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유진이 지금껏 간질약이라고 알고 먹었던 약이다.

유진은 엄마와 이모가 자신에 대해 왜 그렇게 심하게 억압했는지를 알게 된다. 그토록 원하던 수영도 금지했고, 약 복용을 유난스럽게 체크했던 것, 밤 9시 전 귀가와 외박, 음주 금지 등등. 억압에서 풀려난 유진은 점차 사이코패스로서 각성해 간다.

'종의 기원'은 묻지 마 범죄와 존속 살해 같은 잔인한 범죄들을 다루고 있다. 이런 끔찍한 책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끝까지 놓을 수가 없었다. 책을 덮고 난 후, 수많은 질문이 마음을 짓누른다.

유진의 엄마가 조금 더 아이를 믿어주었다면, 7살 아이의 그림을 보고 이모가 잠정적 범죄자라고 낙인찍지 않았더라면, 유진이 수영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줬다면, 약을 먹이지 않았더라면, 혹은 솔직하게 무슨 약인지 알려줬더라면, 해진이 조금만 더 눈치가 있었다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유진은 얼핏 '28'의 동해와 비슷해 보인다. 둘은 모두 부모의 학대와 차별 속에서 사이코패스로 성장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작가는 유진을 일인칭으로 그려내고 있다. 독자들은 소설 속 화자에게 동일시되고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악인에게 공감하고 연민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라니. 고약한 기분마저 든다. 그러나 극 중 유진에게 복잡한 감정과 연민을 느낀다는 건 사이코패스에게 속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사이코패스는 보통사람들과 다르게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인식한다고 한다. 공감능력 부족과 죄의식 결여, 지나친 자기중심성 등은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그들은 외계에서 뚝 떨어진 생명체처럼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종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내면에도 어느 정도 어두운 본성이 숨겨져 있다. 내면의 악을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해야 타인의 악, 포식자의 악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이것이 작가 정유정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일 것이다.

이현경 한밭도서관 사서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칠곡 왜관철교, 주민들 쉼터 역할
  2. 대전 중수청, 세종 임시 개청 후 옛 대전세무서 부지로 이전 추진
  3. 대천해수욕장, 126명 안전요원 총출동
  4. 학교 믿고 입주했는데…입주민 "교육청 중재 나서라"
  5. [르포] 선풍기도 없는 40.2도 정산부스… 폭염 속 공영주차장 근로자
  1. 부산 동구, 북항 해양레저에 시민 1000명 모였다
  2. 돌아오는 온통대전…자치구 지역화폐와 연계·통합 가능할까
  3. "서산 한우 관광 메카 만든다", 서산 운산 농어촌관광휴양단지 조성 본격 시동
  4. [교육부 하반기 업무계획] 국가인재위원회 신설… 거점국립대 3곳 성장엔진·AI 분야 패키지 지원
  5. [르포] 대청호 녹조 시작점 추소리 가보니…걷어내도 짙은 초록빛

헤드라인 뉴스


[르포] 대청호 녹조 시작점 추소리 가보니…걷어내도 짙은 초록빛

[르포] 대청호 녹조 시작점 추소리 가보니…걷어내도 짙은 초록빛

5일 오전 11시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대청호 수역. 수면은 평소 물빛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초록색으로 변해 있었다. 녹조가 뒤덮은 물 위로 오리들이 유유히 지나갔고 물가에는 각종 부유물이 떠다녔다. 수변 주변으로는 수많은 파리가 날아들었다. 플라스틱 컵으로 수면의 물을 떠보니 연한 초록빛을 띠었다. 물을 다시 쏟아낸 뒤에도 컵 안쪽에는 녹색 흔적이 남았다. 추소리 수역은 매년 여름이면 녹조가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곳이다. 이날도 작업자들이 녹조방제선에 올라 수면을 뒤덮은 녹조를 걷어내고 있었다. 방제 작업은 하루 두..

`우린 비급여만` 건강보험 미청구 의료기관 대전 65곳 충남 31곳
'우린 비급여만' 건강보험 미청구 의료기관 대전 65곳 충남 31곳

건강보험 요양급여를 단 한 차례도 청구하지 않고 비급여 진료만 하는 이른바 '건보 청구 0원 의료기관'이 대전과 충남에서 10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비급여 진료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의료기관은 대전 서구와 충남 천안에 집중되어 있고, 성형외과보다 일반의에서 이러한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건강보험 미청구 의료기관'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25년 기준 대전 의원급 의료기관 65곳과 충남 31곳이 연중 건강보험을 한 차례도 청구하지 않은 것으로..

학교 믿고 입주했는데…입주민 "교육청 중재 나서라"
학교 믿고 입주했는데…입주민 "교육청 중재 나서라"

학교 신설 대체 이전을 전제로 추진된 한화포레나 유성 아파트 단지 내 초등학교 기부채납 공사가 중단되면서 입주민들의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학교 개교를 믿고 입주를 결정한 입주민들은 5일 대전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열고 공사 재개와 개교 일정 정상화를 촉구하며 교육청의 적극적인 중재를 요구했다. 한화포레나 유성 입주민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학교 공사 중단으로 학생들의 학습권과 통학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며 "교육청과 시행사는 더이상 책임을 미루지 말고 학교를 정상적으로 개교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충청권 식수원을 보호하라’…대청호 녹조 제거하는 방제선

  •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전문 간호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겠습니다’

  •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폭염에 도로 위 피어오른 ‘아지랑이’

  •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 ‘폭염에도 일을 쉴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