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지긋지긋한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지긋지긋한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

윤희진 정치행정부장(부국장)

  • 승인 2023-08-30 08:58
  • 수정 2023-08-30 10:02
  • 윤희진 기자윤희진 기자
윤희진 부국장(중도일보)
윤희진 부국장
지긋지긋하다. 시대정신에 따라 소멸했다고 생각했는데, 잔존하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을 죽이며 마수를 뻗쳐왔다. 공산당의 멸칭(蔑稱)인 ‘빨갱이’,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다.

레드 콤플렉스, 일본 강제병탄기를 끝낸 1945년 8·15 후부터 2000년대 초까지 대한민국을 좌우로 분열시킨 정치적 이데올로기다. 미군정을 시작으로 이승만 초대 정부에 이어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 때까지 대한민국 사회 영역 곳곳에 침투해 국민을 좌우로 양분했다.

반공법과 국가보안법을 내세워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등 독재에 맞선 국민의 저항을 모두 공산당 활동으로 조작해 수많은 희생을 치렀다. 4·19혁명과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까지도 빨갱이의 공작으로 악용했지만, 역사는 국민의 정당한 저항으로 기록했다.

레드 콤플렉스는 주로 보수 정당·정치인이 선거에서 표를 얻으려는 전략으로 이용해왔다. 그랬던 레드 콤플렉스가 사라졌다고 평가받은 건 2002년 4월, 새천년민주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대통령 후보 국민경선 과정 때였다.



당내 경선에서 보수 성향의 경쟁 후보가 노무현 후보의 장인이 좌익활동을 했다며 레드 콤플렉스, 즉 색깔론 공세를 펼쳤다. 공격을 받은 노무현 후보는 “장인은 제가 결혼하기 훨씬 전에 돌아가셨는데… 아이들 잘 키우고 지금까지 서로 사랑하며 잘살고 있다. 이런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는 연설로 선거 판도를 바꿨고, 국민은 그를 대한민국 제16대 대통령으로 선택했다. 이후 거짓말처럼 레드 콤플렉스는 여러 선거에서 힘을 쓰지 못했고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사라졌던 레드 콤플렉스가 2023년 대한민국 정치의 정중앙에 재등장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실에서 시작해 국방부와 육군사관학교까지 당도했다. 삼일절 기념사에서 일본 정부의 과거사 왜곡과 독도 영유권 주장,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와 관련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던 윤석열 대통령은 4·19 혁명 기념사에서 허위 선동과 협박, 폭력, 날조 등의 단어를 쓰며 민주주의와 인권운동가 일부를 독재와 전체주의 편으로 치부했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공산전체주의를 맹종하며 조작선동으로 여론을 왜곡하고 사회를 교란하는 반국가세력들이 여전히 활개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 세력은 늘 민주주의·인권 운동가, 진보주의 행동가로 위장하고 허위 선동과 야비하고 패륜적인 공작을 일삼아 왔다”는 등의 발언을 쏟아냈다. 학계에선 ‘경축사가 분열을 일으킬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논란이 한창인 8월 28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간부위원들과의 자리에서도 “공산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사회를 교란시키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육군사관학교가 애초 홍범도, 김좌진, 지청천, 이범석 장군과 신흥무관학교 설립자 이회영 선생 등 5명의 흉상을 이전하겠다고 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고 할 수 있다.

거센 반발에 부딪힌 애초 계획에서 한발 물러났지만, 국방부와 육사는 공산주의를 강조하며 홍범도 장군만 걸고 넘어지고 있다. 홍범도 장군이 머슴에서부터 건설현장·종이공장·광산노동자, 사냥꾼 등 밑바닥 출신이라고 깎아내리는 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명분과 정당성, 역사적 근거조차 미약한 홍범도 장군을 논란의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국방부와 육사의 변명을 보면 군인다워 보이지 않는다.

