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알려졌다'와 '말했다'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오디세이] '알려졌다'와 '말했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승인 2024-01-01 08:53
  • 이현제 기자이현제 기자
clip20240101084402
이승선 교수
언론의 뉴스 언어는 명료해야 한다. 발언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명징하게 밝혀 독자에게 전달해야 한다. 언론 보도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정치권 소식을 전하는 뉴스 문장 서술어로 "~라고 알려졌다"가 많이 쓰인다.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관련 기사에서도 자주 발견하는 서술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의 신변을 다룬 기사에도 빈번히 등장한다. 이유가 있다. 언론이 게을러서다.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근거가 약한 풍문에 기대어 기사를 작성할 때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언론사가 능력을 벗어난 양의 기사를 홈페이지에 탑재하려고 욕심을 부릴 때, 피동형 서술어 '알려졌다'의 사용은 구조적으로 불가피하다. 발언의 주체가 없는 기사 문장의 서술어는 기자의 주관이 섞인 서술어로 대체될 때도 있다. 문장의 서술어가 은근슬쩍 '판단된다', '전망된다', '점쳐진다', '읽힌다', '보인다'라고 바뀌는 경우가 그렇다.

또 있다. 여론을 떠보거나 여론을 통제하려는 취재원의 의도와 언론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질 때도 '알려졌다'가 사용된다. 가면 뒤에 숨은 익명의 취재원이 그의 뜻대로 여론을 주무를 수 있도록 언론이 공개적으로 마이크를 제공한 꼴이다. 저널리즘 전문가들은 익명의 취재원과 결합한 뉴스 문장의 피동형 서술어 '알려졌다'의 해악은 게으른 언론으로 인한 문제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의 생명수인 건전한 사회 여론의 형성과 공론의 활성화가 방해받고 악의적인 취재원과 언론에 의해 오염된 정보가 진실을 덮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을 경계한 어떤 언론사는 그들의 취재보도준칙에 '~로 알려졌다/전해졌다/전망이다'를 기사 문장의 서술어로 사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작년에 그 언론사의 법조기사 변화를 모니터링한 적이 있다. 구성원들이 작심하고 피동형 서술어 '알려졌다'의 퇴출에 나서자 뚜렷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그 자리를 능동형 서술어들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기사 문장을 능동형 서술어로 대체하기만 하면 문제는 해결되는가. 그렇지 않다. 취재원의 발언을 전할 때 기사 문장의 서술어로 '따졌다', '항의했다', '촉구했다', '압박했다', '강변했다', '강조했다', '비난했다', '토로했다', '폭로했다', '반발했다', '종용했다'를 쓰는 경우가 많다. 저널리즘 전문가들에 따르면 그러한 서술어 사용은 기자의 주관이나 판단이 개입된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 따라서 취재원의 발언을 전하는 인용문에서는 누구의 발언이든 일관되게 덤덤하고 건조한 '말했다'나 '밝혔다' 정도의 서술어를 써야 한다는 것이다. '말했다'라는 서술어가 기사의 품질뿐만 아니라 언론의 신뢰도를 높이는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기사 문장의 서술어 '알려졌다'와 '말했다'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그것보다 크다. 기사의 내용 구조가 본질적으로 달라진다. 발언의 주체를 드러냄으로써 해당 언론이 그 취재원과 언제, 어떻게 접촉해서 정보를 획득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 기사 내용에 포함된다. 발언 내용의 타당성을 점검하게 돼 오보를 줄이고 기사 품질을 높이는 데도 기여한다. 언론이 발품을 팔아 공들여 취재했는지, 보도자료를 참조하는 데 그쳤는지 혹은 다른 언론의 기사를 베끼고도 아닌 척하는지 기사 문장의 서술어가 보여줄 수 있다. 쟁점을 두고 대립하는 당사자들이 있을 경우 '말했다'의 기회를 취재 대상 모두에게 부여해야 하므로 기사에 각각의 반론까지 자연스레 반영되는 효과가 있다.

