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여행]곡성, 영화 속 외지인도 악마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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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여행]곡성, 영화 속 외지인도 악마도 없어요

증기기관차 타고 창밖을 보면 섬진강 따라 추억이 흐르고 흙내음과 산바람이 마음 다독여주니 모두가 길따라 가족처럼 이어진 듯해

  • 승인 2016-08-11 20:24
  • 신문게재 2016-08-12 9면
  • 박희준 기자박희준 기자
[주말여행] 곡성 섬진강 기차마을·심청 이야기 마을

초록잎의 발랄함과 갈맷빛 사철나무의 들뜨지 않는 엄정함에 감탄할 수 있다면 우리 곡성에 올 자격이 충분하다. 유리창에 낀 성에를 지워가며 그리웠던 사람들을 그려본 사람이라면 곡성에 와야 한다. (중략) 행여 '영화 곡성(哭聲)'을 보고 공포가 주는 즐거움을 느낀 분이라면 꼭 '우리 곡성(谷城)'에 오셔서 따뜻함이 주는 즐거움 한자락이라도 담아갔으면 좋겠다.

- 유근기 곡성군수 「'곡성(哭聲)'과 다른 '곡성(谷城)' 이야기」 전남일보 2016년 4월 22일자 기고문 일부

곡성(哭聲)이 잠잠하다. 곡성은 680만 관객을 동원하며 영화계를 강타했고 수많은 의문을 남기며 막을 내렸다. 카페나 블로그에선 아직도 여러 해석이 갈릴 정도로 뜨거웠던 영화다. 글을 읽다 보니 실제 곡성(谷城)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SNS에서 이슈가 된 곡성군수의 기고문은 발길을 저절로 곡성으로 이끌었다. 곡성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애정 어린 시선들. '곡소리'가 아닌 '곡식이 익어가는 소리'가 잔잔한, 곡성 땅이 일궈낸 들판의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곡성으로 가는 길은 휴가철임에도 소란스럽지 않았다. 고속도로를 빠져나오자 스크린 너머 곡성이 눈앞에 펼쳐졌다.

▲기차의 안식처=영화 곡성을 본 사람이라면 초입부터 반가움을 감추지 못할 것이다. 메타세콰이어길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는 키 큰 나무가 제일 먼저 반겨주기 때문이다. 이곳은 영화 첫 장면에 등장한 곳이기도 하다. 나무의 초록과 들판의 초록이 겹쳐져 싱그러움을 더했다. 얼마 안가 새 옷으로 갈아입은 곡성역이 보였다. 1999년 전라선 선로 이설에 따라 역사를 이전해 옛 곡성역은 폐역이 됐다고 한다. 내버려 두었다면 잡초가 우거져 철로 옆에서 스러져갈 운명이었겠지만 곡성군이 철도청으로부터 매입해 증기기관차 사업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결국 옛 곡성역을 활용한 '섬진강 기차 마을'은 '곡성'하면 제일 먼저 찾는 명소가 되었다.

실제 역에서 기차표를 끊듯이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사서 옛 곡성역으로 들어가면 목조 건물 안 새까만 난로와 딱딱한 의자가 있는 대합실이 나온다. 부모님의 낡은 앨범을 들춰보는 듯 정겹다. 기차마을엔 메인인 '증기기관차'와 아기자기한 놀이동산 '드림랜드', 곡성의 대표축제가 열리는 '장미공원' 등 다양한 시설이 마련돼 있다. 1960년대 기차역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했으면서도 곡성 특유의 푸근함은 잃지 않았다.

증기기관차는 곡성역에서 가정역까지 하루 5번 오간다. 젊은이들에겐 추억을 만들고, 그 때 그 시절을 겪은 이에겐 추억을 되새기는 열차. 섬진강 따라 펼쳐진 레일 사이를 달리며 증기를 내뿜는 소리가 애잔했다. 30분 지나 도착한 가정역에는 섬진강 출렁다리가 이어져 있다. 기차에서 내려 잠시 강물에 발을 담그며 더위를 식혔다. 다시 기차마을로 돌아가는 열차 안, 창밖으로 아까와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어제의 강물이 오늘의 강물이 아니듯, 철길은 내일도 불평 없이 묵묵히 사람들을 실어 나를 것이다.

▲심청이의 고향=맛집을 찾다 해가 지는지도 몰랐나보다. 어둠이 내린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올라간 심청이야기마을은 인적 드문 시골집처럼 고요했다. 별이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을 보며 짐을 풀고 2인실인 개량형 초가집에서 눈을 붙였다. 방안 가득 퍼지는 풀벌레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렸다. 다음날 아침 사이좋게 모여 있는 집들 덕분에 처음 마주친 이웃 여행객과도 어색함이 덜했다.

심청 이야기 마을은 예전에 부락을 이루며 살았다던 옛 송정마을터에 한옥건물 18동을 지으며 탄생했다. '심청전'의 원류로 추정되는 관음사 원홍장 설화가 전해져 '심청의 고장'으로 주목받아 조성됐다고 한다. 실제 이야기의 무대인 관음사는 오산면 선세리에 있다. 마을의 지대가 높아 곡성의 굽이친 산자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정감 있는 흙길과 담쟁이 넝쿨이 감싸고 있는 돌담길이 이어져 산책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마을 곳곳 심청전을 소재로 한 조각들이 숨어있어 흥미롭다. 찌는 듯한 더위에도 초가와 기와집에서 풍기는 흙내와 살랑살랑 불어오는 산바람이 마음을 다독여준다.

곡성군수는 기고문에서 '곡성은 길의 고장이다'라고 했다. 곡성은 초입부터 집으로 돌아가는 길까지 모두 한 지붕아래 가족처럼 이어져 있다. 어디를 가든 앞 다퉈 가려는 이 하나 없이 한적한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이유다. 한없이 뻗어있는 섬진강 또한 여행객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준다. 영화에 등장한 괴기한 곡성(哭聲)은 곡성(谷城)에 없었다. 도로 옆에서 잔잔히 흐르는 섬진강만이 온갖 사연과 전설을 안고 너울댈 뿐이다. 곡성. 부르면 부를수록 순한 이름이다.

▲가는길=서대전역에서 곡성으로 직행하는 기차가 있다. 2시간이 채 안돼서 도착하며 요금은 1만 7300원이다. 승용차를 타고 대전에서 출발한다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가 순천완주고속도로로 갈아탄다. 내비게이션에 '곡성 관광안내소'를 검색하면 기차마을 입구로 도착한다.

▲먹거리=곡성에 가면 참게탕과 은어구이를 꼭 먹어야 한다. 오곡면 압록리 179에 위치한 청솔가든은 '식객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 바삭한 은어튀김과 진국인 참게수제비가 유명하다. 석곡면엔 또 다른 별미인 흑돼지숯불구이 집이 오밀조밀 모여 있다. 석곡면 석곡리 212-6에 있는 돌실 숯불회관은 은은한 숯불의 향과 야들야들한 고기가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게 만든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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