논란과 책임론이 커지자 대통령실조차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에 대해 "윤 대통령은 지금까지 이 문제와 관련해 본인의 생각을 이야기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홍범도 장군은 평생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1922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 참석 당시 소련에 제출한 조사서에 직업은 ‘의병’, 목적과 희망은 ‘고려 독립’이라고 직접 적었다. 일제강점기 대한독립군 총사령관과 대한독립군단 부총재 직함 앞에 공산주의와 운운하는 건 후예로서 예의가 아니다.

국방부와 육사는 유한한 권력에 흔들리지 말고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주권과 영토를 넘보는 모든 세력에 맞서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국군’으로서의 명예를 다시 생각할 때다.

/윤희진 정치행정부장(부국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법원, 유튜브 후원금 횡령 혐의 40대 여성 선고유예
  2. 캄보디아서 구금 중 송환된 한국인 70%, 충남경찰청 수사 받는다
  3. 천안시, 직원 대상 청렴·반부패 추가교육 실시
  4. 대한전문건설협회 대전시회, '중대재해 근절 성실·안전시공 결의식' 개최
  5. 대만 노동부 노동력발전서, 한기대 STEP 벤치마킹
  1. 천안시, '정신건강의 날 기념' 마음건강 회복의 장 마련
  2. 천안시의회 이병하 의원 대표발의, '천안시 온실가스감축인지 예산제 운영' 등 2건 상임위 통과
  3. 천안동남소방서, 현장대응활동 토론회 개최
  4. 천안시 보건소, '영양플러스 유아 간식 교실' 운영
  5. 한화이글스의 가을…만원 관중으로 시작

헤드라인 뉴스


국감 중반전…충청 슈퍼위크 돌입 촉각

국감 중반전…충청 슈퍼위크 돌입 촉각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가 중반전에 돌입한 가운데 대전시와 세종시 등 충청권 시도를 포함한 지역 주요 피감 기관장들이 20일부터 줄줄이 증인대에 오른다. 내년 지방선거 앞 국감에서 기선 제압을 위한 여야 각축전이 금강벨트로 확전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충청권으로선 현안 이슈파이팅으로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는 지적이다. 여야는 지금까지 올 국감에서 조희대 대법원장과 김현지 대통령실 제1부속실장 등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두고 정책이 실종된 채 정쟁을 벌이며 '막말 국감'을 자초하고 있다. 한껏 가팔라진 여야 대..

국감서 혹독한 평가 우주항공청, 대전에 연구개발 역량 집중해야
국감서 혹독한 평가 우주항공청, 대전에 연구개발 역량 집중해야

개청한지 1년 반이 지난 우주항공청이 국정감사에서 혹독한 평가를 받는 가운데 '우주항공 5대 강국 도약'을 위해선 대전을 중심으로 한 연구개발 역량 강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우주항공청의 운영 체계와 인력 구성 등 조직 안정성과 정책 추진력 모두 미흡하다는 질타가 쏟아졌다. "전문가들은 우주청의 구조적 한계로 '예산 부족'을 꼽는다. 올해 우주항공청 예산은 약 9650억원으로, 1조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모든 분야를 포괄하기엔 역부족인 규모다. 여기에 입지 문제도 크다. 우주청..

대전창작센터, 원로 예술인 특화 전시관으로 전환
대전창작센터, 원로 예술인 특화 전시관으로 전환

대전 미술의 창작 공간이던 대전창작센터가 20년 여정의 마침표를 찍고, 원로예술인 특화 전시관으로 전환된다. 19일 대전시에 따르면 대전창작센터는 옛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충청지원 건물로 故배한구(1917~2000) 선생이 설계한 것으로 등록문화재 10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대표적인 한국 근대건축으로 평가받는다. 2005년 대전시립미술관은 한남대 건축학과 한필원 교수와 협력한 프로젝트 전시 <산책-건축과 미술>을 통해 문화시설로서의 재생 기능성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프로젝트에 돌입, 2008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으로부터 관리전환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가을 물든 현충원길 함께 걸어요’

  •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빛으로 물든 보라매공원

  • 나에게 맞는 진로는? 나에게 맞는 진로는?

  •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 유성국화축제 개막 준비 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