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흐르는 추억에 마음을 적시면…전북 토옥동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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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흐르는 추억에 마음을 적시면…전북 토옥동 계곡

덕유산 골짜기 흐르는 맑은 물, 별보다 반짝였던 반딧불이와 새소리 바위마다 서린 시골의 情, 코흘리개 꼬마였던 내가 기억의 한 페이지를 넘긴다

  • 승인 2016-09-08 17:34
  • 신문게재 2016-09-09 9면
  • 박희준 기자박희준 기자
[주말여행] 전북 장수군 토옥동 계곡

사진이 모든 것을 말해 주고 있다고 속아서는 안 될 것이다. 홍콩의 몽콕 야시장 골목골목에 퍼지는 딤섬 냄새, 두바이의 베이스캠프에서 깔고 앉았던 카펫의 까슬함, 메콩 강변의 야자수 나무에 맨발로 올라서던 아이들의 웃음소리, 호찌민의 데탐 거리나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 섞여 드는 온갖 외국어의 웅성거림 등은 정말이지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하고 온전히 내 몸으로 기억하는 풍경이다.

- 서윤후 「방과 후 지구」 중에서

눈을 감으면 선연히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논두렁 위로 위태롭게 걸어가는 코흘리개 꼬마는 온종일 동네 형들을 졸졸 쫓아 다녔더랬다. 어릴 적, 여름방학 때면 외할머니가 계시는 무주에서 꽤 오래 머물곤 했다. 그때의 순간순간은 책꽂이 한 켠 앨범에 알알이 들어차 있다. 앨범을 펴면 젊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환하게 웃고 있고, 어린 내가 걸어 나온다.

무주는 내가 태어난 고향이다. 여름이 되면 꼭 한 번씩 찾는 곳이기도 하다. 외할머니가 한평생 살아오신 마암마을은 30가구 안팎의 작은 농촌마을이다. 마을에 경사가 있을 때면 마을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돼지나 소를 잡아 가까운 장수군 양악리에 있는 계곡에서 잔치를 벌이곤 했는데 그때의 기억은 곰국처럼 진득하게 남아있다. 토옥동 계곡은 어린 시절 나의 앨범에서 유일하게 그대로인 곳이다. 추억이 흐르기에 소중한 계곡. 여름 휴가철, 일에 치여 여행을 미뤄 왔다면 늦더위를 피해 물소리가 정겨운 토옥동 계곡에서 추억을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나무의 심장박동=토옥동 계곡은 골이 깊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아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함없는 풍경을 자랑한다. 세월을 그대로 맞은 커다란 바위들은 계곡에 휩쓸려 잘게 부서지고 부서진 돌들은 겉이 매끈해졌지만, 바닥이 훤히 보일정도로 맑은 물은 냄비로 그대로 떠 라면을 끓여 먹어도 무방할 정도로 여전히 맑다. 널따란 바위 위에 커다란 천막을 치고 마을사람 모두 모여 고깃국을 나눠 먹었던 계곡. 바위마다 서린 시골의 정은 지금의 나를 만든 자양분이다. 계곡의 상류 쪽으로 뻗어있는 등산코스는 경사가 급하지 않아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새소리를 듣기에 제격이다. 올라가는 길 곳곳에 보이는 작은 폭포는 원시림을 방불케 한다. 암벽사이로 떨어지며 하얀 물줄기를 거침없이 쏟아낸다. 걷다 땀이 나면 얼음물보다 차가운 계곡 물에 발만 담가도 서늘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싼다. 울울창창한 나무들은 맑은 물을 먹고 자랐음을 증명하듯 단단한 몸으로 계곡의 한쪽 면을 에워싸고 있다. 그들이 만든 그늘은 최고급 텐트도 부럽지 않다. 바위에 걸터앉아 나무에 기대 발을 담그자 작은 송사리들이 발가락을 간질이며 아는 척을 한다. 답이라도 해주듯 물장구를 치자 쏜살같이 달아났다. 어렸을 때보다 한 치는 더 자랐을 나무들이 한낮에도 푸른빛을 내뿜고 있었다.

▲물의 리듬=북덕유산과 남덕유산 사이의 골짜기에서 흘러내려온 맑은 물은 토옥동 계곡의 자랑이다. 굽이치는 계곡의 물줄기는 피서를 즐기는 이에겐 시원함을 등산객에겐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계곡 입구에서 상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길은 쉽지만은 않다. 경사가 급한 것은 아니지만 표지판이 없어서다. 군데군데 간이화장실이 있지만 초행길이라면 지루할 수 있다. 이럴 때면 잠시 눈을 감아보자. 새소리는 물론 세차게 흐르는 물소리도 들을 수 있다. 무주는 반딧불로 유명한 곳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한여름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반짝이는 벌레들, 컴컴한 하늘에 별보다 더 반짝이는 것들이 묵묵히 불을 밝혔더랬다. 어른들은 어두운 밤에 나가 놀려는 아이들에게 도깨비불이 나온다고 겁을 줬다. 지금은 반딧불이를 보기 힘들지만 그만큼 무주의 계곡은 투명할 정도로 깨끗하다. 계곡 하류에 자리한 '토옥동 산장'은 양악리의 터줏대감이자 송어를 양식해서 파는 횟집이다. 1급수에서만 산다는 송어는 차가운 계곡물에서 자라서 회로 먹으면 육질이 단단하고 신선함이 배로 느껴지고 탕으로 끓여내면 그윽한 생선의 향이 고스란히 국물이 우러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어느덧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도시에선 볼 수 없는 별들이 하나둘 떠오르고, 풀벌레들은 이제 잘 시간됐다고 야단법석이다. 하나 둘 텐트가 접히자 밤이 내려앉은 계곡엔 정적이 흘렀다. 물의 리듬을 기억하며 돌아서는 아쉬운 발걸음. 계곡물은 흐르고 또 흐를 것이다.

▲가는길=계곡이 깊은 산 속에 있다보니 자가용이 없다면 가기 힘들다. 대중교통으로 가장 가까이 가려면 대전복합터미널에서 장계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버스가 하루 7대가 있다. 약 1시간 50분 정도 소요된다. 승용차를 타고 간다면 통영대전고속도로(63.4km)를 타고 가다 장무로(3.7km)로 갈아타고 토옥동로(2.8km)로 빠지면 된다. 약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글·사진=박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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