새해가 밝았다. 총선이 있다. 언론이 제공하는 선거정보의 품질에 따라 좋은 선거의 성패가 갈린다. 기사 문장의 피동형 서술어 '알려졌다'를 발언의 주체가 드러나는 '말했다'라는 서술어로 바꾸어 쓰는 것은 공정하고 성공적인 선거보도를 달성하는 기초다. 기사의 단어 하나를 바꿔쓰는 것에 불과하지만, 실상은 올바른 민주주의를 향한 위대한 여정의 걸음걸음이다. 정치인들이 내뱉는 말의 무게를 저울에 올려 측정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언론이 유권자에게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알려졌다'나 '전해졌다' 류의, 주체가 사라진 피동형 서술어가 할 수 없는 일이다. 유권자이자 독자로서 청룡의 해에 언론에 대해 꾸어보는 작은 꿈이다. /이승선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엑스포아파트 재건축 입안제안… 유성구 '최종 수용 결정' 통보
  2. 정부 메가특구 구상에 과학도시 대전 기대감 커져
  3. 충청권 광역의원 최대 5석 늘어난다…인구감소 서천·금산·옥천 유지
  4. 아산시사회복지사협, 사회복지종사자 처우개선 정책제안서 전달
  5. 송자고택 품은 소제중앙문화공원 준공
  1. 글로벌 우수 과학기술 인재 양성, 대한민국 유일의 국가연구소대학 UST
  2. 금강벨트 시도지사 선거 범친명 vs 찐보수 대결 구도
  3. 돌아온 늑구에 쏠린 관심… 기대와 우려 속 숙제는 가득
  4. [월요논단] '신 수도권 광역계획위원회(CAMPO)' 설립을 제안한다
  5. 'AI와 인간의 공존' 시대, 제11회 세계과학문화포럼 열렸다

헤드라인 뉴스


라이즈→앵커 개편에 지역 사업 전환 속도…바뀐 명칭에 현장 혼란도

라이즈→앵커 개편에 지역 사업 전환 속도…바뀐 명칭에 현장 혼란도

이달 발표한 교육부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라이즈) 재구조화 방침에 따라 대전시와 지역 라이즈센터, 13개 수행 대학이 사업 전환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전시는 올해 사업 계획에 '청년 지역 정주' 비중을 강화하는 한편, 지역 내 자체 평가와 예산 배분 역시 '온정주의'가 아닌 엄중하고 공정히 집행하겠단 방침이다. 다만 정부가 갑작스럽게 사업명을 '앵커'로 변경하고 권역별 초광역 공동과제의 수행 시점 역시 뚜렷이 밝히지 않아 현장의 혼란도 존재한다. 19일 중도일보 취재결과, 4월 2일 교육부가 기존 고등교육 사업인 '..

충청 세계대학경기대회 北 참가 여부 촉각…"다각도로 노력"
충청 세계대학경기대회 北 참가 여부 촉각…"다각도로 노력"

2027 충청 세계하계대학경기대회(유니버시아드)가 460여 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북한 선수단의 참가 여부가 주요 화두로 급부상했다.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 회장단이 참여 유도에 강한 의지를 드러내며 전방위적 활동을 예고했는데, 우리나라 정부도 긍정적인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분석된다. 충청 세계하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와 연맹은 20일 세종시청 브리핑룸에서 레온즈 에더(Leonz Eder) 회장, 마티아스 레문트(Matthias Remund) 사무총장 등 FISU 회장단과 이창섭 조직위 부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공동 기자회견..

국회세종의사당 설계 국제공모 경쟁률 15대 1
국회세종의사당 설계 국제공모 경쟁률 15대 1

'국회세종의사당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경쟁률이 15대 1을 기록했다. 국회사무처는 올해 1월 27일 공고 후 작품 접수를 마감한 결과, 국내외 유수의 건축·도시·조경설계 업체 등으로 구성된 15개 팀이 15개의 공모작품을 제출했다고 20일 밝혔다. 국제공모는 국회세종의사당 건립을 위한 마스터플랜 수립을 위한 것으로, 향후 개별 건축 설계 공모와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앞서 종합적인 공간계획의 기준과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기획됐다. 접수한 작품들은 '국민주권과 정의·평화·자유·번영'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바탕으로, 국민의 자긍심과 화합,..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늑구’의 인기에 대전오월드 재개장에도 관심 ‘늑구’의 인기에 대전오월드 재개장에도 관심

  • 2026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 성료…휴머노이드 로봇 ‘눈길’ 2026 대전사이언스페스티벌 성료…휴머노이드 로봇 ‘눈길’

  • 늑구 탈출 관련해 사과하는 정국영 대전도시공사 사장 늑구 탈출 관련해 사과하는 정국영 대전도시공사 사장

  • 열흘 만에 돌아온 ‘늑구’ 브리핑 열흘 만에 돌아온 ‘늑구’ 브리핑