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통곡의 벽을 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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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통곡의 벽을 넘어

  • 승인 2021-03-29 12:52
  • 장병일 기자장병일 기자
박승호 논산경찰서 근무
박승호 논산경찰서 수사과 지능범죄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기쁜 일이나 행복했던 순간보다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고난이나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태산 같은 큰 험곡 앞에서 그 나약함을 깨닫고 그대로 주저앉아 좌절할 때가 있기 마련이다. 이는 어쩌면 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당사자는 뜻밖의 큰 불행 앞에서 마치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캄캄한 동굴에 갇혀 있는 듯 세상 사람들과 함께 섞여 부대끼며 사는 듯하나 실상은 아무도 없는 광야에서 홀로 버려진 체로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든 고난을 마주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올해 초 고등학교를 졸업한 우리 큰아들 수현이 이야기다.

수현이는 통증 없이 두 눈이 실명에 이르는(시신경이 죽어가는) 리베르시신경병증(레버씨 시신경위축증, LHON)이라는 전 세계적으로 얼마 되지 않는 특히 10대 20대에서 제일 많은 발병률을 가지고 있는 바로 난치희귀병을 앓고 있다.



다섯 가족이 비록 가난했지만, 마냥 행복하게 지내던 중 수현이가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2019년 6월 어느 날 마치 새벽녘에 도둑이 소리 없이 찾아온 것처럼 통증 없이 오른쪽 눈부터 보이지 않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6개월 후 나머지 왼쪽 눈마저 눈이 보이지 않기 시작한 것이다. 빛의 구별만 할 수 있으므로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삶을 살기 위한 음식 섭취와 배설만 할 수 있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수현이와 가족들은 건강하고 행복했던 그 이전의 삶과 절망과 아픔으로 얼룩진 그 이후의 삶으로 완전히 변했다.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사교성이 좋아 주위에 친구들이 많은 데다 줄곧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며 학교 임원으로서,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도 전체회장직을 수행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 수도권 소재 상위권 대학진학을 희망하며 소외되고 가난한 어려운 이웃의 억울함과 권익 보호를 위해 법조인을 꿈꿔왔던 큰아들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극심한 고통과 큰 슬픔이 동시에 찾아온 것이다.

어린 나이에 감내해야 할 질병치고는 너무나 가혹하고 견디기 힘든 끔찍한 형벌이었다. 이런 아들의 고통과 절망은 부모도, 형제자매도, 하나님도, 부처님도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었다.

그 날 이후로 수현이는 18년 6개월 동안 보아왔던 세상이 전부일 뿐 실명된 이후로는 이쁜 집고양이도, 장난꾸러기 동생들 얼굴도, 점점 늙어가는 부모 얼굴도, 목숨과 같은 친구들의 다정했던 얼굴도, 아름다운 무지개도 더는 볼 수 없었다. 시력이 양안 0.02 정도 수준이라 식탁에 차려진 눈앞의 반찬도 마음대로 집을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국내에서는 치료방법도 치료 약도 없다. 병을 앓으면서 시야 초점을 거의 잃어버린 잘 생긴 수현이의 까만 눈동자를 수현 엄마는 지금도 똑바로 못 본다.

국내에는 아들과 같은 환자가 무려 1천여 명에 이른다.

병의 발병원인도 잘 모르고 확실한 치료방법도 없는 아들을 포함하여 5식구를 건사하는 홀벌이인 아빠가 일정한 급여소득자인 공무원(경찰)이라는 이유로 국가 등지로부터 받는 혜택은 아무것도 없고, 비급여 항목이라 그 흔한 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다. 아마도 우리 아들과 같이 고통받는 다른 환우와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수현이의 발병 직후 혼돈과 극심한 고통 속에 작년 초 해외에서 개발됐다는 락손(Raxone ; 이데베논 성분)이라는 치료약(시력개선) 소식과 최근 식약처 공식허가로 국내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실낱같은 희망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희망도 잠시, 한 달 약값이 700만 원 상당이고 해외직구로 구매하여야 하며 적어도 비급여 항목인 락손을 2년 가까이 복용해야 함을 알고 또다시 깊은 좌절과 함께 오르지 못할 큰 절벽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현이의 딱한 사정이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면서 종교단체에서, 직장에서, 각급 학교에서, 그리고 생각하지 못했던 주변 분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약 1년 전부터 약을 복용하며(우리 가족은 이를 기적이라 부른다) 겨우 버틸 수 있었다.

고가의 약값을 고려하면 더는 복용할 수 없는 형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국내에 이병에 대한 치료방법과 시력 개선 등을 위해 연구하는 분이 있다. 이 분은 현재 수현이가 정기검진을 받는 서울 영등포에 있는 김 안과 김응수 박사님이다.

박사님에 따르면 환우들에게 락손이 워낙 고가의 약이다 보니 적극적으로 권유를 하지 못하고 있고, 프랑스에서 시술 방법이 개발되었다고 하나 현지 시술비용이 7억이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도 시술할 수 있다고 하나 신뢰가 없다는 것이다.

이마저도 재정적 지원, 법과 제도 등 여러 제약으로 인하여 국가 차원에서 재정지원이나 기술지원 등을 하지 않는 한 김 안과라는 병원에서 독단으로 시술을 위한 시스템 등을 도입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의료기술력 등으로 볼 때 시술을 할 수 있고, 유전자 기술 등 치료 약도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국내에 환우들이 많지 않은 탓에 관계 법령과 제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환우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세상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점점 잊힐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세상에서 아무 쓸모 없는 지극히 낮고 낮은 존재감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우울증 등으로 말미암아 피폐해져 버린 정신건강도 이미 적신호다.

오늘도 하늘을 우러러 병이 회복되는 기적을 바라는 가운데 눈앞이 캄캄한 어린 환우들을 가진 지아비와 지어미들은 그런 자식 앞에서 무릎을 꿇고 평생 속죄를 하기 위하여 하얀 거울이 되어서라도 그 어린 자식들을 피로 붉게 물든 가슴속에 조용히 묻고 있기에 눈물이 앞을 가린다./박승호 논산경찰서 수사과 지능범죄수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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